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 자말은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인도 뭄베이 빈민가 출신입니다. 자말은 거액의 상금이 걸린  인기 퀴즈쇼에 참가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가 출제되고 광고 시간에 화장실에서 고민하는 자말. 그때 퀴즈쇼 사회자 프렘이 말을 건넵니다. 자신도 빈민가 출신이며 이 퀴즈쇼에서 우승해 쓰레기에서 귀족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김 서린 거울에 답을 B라고 적고 나갑니다.

프렘의 기만술 사전포석 전략은 ‘공감대를 형성해 신뢰부터 확보하라’입니다. 협상분야의 거두인 영국의 래캠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협상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대표적인 차이점 중 하나가 바로 공감대 형성입니다. 연구 결과 협상을 잘하는 사람은 못하는 사람보다 실제 협상에서 4배 더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여 공감대 수립에 애씁니다. 반면 협상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공감대 수립을 무시하고 곧장 협상 본론으로 들어가는 경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프렘은 사회경제적 환경이 태생적으로 결정되는 인도에서 자신도 퀴즈쇼를 우승해 인생역전한 당사자라는 사실로 자말과 강한 동질감, 유대를 형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결적 협상이 아닌 협력적 협상 포지션으로 전환하는 협상기술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말은 정답인 D를 선택했고 프렘은 질투심에 자말을 영장도 없이 경찰에 넘겨버립니다. 자말은 조직적 사기행각임을 자백하도록 밤새 고문을 당하지만 수사관에게 문제들의 답을 알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슬픈 과거 이야기를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결국 수사관은 연민을 느끼며 자말을 풀어줍니다. 이때 자말이 사용한 협상 전략은 ‘섣부르게 협상을 남발치 말고, 상대의 마음부터 빼앗아라’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헨드슨 박사는 “협상 상대의 가슴속에 숨겨진 열정, 가치관에 적절히 호소함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감정은 협상에서 또 하나의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말은 수사관의 ‘심리적 자극점’을 모색해낸 것입니다.

협상기술은 영화 주인공 자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협상은 우리 일상생활과 아주 밀접하고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협상기술들은 포지션과 목적에 따라 달라지고 이론으로도 정립돼있습니다. 하버드대 피셔 교수와 유리 교수의 협상이론은 협상 포지션을 강성, 연성, 원칙 등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강성입장 협상은 주로 강자들이 적대자를 불신해 오직 승리를 협상의 목표로 삼습니다. 강성입장은 합의나 관계를 담보로 초기 입장을 고수하며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거나 위협과 압력 전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연성입장 협상은 입장을 자주 바꾸며 양보를 하는 대신 강성입장과 달리 상대를 신뢰하며 부드러운 태도로 협상에 임해 장기성이 강합니다. 원칙입장 협상은 신뢰 여부와 관계없이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상호이익을 얻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관계와 협상을 분리해 협상이슈에는 강경하게, 상대에게는 부드럽게 대하는 겁니다. 상대에게 굴복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협상이익을 추구하지만 협상의 약자가 취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포지션입니다.

예시로 자취방 월세에 협상기술을 응용해볼 수 있습니다. 피셔와 유리 교수의 협상이론에 따르면 세입자는 원칙입장 협상으로 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 포지션을 사용하기 위해선 협상력을 높여야 합니다. 이때 좋은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가 강한 협상력을 갖게 해줍니다. BATNA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택할 수 있는 ‘다른 좋은 대안’입니다. 여러 개의 자취방을 대안으로 갖는 것이죠. BATNA는 합의 도출 강박 관념에서 기인하는 나쁜 협상 결과를 피하게 하고 결렬 전략을 사용할 수 있게 합니다. 결렬 전략은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협상 상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습니다. 크게 허풍치며 도망가는 ‘큰 그물 던지기’나 ‘머피의 법칙’도 협상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협상기술입니다. 이때 머피의 법칙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개념이 아닌 마감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양보율이 갑자기 커진다는 이론을 말합니다.

뛰어난 협상 기술을 직업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법원 중재·조정위원뿐만 아니라 국내외 기업 분쟁에서 필요한 ‘중재자 로펌’이 협상 전문가를 필요로 합니다. 실제로 법무법인 세종이 국내 게임업체 위메이드와 중국 기업 저장환유의 800억 원대 지식재산권 관련 국제중재 분쟁에서 위메이드를 대리해 지난 3월 승소하기도 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협상기술. 나의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김정익 수습기자 cha6kim@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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