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활은 무수한 판단들로 이뤄진다. 제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 알람을 맞추고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한다. 점심 메뉴를 고르고 과제를 도서관에서 할지 아니면 카페에서 할지를 고민한다. 간혹 무거운 물건을 낑낑대며 들고 가는 사람을 도와주기도 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자유롭게 말이다.

자유의사에 관해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두 주체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생활 곳곳에 근거가 가득하다. 스스로 내린 선택들이 하루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우리의 상식이 위협받는 경우가 있다. 사회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생각만큼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이다.

명령하는 권위, 복종하는 사람들

1961년 예일대의 지하실에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말끔한 실험실이었다. ‘징벌에 의한 학습 효과’에 관한 실험 공고를 보고 그곳에 왔다. 그가 방으로 들어서니 흰색 가운을 입은 실험자와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과 같은 피실험자였다. 실험자는 그와 남자에게 각각 선생과 학생 역할을 부여하고 각기 다른 방으로 이동시켰다. 실험자의 요구는 황당했다. 단어 암기 테스트를 하되 상대가 틀릴 경우 전기충격을 가하라는 것이었다. 15V부터 시작해서 450V까지 가하되 틀릴 때마다 15V씩 올려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처음엔 쉬운 문제가 이어졌고 분위기는 가벼웠다. 그러다 문제가 점차 어려워지며 학생은 처음으로 오답을 냈다. 15V의 전기충격이 가해졌다. 살짝 따끔한 수준이었기에 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오답이 하나 둘 쌓여갈수록 문제는 심각해졌다. 150V가 넘어갈 시점부터 학생은 무언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했다.

선생 역할을 맡은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실험자를 돌아봤다. “계속 하시면 됩니다” 실험자의 얼굴은 태평하고 진지했다. 그는 계속 전압을 올렸다. 전압이 올라갈 때마다 학생은 비명을 질렀고 거센 저항을 이어갔다. 실험자는 “계속 진행해주십시오”, “계속 진행해주셔야 합니다”,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라는 말만 단호히 할뿐이었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학생은 어느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기절했거나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의 손은 이미 전압을 높이고 있었다.

위 일화는 실제로 벌어졌던 풍경이다. 스탠리 밀그램이 설계한 이 실험은 ‘징벌에 의한 학습 효과’라는 명목으로 이뤄졌지만 실상은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이었다. 천만다행으로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은 배우였고 실제 전기충격은 없었다. 그러나 선생 역할을 맡은 피실험자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그들에겐 실제 상황이었던 것이다.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밀그램은 실험 전 0.1%의 사람들이 최대치인 450V까지 전압을 올릴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65%의 사람들이 450V까지 전압을 올렸다. 오직 실험자의 말에 복종하기 위해서 말이다. 실험을 포기하면 받는 손해는 사례금인 4.50달러가 고작이었다. 

밀그램 복종 실험의 피실험자는 대부분 완전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자란 대학생 등 우리가 해당되거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만일 실험이 이뤄지기 전 그들에게 “여러분은 실험실에서 전기충격으로 사람을 죽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당신을 미친 사람 취급할 것이다. 밀그램이 실험과 별개로 진행한 설문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입장인 사람들에게 실시한 설문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150V 이상 전압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자신의 잠재성을 몰랐던 셈이다.

우리는 왜 방관하는가

1964년 3월 뉴욕 퀸스 주택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묘한 것은 그 살인이 30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는 점이었다. 총 38명의 목격자가 있었고 신고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키티 제노비스 살인사건’은 빠르게 언론에 퍼져나갔고 여론은 38명의 목격자에 대한 비난으로 점철됐다. 다만 이후 조사에서 해당 사건은 언론의 과장이었음이 밝혀졌다. 실제 목격자 수는 12명이었고 2명은 실제 경찰 신고를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바탕으로 이뤄진 실험은 여전히 가치가 남아있다. 달리와 라타네에 의해 밝혀진 ‘방관자 효과’가 바로 그것이다. 달리와 라타네는 제노비스 살인사건을 전해들은 이후 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며 한 가지 실험을 고안했다.

