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훈 학술문화부장
이길훈 학술문화부장

우리는 굉장히 다양한 사상이 공존하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살고 있다. 국가 체제나 이념이 정해져 있을지언정 여러 사상과 의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낼 표현의 자유가 법으로 보장된다. 여러 관점과 생각을 갖고 토론하거나 주장하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만약 정권이 다양한 생각을 표현할 자유를 억압한다면 민주사회 시민들은 곧바로 규탄에 나선다.

그런데 최근 문화계에서 불거진 논란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지난 9월 중순에는 네이버 웹툰의 <복학왕>과 <헬퍼2>가 작품 내에서 여성혐오 표현을 그려 넣어 논란이 됐다. 두 작품의 작가 모두 각각 사과와 해명을 담은 글을 올렸으나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최근에는 또 한 아이돌 그룹의 뮤직 비디오를 두고 논쟁이 발생했다. 영상 속 가수가 입은 간호사복이 짧은 치마에 딱 붙는 옷으로 구성되는 등 실제 간호사복과는 거리가 먼 복장이었기 때문이다. 간호사란 직업군을 성상품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고 대한간호협회에서도 직접 나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며 불만을 표하거나 예술가의 창작 활동과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을 주장하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이 문제를 파시즘이나 검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이번 문제를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조명한다. 물론 그것 역시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기자가 보기에 이 문제의 핵심과는 조금 떨어진 내용인 것 같다. 이번 논쟁은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문제가 아니라 혐오 표현이나 성적 대상화를 어떻게 다뤄야할 지에 관한 문제다.

우리나라는 군사 독재를 거치며 검열과 억압의 공포를 직접 겪은 나라인 만큼 당연히 표현의 자유가 엮인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대상을 혐오하거나 남의 직업을 성상품화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도리의 문제다. 사람들은 작품이 특정 메시지를 특정 방식으로 전달하라고 요구한 적 없다. 그저 당연히 해선 안 될 일에 항의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란 무엇일까. 기자는 적어도 그것이 혐오를 옹호하기 위한 방패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람이고 사람은 기본적인 도리가 무엇인지 사회 교류를 통해 알고 또 판단할 수 있는 존재다. 당연히 해선 안 될 일까지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장돼선 안 된다는 것을 충분히 잘 안다. 물론 그 당연한 일이란 것은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거쳐 계속 바뀌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보편적 가치란 것과 시대에 맞는 도리란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디에나 도리는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이길훈 학술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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