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정부가 1년 6개월 만에 내놓은 입법예고안은 ‘낙태죄 유지’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형법에 있는 낙태죄는 삭제하지만 임신중단을 주수에 따라 부분적으로만 허용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정부가 해당 개정안을 발표했을 때 여러 언론에서 임신 14주까지 임신중단이 허용됐다는 점을 강조해 보도했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은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에도 여전히 임신중단을 ‘낙태죄’로 존치하겠다는 결정이었다. 또한 해당 개정안에 따르면 정부가 기준으로 삼은 22주가 지난 상태에서의 임신중단에는 여전히 현행 처벌 조항이 그대로 적용된다. 이에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한 이들은 이런 정부의 입법예고안을 “역사적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낙태죄 폐지’ 찬성을 ‘낙태’ 찬성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에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이들에게 낙태가 남용될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에 관한 논쟁은 처벌을 내리지 않으면 임신중지를 무분별하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임신중지를 한 여성과 의사에 대한 처벌을 계속할 것이냐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정부가 발표한 주수에 따른 부분적 임신중단 허용은 그 주수 기준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임신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가 여성이 아닌 국가라는데 문제가 있다.

지난 7일 정부가 개정안을 발표한 이후 낙태죄 폐지 찬성과 반대 측 모두 해당 내용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존폐를 두고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정책의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낙태죄’와 ‘동의 낙태죄’를 통해 임신중지를 한 여성과 의료행위를 도운 의사만을 처벌했다. 그러나 임신과 출생의 책임은 여성에게만 있지 않다. 남성과 사회 등 여러 주체를 함께 고려해 낙태죄에 대한 처벌보다도 의료체계 마련, 임신중지 접근성 확대, 여성의 자기 결정권 고려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변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