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속 우리는 많은 조건들 속에서 살아간다. 편의를 위한 일회용품 사용은 기본이고 재미를 위해 SNS도 즐긴다. 가끔은 몸매를 가꾸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기도 한다. 인간으로 살아가며 필요한 조건들을 잠시 멈추면 어떻게 될까. 서울시립대신문 기자들이 직접 인간의 조건을 포기하고 살아간 체험기를 ‘2020, 인간의 조건’을 통해 공개한다.   -편집자주-

이제는 외출 필수품이 된 KF80 마스크를 끼고 카페에 도착하면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음료를 담아준다. 집으로 돌아와 택배를 정리하고 저녁으로 배달음식을 먹고 나면 어느새 분리수거 통이 반이나 차 있다. 낯선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가 만든 비대면 소비와 위생관념 속에서 쓰레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퇴보했다. 그 사이 지구는 올해 여름의 길고 긴 장마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 기후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2020, 인간의 조건’의 첫 도전으로 쓰레기 없는 일주일을 살아봤다.

제로 웨이스트, 쓰레기 없이 살기

일주일 동안 기자가 실천한 쓰레기 없이 살기는 최근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라고 불리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관련기사 제741호 4면 ‘지구와 우리를 위한 발걸음, 제로 웨이스트’) 제로 웨이스트란 생활 속 쓰레기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최근 코로나19로 비롯된 환경적 퇴보와 코앞으로 다가온 기후위기 속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기자는 본격적으로 쓰레기 없이 살기를 시작하기 전 제로 웨이스트 실천가로 유명한 비 존슨의 책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를 읽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다섯 가지의 방법인 5R을 제시한다. △거절하기(Refuse) △줄이기(Reduce) △재사용하기(Reuse) △재활용하기(Recycle) △썩히기(Rot)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의 방법에 따라 쓰레기 없이 살기를 시작했다.

시작과 함께 실패한 도전

‘쓰레기 없이 살기’를 시작한 첫날 아침, 냉장고를 열어도 먹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비닐에 포장된 닭가슴살과 빵,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든 요거트 등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었다. 게다가 사용하고 있던 필터형 정수기가 없다면 물도 한 잔 마시지 못할 뻔했다. 결국 아침은 거르고 급하게 집을 나섰는데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습관적으로 쓰고 나온 마스크도 하루 사용하고 나면 쓰레기가 된다는 점이었다. 결국 환경의 건강 대신 기자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첫 번째 타협을 한 후 다시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주변에는 쓰레기의 유혹이 넘쳐났다. 식당에서 물을 흘렸을 때 습관적으로 휴지에 손이 갔고 생과일 주스가 눈에 아른거렸다. 그렇지만 단 하나의 쓰레기도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로 집에 돌아왔다.

▲ 일주일 동안 기자가 ‘쓰레기 없이 살기’를 체험하며 나온 쓰레기. 일회용 마스크와 마스크 포장 비닐, 각종 영수증, 과일 포장재, 친구가 사 온 플라스틱 아이스크림 용기, 용기를 챙겨갔지만 거절당해 사용한 종이 아이스크림 용기가 나왔다
▲ 일주일 동안 기자가 ‘쓰레기 없이 살기’를 체험하며 나온 쓰레기. 일회용 마스크와 마스크 포장 비닐, 각종 영수증, 과일 포장재, 친구가 사 온 플라스틱 아이스크림 용기, 용기를 챙겨갔지만 거절당해 사용한 종이 아이스크림 용기가 나왔다

배달음식, 용기를 가지고 직접 찾아가다

바깥에서의 소비를 참으며 지내던 중 위기가 찾아왔다. 친구와의 약속이 잡힌 것이었다. 배달음식을 시켜먹자는 친구들의 말에 첫 용기를 냈다. 크기별로 용기를 챙기고 도착한 떡볶이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혹시 떡볶이를 이 용기에 담아주실 수 있나요?” 처음엔 냉랭한 반응이었지만 상황을 설명하자 “용기를 놔두고 가면 담아주겠다”는 답이 돌아왔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떡볶이보다 좀 더 난이도 높은 피자 포장이었다. 그릇에 담기는 크기의 피자를 주문하고 사이드 메뉴로 치킨 날개를 시켰다. 같이 먹을 생맥주도 함께 챙겨간 텀블러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일회용 수저를 주거나 피자를 호일로 싸줘도 괜찮겠냐는 호의와 함께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거절하기’ 규칙을 상기해 호의는 거절하고 음식만 받았고 집으로 향했다. 포장해 온 메뉴를 확인하는데 치킨 날개 포장을 부탁한 용기에 플라스틱 용기와 호일로 가지런하게 소스가 들어있었다. 친절함이 고마우면서도 쓰레기가 생겼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렇게 배우 류준열과 그린피스가 진행한 ‘#용기내_캠페인’처럼 일회성으로 낭비되는 쓰레기 대신 다회용품을 사용하는 것이 제로 웨이스트다. 제로 웨이스트 숍 ‘알맹상점’의 ‘리필 스테이션’ 코너에서는 화장품, 세제 등을 소비자가 지참한 용기에 담아 구매할 수 있다. 말랑상점의 이주은 공동대표는 “불필요하고 일회성으로 낭비되는 쓰레기를 줄이고자 하는 것이 제로 웨이스트의 목적”이라며 “불편을 감수하고 용기를 들고 다니면서 자신이 먹을 것은 본인의 용기에 담아갈 수 있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쓰레기는 어디론가 간다