실험의 내용은 이러했다. 대학생들을 모아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후 서로 보이지 않는 각각의 방에 둔다. 각 피실험자들은 각 방에 비치된 마이크를 통해 대학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의 차례가 아닐 경우 마이크는 꺼진 상태이므로 피실험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이런 조건에서 학생으로 위장한 배우가 자신의 발표 차례에서 간질 발작을 일으킨다. 그가 죽어가며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낼 때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한지 체크한 것이다. 실험은 인원을 바꿔가며 진행됐다.

실험 결과 발작을 일으킨 학생을 도울 사람이 자신 외에 없다고 인지할 때는 신고율이 85%였다. 반면 자신 외에도 도움을 줄 사람이 4명 이상 있을 땐 단 31%만이 신고를 했다. 현저히 낮은 수치였다. 달리는 이를 책임 분산의 결과로 설명한다.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은 적어진다는 것이었다. 자신 외에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타인의 수가 충분할수록 그 자신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두 심리학자는 발작 실험을 바탕으로 제노비스 살인사건의 기묘함을 이해시켰다. 한편으로는 다른 가능성도 고려했다. 살인사건 목격자 중 일부는 애초에 위험 상황임을 인지 못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차오르는 연기,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앞선 실험은 ‘인지된 위험’에 대처하는데 사회적 맥락이 미치는 영향을 보여줬다. 달리와 라타네는 한 발 더 나아가 위험 인지 단계의 사회성을 밝히는 실험을 설계했다. 실험은 간단했다. 피실험자가 미리 섭외된 배우 두 명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실험자가 방으로 들어와 설문 조사지를 나눠준다. 실험자는 문제가 있으면 불러달라고 한 뒤 방을 나선다. 이윽고 실험실 안에 새하얀 연기가 차오른다. 분명 문제 상황이다. 그러나 나머지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계속 설문조사를 작성한다. 피실험자는 이때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일반적인 상식에 비춰 보면 연기가 처음 새어 나오는 시점에서 곧바로 실험자를 부르는 게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과는 달랐다. 배우들이 반응하지 않자 피실험자들은 그들을 따라 설문을 계속 진행했다. 연기가 온 방안을 가득 메울 때까지 실험자를 호출하지 않았다. 수십 명에 달하는 인원 중 4분 이내에 실험자를 부른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주변이 반응이 없자 단순한 에어컨 결함일 것이라고 치부했다고 진술했다. 그에 반해 실험실에 혼자 있을 경우엔 모든 사람들이 연기를 발견한 즉시 실험자를 불렀다. 아무리 둔감한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당면한 위험에 대처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위험을 인지하는 단계부터 사회적인 요소가 개입해온 것이었다.

심리학이 말해주는 ‘나 사용법’

이처럼 사회심리학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개인이 보이는 심리 기제를 다룬다. 사회심리학은 당신의 판단과 행위가 상황 맥락에 따라 결정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회심리학이 우리를 주체성 없는 존재로 정의하진 않는다. 다만 상황에 따라 우리는 스스로도 미처 상상 못한 사람이 되기도 하며 평소 성격과는 완전히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거장 B.F 스키너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위도 환경에 의해 지배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환경을 창조해내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사회심리학의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앞서의 실험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의 경우 같은 잘못을 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사회심리학을 교육하고 학습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응급처치 교육에서 심폐소생술과 더불어 한 명을 콕 집어 신고를 요청하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 급박한 상황에 구경꾼이 모여들었을 때 책임 분산으로 인해 원활한 신고가 이뤄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사전 대처로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게 됐다. 혹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마트나 구세군에 비치된 기부함은 텅 비어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이 동전과 지폐로 적당히 차있다. 이 역시 사회심리학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사람들은 텅 비어있는 함보다 적당히 차있는 함에 기꺼이 기부금을 넣는다. 먼저 온 다른 이들을 상상하고 그들의 행동에 동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부함을 채워두면 보다 더 많은 기부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심리학은 생활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활용되고 있다.


김대훈 기자 daehoon0523@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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