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훈 학술부 정기자
김대훈 학술부 정기자

서울시립대신문에 들어온 지 2학기 째에 접어들고 있다. 멋모르고 막막하던 때가 지나고 이제는 얼추 감을 잡은 것 같다. 시대알리미의 짤막한 글로 시작해서 한 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탑 기사까지…. 참 용케도 써왔다. 짧은 기자생활에도 이런저런 난관이 꽤 있었다. 취재 하느라 애먹은 일, 인터뷰가 늦어 마무리 교정 때까지 기사를 마감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일, 그리고 갑작스레 들이닥친 재난들까지 말이다.

이번 학기 개강호 신문을 쓸 때였다. 9월 초, 나는 고향인 제주에 있었고 하필 맡은 기사는 보도 기사, 그것도 탑 분량이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인터뷰를 잔뜩 따야만 했다. 벌써 머리가 지끈대는데 한 술 더 떠 제주에 3연속 태풍이 들이닥쳤다. 바비, 마이삭, 그리고 하이선.

마이삭이 오던 날, 일하는 학원 곳곳에서 물이 샜고, 태풍이 너무 매서워 예정됐던 아르바이트생이 오지 못했다. 임시로 실장 일을 맡고 있던 나는 오전 8시에 출근을 했는데 위 같은 사정으로 퇴근할 수 없었다. 결국 자정이 돼서야 퇴근을 했다. 그 날 쌓인 피로를 며칠 동안 앓았다. 다행히 학원 일은 쉬었지만 내겐 남은 일이 있었다. 기사를 써야 했던 거다. 취재 요청을 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하나가 터졌고, 멘탈도 함께 금이 갔다. 인생을 재부팅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행히 죽으라는 법은 없었나보다. 내 사정을 알게 된 보도부장님이 적극적으로 취재를 도와주셨다. 문제가 해결돼 나는 한자 한자 기사를 적어나갈 수 있었고 마침내 글을 마무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말 모든 걸 그만 두고 싶은 순간이었는데 참 이상하게도 ‘기사를 써야해’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벌써 버릇이 된 것일까? 돌이켜 보면 가슴 한켠이 웅장해지는 기억이다.


김대훈 학술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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