체험을 시작하면서 온 신경은 쓰레기로 집중됐다. 길거리를 굴러다니는 플라스틱병, 건물 앞마다 쌓여있는 거대한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체험 전 생활하면서 생긴 쓰레기들은 종량제 봉투에 넣거나 분리수거해 집 밖에 두면 끝이었다. 그렇지만 쓰레기가 우리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로 배달 및 일회용품이 늘어나면서 2차 쓰레기 대란이 찾아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증가한 일회용품을 제대로 분리하지 않아 생활 쓰레기가 급증하면서 2022년 채워질 것으로 봤던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도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랐다. 또 다른 문제는 쓰레기가 생태계의 순환 과정을 거쳐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이 대표는 “우리가 사용하고 버리는 플라스틱들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입자로 남아 있다”며 “이로 인해 동식물은 죽어가고 인간도 일주일에 카드 한 장 분량 이상의 미세플라스틱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일회성으로 낭비하고 있는 쓰레기를 줄인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적극적인 실천을 강조했다.

코로나19와 쓰레기 사이의 딜레마

코로나19 이후 다회용품 사용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일시적으로 완화됐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온라인 쇼핑이나 배달음식 등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면서 일회용품을 비롯한 쓰레기 배출량도 급증했다. 그동안 환경을 위해 지양해왔던 일회용품에 코로나19가 면죄부를 준 것이다. 정말 우려대로 다회용품 사용이 감염병 전파에 영향을 미칠까.

최근 전 세계 공중보건 및 식품 안전 분야의 전문가 115명은 연구결과 ‘코로나 시대의 다회용품 사용은 안전하다’, ‘지구를 깨끗하게 지키는 것도 공중보건에 포함돼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여성환경연대 조화하다 활동가는 “어디로 버려질지 모르는 쓰레기는 또다시 환경을 오염시키고 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오히려 관리 가능한 다회용품을 사용하면 ‘위생’과 ‘제로 웨이스트’를 모두 가질 수 있다”고 코로나19 시대에도 환경을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거절할 수 없는 쓰레기들

비 존슨이 말한 5R 중 가장 기본적인 단계는 ‘거절하기’다. 그러나 의지로 거절할 수 없는 쓰레기는 너무 많다. 결제를 할 때마다 계산대에서는 자동으로 영수증이 나온다. 영수증을 받지 않아도 결제 버튼과 함께 나오는 영수증은 계산대에 쌓인다. 포장재도 한몫한다.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는 포장재도 함께 사야만 한다. 그렇지만 거절할 수 없다고 해서 이대로 소비해야 할까.

이에 조 활동가는 “재포장 및 플라스틱 소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환경부에서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중 재포장금지 규정의 시행을 준비 중”이라면서도 “기업의 눈치가 아닌 국민의 안정성을 고려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규제뿐만 아니라 기업의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 제로 웨이스트에 동참하는 소비자들이 유제품에 부착된 빨대와 통조림 플라스틱 덮개 반납 운동을 펼쳤다. 이후 해당 기업은 빨대 없이 요구르트를 생산하거나 추석 선물세트를 시작으로 통조림의 플라스틱 뚜껑을 순차적으로 없애기로 했다. 이에 조 활동가는 “개인이 모여 문화를 만들고 시민단체는 그 목소리를 모아 기업과 정부에 전달하고 기업은 사회적 책임, 정부는 법 개정 등의 역할을 한다”며 “시민-정부-기업의 톱니바퀴가 잘 맞춰져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주일간의 짧지만 긴 체험이 끝나고 기자는 다시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밥 하기 귀찮을 때는 여전히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다. 그렇지만 예전과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릴 때, 포장용기를 분리수거할 때 마음 한 구석에 죄책감이 자리 잡았다. 예전에는 자주 깜빡했던 텀블러도 외출할 때 꼭 챙기는 물건 중 하나가 됐다. 짧은 기간 동안 혼자 한 체험이었지만 꽤 많은 것이 변했다. 함께 떡볶이를 포장했던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도 제로 웨이스트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고 스스로 쓰레기를 대하는 태도도 크게 변했다. 이런 개인의 실천과 함께 기업과 제도의 변화가 모이면 조금씩 세상은 바뀌어나가지 않을까. 쓰레기 없이 살 수 있는 불가능을 상상해보며 이 체험의 다음 주자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글사진_ 신유정 기자 tlsdbwjd0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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