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전염병이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 일명 흑사병은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원인이 됐다. 급격한 인구 감소는 사회 계층의 변동과 예술의 후퇴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발열과 구토로 시작해 피부발진과 수포 증상으로 이어지는 천연두 또한 세계 곳곳에서 창궐했다. 현재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20세기까지만 해도 전 세계 사망자가 5억 명에 달할 정도로 무서운 질병이었다.

과거의 사람들은 전염병을 신이 내린 저주라고 생각했다. 기도를 통해 답답한 상황의 돌파구를 찾고자 노력했으며 미신에 기대어 생활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전염병의 원인이 밝혀졌다. 현미경의 발명으로 세균과 바이러스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후 흑사병은 페스트균이라는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이고 천연두는 천연두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상황이 끝나지 않은 지금 인류는 여전히 전염병과 전쟁 중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몸속으로 조용히 숨어드는 작은 침입자 세균과 바이러스는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병을 일으키는 것일까.
 

미시세계의 열쇠 현미경

세균과 바이러스는 모두 맨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크기가 작다. 당연히 그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발견하기까지의 시간 또한 오래 걸렸다. 이 과정에서 한 줄기 빛처럼 등장한 것이 현미경이다. 현미경의 발명으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미시세계의 문이 활짝 열렸다.

여러 가지 렌즈를 이용한 최초의 현미경은 1590년경 네덜란드에서 안경을 만드는 일을 하던 얀센 부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현미경은 세 개의 관과 두 개의 렌즈를 이용해 관을 최대로 폈을 때 10배 정도 확대해 볼 수 있었다. 그 후 발명가인 레벤후크가 작은 유리 구슬을 갈아 두 개의 구리판 사이에 끼운 형태인 광학 현미경을 만들었다. 엄지손가락보다 약간 큰 정도의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배율이 273배나 돼 당시에 존재하던 다른 어떤 현미경보다 성능이 좋았다. 본격적으로 현미경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로버트 훅에 의해서였다. 로버트 훅은 물을 넣은 둥근 플라스크와 볼록렌즈로 빛을 모아 시료에 비추는 형태의 현미경을 제작했으며 이를 이용해 최초로 세포를 관찰한 사람이 됐다.

현재 가장 흔하게 이용되는 광학 현미경은 대물렌즈와 접안렌즈로 구성돼 있다. 대물렌즈는 관찰하고자 하는 시료와 가까이 있는 렌즈이며 접안렌즈는 관찰자의 눈과 접해 있는 렌즈다. 광학 현미경은 빛을 받은 시료를 대물렌즈로 확대한 후 이것을 접안렌즈로 다시 한 번 확대해 물체를 크게 볼 수 있도록 한다. 즉 대물렌즈의 배율과 접안렌즈의 배율을 곱한 만큼 관찰하는 물체를 확대해 볼 수 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세균

세균의 존재를 처음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은 16세기 이탈리아의 과학자 프라카스토로다. 17세기 독일의 과학자 키르허 역시 ‘동물전염체’라는 개념으로 세균을 정의했지만 그 실체를 밝혀내기는 어려웠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광학 현미경이 발명된 이후에야 사람들은 세균의 존재를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세균은 하등한 생물체로서 일반적으로 단세포로 이뤄져 활동하는 미생물을 총칭한다. 평균적으로 1㎛ 내외의 크기지만 직경이 0.1〜0.2㎛ 정도로 작은 세균도 있다. 모양에 따라 동그랗게 생긴 구균과 막대 모양인 간균으로 구분하며 생명 활동에 산소를 필요로 하는가에 따라 호기성 세균과 혐기성 세균으로 분류한다.

세균은 원시적인 세포핵을 가지는 생물인 원핵생물에 속한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와 같은 세포 소기관이 없다. 또한 핵막이 없기 때문에 세포의 유전 물질인 핵산이 막에 둘러싸인 상태가 아닌 분자 상태로 세포 내에 존재한다. 세균은 이 핵산을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다양한 생명 활동을 나타낸다. 스스로 양분을 먹고 유기물을 생산하면서 번식하는 것이다.

