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과 30년 5개월. 같은 사건에 대한 우리나라의 실제 판결과 미국 양형기준에 따른 예상 판결이다. 전자인 징역 12년은 오는 12월 출소를 앞둔 조두순이 7세 여아를 강간해 영구 상해를 입힌 것에 대한 혐의로 선고받은 형이었다.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유통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손 씨가 출소를 몇 개월 앞두고 있을 때 그가 운영하던 사이트에서 아동 포르노를 1회 다운로드한 전 미 국토안보부 직원이 징역 5년 10월에 보호관찰 10년형을 선고받은 것과 사뭇 대조된다.

이런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은 최근 불거진 문제가 아니다. 실제 판결에서 국민의 ‘법감정’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형량이 선고돼 논란을 빚는 경우는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렇다면 사법부는 왜 이런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것일까.

 

처벌 형량 길잡이가 되는 양형기준

국민의 법감정과 동떨어진 사법부의 판결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선 먼저 형벌이 정해지는 과정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법률에는 각 범죄에 따른 형량이 명시돼있다. 이렇게 각 범죄에 대응해 법률에 규정돼있는 형벌을 ‘법정형’이라고 부른다. 법관은 법률에 규정된 바에 따라 형을 가중·감경해 일정한 범위의 ‘처단형’을 정한다.

이때 처단형의 범위 내에서 선고형을 정하거나 집행유예 여부를 결정할 때 참조하는 기준이 있다. 바로 양형기준이다. 예를 들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 1항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아동·청소년을 강간한 사람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이 담겨있다.

이런 법정형은 5년부터 무기징역까지 그 범위가 넓기에 유사한 범죄더라도 판사 개인의 판단에 따라 처벌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 이에 실제 판결에서는 양형기준에 따라 형벌을 내린다. 성범죄 양형기준에 따르면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 중 강간의 기본형은 8년에서 12년이다. 따라서 법관은 기본형 8~12년에서 가중·감경해 처벌을 내리게 된다.

모든 범죄에 양형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양형기준은 대법원 산하기관인 양형위원회(이하 양형위)에서 마련하는데 범죄의 발생빈도가 높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의 양형기준을 우선적으로 설정하고 점진적으로 양형기준 설정 범위 및 기존 양형기준을 수정·보완한다. 현재 2020년 9월 기준으로 살인, 뇌물, 성범죄, 횡령·배임, 절도, 사기, 선거, 교통 등 41개 주요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시행 중이다.

시대 변화와 양형기준 사이에 시차 존재해

법관에 따라 발생하는 양형의 편차를 줄이기 위해 지난 2007년 처음 설치된 양형위는 그간 개별 범죄마다 양형기준을 세워왔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양형기준이 국민의 법감정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겼다. 우리대학 법학전문대학원 김희균 교수에 따르면 양형기준은 기존의 처벌 형량을 바탕에 두고 경험적으로 설정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강간죄 등 범죄에 대해 강도 높은 처벌을 하지 않았기에 이런 판결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양형기준 또한 낮게 만들어진 것이다.

HS플러스법률사무소의 박세원 변호사는 우리나라가 타 국가에 비해 양형기준이 낮은 것에 대해 “성범죄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오래되지 않은 시점부터 급속히 증가했다”며 “범죄의 폭발적인 증가추세나 범행의 잔혹함 등을 반영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성범죄에 ‘관대한’ 판결을 내렸던 법정의 분위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시대착오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양형기준의 시대착오적인 면은 성범죄 집행유예 기준에서도 드러났다. 지금까지 양형기준에서는 ‘권력형 성범죄’인 ‘위계·위력을 사용한 경우’를 처벌 사유가 아닌 일반 참작 사유로 명시했었다. 해당 사실이 논란이 되자 양형위는 앞으로 양형기준이 변화해야 함을 시인했다.

이처럼 양형기준은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개정된다. 그 예로 최근 확정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다루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양형 기준안을 들 수 있다. 이런 변화는 ‘n번방’ 사태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및 유통 범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어났다. 지난 15일 양형위는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해 최대 13년 형에 불과했던 기존 양형기준에서 29년 3개월 형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 또한 솜방망이 처벌의 주요인으로 꼽혔던 △피해자의 처벌 불원 △가해자의 상당 금액 공탁 △형사처벌 전력 없음 등의 감경 사유를 제외·축소했다. 그러나 여전히 맹점이 존재한다. 이는 아동·청소년의 성착취물에 한하는 조치이며 성인 대상 범죄는 제외됐기 때문이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비롯된 사적 처벌

최근 논란이 된 ‘디지털 교도소’를 비롯해 ‘배드파더스’, ‘자경단’ 등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사적 처벌의 움직임이 늘고 있다. 이에 김희균 교수는 “기소 자체가 성립하지 않거나 처벌을 벗어나는 경우도 많다”며 “공적으로 처벌이 안 되는 부분 때문”이라고 사적 처벌이 나타난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이러한 사적 처벌은 사법부의 미진한 처벌 대신 민간에서 범죄자를 대신 응징하겠다는 명목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사적 처벌은 일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정당성에 관해 많은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1월 고의로 자녀 양육비를 주지 않은 부모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배드파더스가 무죄판결을 받으며 사법부로부터 공익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4일 디지털 교도소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접속 차단 조치가 이뤄졌다. 두 사이트 모두 개인의 신상을 공개했지만 확연히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촉구를 목적으로 실제 그 성과를 이뤄낸 반면에 디지털 교도소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응징’을 위해 게시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에 박세원 변호사는 “사적 처벌의 목적이 범죄자에 대한 응보라는 정당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인이 처벌을 행하는 과정상 부정확한 사실인정과 법률적용의 오류, 무고한 희생자 양산의 가능성, 사적 처벌을 시발점으로 하는 파생범죄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국가가 법률 또는 양형기준을 엄격하게 마련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개인이 개입해서는 안 될 문제”라며 “이런 행위는 사법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기에 심각성을 깊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형법 차원의 근본적인 변화 필요해

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50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는 23.83%에 불과했다. 게다가 지난 7월 사법부가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거부하자 누리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사법부도_공범이다’라는 해시태그 확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국민의 법감정과 실제 판결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김희균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성범죄에 대한 형벌 자체는 적지만 부가형을 두는 경우가 많다. 부가형이란 주형에 부가하여 가할 수 있는 형벌로 신상 공개나 전자 발찌, 취업제한 등이 이에 속한다. 김 교수는 “성범죄 처벌에 대한 국민의 법감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부가형을 두기보다는 기본형을 자체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형법에서는 범죄의 경중에 따라 형벌을 부과하기에 개별 범죄의 기본형은 임의로 올리기 어렵다. 살인, 살해와 같은 범죄를 중한 범죄라고 여겨 강간은 이에 비교했을 때 더 높은 수준의 형벌을 내릴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김 교수는 “이전에는 강간을 살인 같은 범죄에 비해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판사의 성별, 성향에 따른 처벌 차이도 있었다”며 “감경을 줄이거나 그 요건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의 ‘서열’을 고려하는 법의 특성상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형법을 개정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형법이 개정되려면 사법부가 아닌 입법부 차원에서의 역할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사법부나 입법부 차원의 변화 전에는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조두순이 재판에 올랐던 2009년 당시 13세 미만 대상 성범죄 양형기준에 따르면 기본형량의 최고형은 7년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양형기준은 점진적으로 변화해 현재 동일 범죄의 최고형은 12년이 됐다. 이처럼 양형기준은 시대착오적이긴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양형기준은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 국민의 법감정에 가까워져야 할 것이다.


신유정 기자 tlsdbwjd0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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