세균이 서식하는 곳은 매우 다양하다.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나 발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대부분의 세균은 20~60°C에서 생장이 가능하지만 초호열성 세균은 80°C 이상에서도 생장이 가능하다. 영하 5°C에서까지 증식이 가능한 세균도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구 중 하나인 마리아나 해구에서도 세균이 살고 있다고 보고됐다. 우리 몸속에도 수많은 세균이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세균은 인간과 떨어뜨려 놓고 볼 수 없는 존재다.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균은 독소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인체에 해를 끼친다. 세균 독소는 세균이 체외로 배출하는 외독소와 체내에 함유돼 있다가 균체의 파괴와 함께 배출되는 내독소로 구분된다. 디프테리아균, 파상풍균이 외독소를 생성하며 이질균, 콜레라균이 내독소를 생성한다. 반면 생활하수나 공장폐수를 분해해 정화하고 발효 식품의 생산에 이용되는 등 이로운 작용을 하는 유익균도 존재한다.

홀로 증식할 수 없는 바이러스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곳은 1892년 러시아였다. 미생물학자 이바노프스키가 담뱃잎을 죽이는 모자이크병의 병원체가 세균 여과기를 통과할 정도로 작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1898년에는 구제역 바이러스를 찾아냈고 뒤이어 우두, 황열 등의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속속 학계에 보고됐다. 세균보다 미세한 병원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바이러스의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가장 간단한 세포의 구조를 띤다고 할 수 있는 세균보다도 훨씬 단순하다. DNA와 RNA 중 하나인 핵산과 그 핵산을 둘러싸고 있는 단백질 껍질이 핵심 구조의 전부다. 크기 또한 세균보다 훨씬 작다. 마이크로미터 단위를 사용하는 세균과 달리 나노미터 단위를 사용한다.

완전한 생물로 구분되는 세균과 달리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세균과 큰 차이를 보인다. 바이러스의 특성 중 증식, 진화, 유전적 돌연변이 발생은 생물의 특성에 해당한다. 그러나 단독으로 증식하지 못하고 숙주 감염 이후에만 증식할 수 있으며 물질대사와 에너지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무생물의 특성이다. 바이러스를 생물체로 볼 것인지 무생물체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절충해 ‘조건부 생명체’라는 새로운 용어가 제시되기도 했다.

스스로 개체를 늘릴 수 없는 바이러스의 복제 과정에서는 숙주 세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부착-침투-증식-조립-방출의 5단계를 거쳐 증식한다. 부착 과정에서는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 표면의 수용체와 결합하며 침투 과정에서는 부착된 바이러스가 세포 내부로 침투한다. 증식 과정에서는 숙주 세포 내부의 효소를 이용해 핵산을 다량으로 복제하고 바이러스 자체의 유전 정보에 의해 단백질 껍질을 합성한다. 조립 과정에서 핵산과 단백질 껍질이 합쳐져 새로운 바이러스가 생성되고 방출 과정에서 복제된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를 벗어나 외부로 방출된다. 이때 방출되는 바이러스의 양에 따라 숙주 세포가 파괴되기도 한다.

인류를 위협할 내성과 돌연변이

 우리대학 생명과학과 김하원 교수는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세균과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미래의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점점 발전하는 백신과 치료약에 맞춰 세균과 바이러스도 같이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약물을 이용해서는 더 이상 질병을 치료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페니실린에 내성을 가진 황색포도알균이 발견돼 메티실린이라는 새로운 항생제가 개발됐으나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인 MRSA가 등장했다. MRSA를 제거할 수 있는 반코마이신이라는 항생제가 개발되고 나서는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알균인 VRSA가 나타났다.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또한 큰 문제다. RNA를 핵산으로 이용하는 바이러스는 DNA를 핵산으로 이용하는 바이러스보다 돌연변이가 잦다. 이중구조로 이뤄진 DNA와 달리 RNA는 단일 가닥으로 이뤄져 변화가 쉽기 때문이다. 현재 유행 중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RNA 바이러스에 해당한다. 수용체의 모양을 바꾸는 등 끊임없이 변화하는 탓에 백신 개발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된다고 해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김 교수는 “현재까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미 있는 돌연변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지금도 충분히 전파력과 생존력이 강한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새롭게 변한다면 훨씬 위험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과학과 기술은 계속 발전해 왔지만 아직도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질병은 너무나 많다. 내성을 가진 세균의 등장이나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어떻게 일으킬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존을 추구하는 생명체의 기본적인 속성이 야속해지는 순간이다.


김유경 기자 candy886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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