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니즘, 나와 지구를 위한 선택

최근 환경, 동물복지 등 여러 이유로 채식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특히 2019년이 ‘비건의 해’로 선정됐을 만큼 채식은 어느새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채식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이야기로 간주되곤 했다. 그렇지만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채식인구는 약 1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에 달한다. 지난 1일에는 ‘세계 비건의 날’을 맞이해 한 식품회사에서 젓갈 등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비건용 김치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비건 인구가 늘고 있으며 관련 시장도 커지고 있다. 이에 기자도 일주일간 채식을 실천해보게 됐다.

풀만 먹으면 채식? 다양한 채식의 종류

채식주의란 고기류 등 동물성 식품보다는 과일·채소·곡물 등 식물성 식품을 주로 섭취하는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말한다. 흔히 채식에 갖는 가장 큰 오해는 채식주의자들은 오직 채소만 먹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채식의 여러 유형 중 완전 채식인 비건에만 해당된다. 유형에 따라 락토, 락토오보, 페스코 베지테리언은 유제품, 달걀, 생선을 섭취하기도 한다. 가금류나 조류를 먹는 폴로, 페스코와 상황에 따라 육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안 같은 세미 베지테리언도 있다. 국물 요리가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육수는 허용하되 덩어리 고기를 먹지 않는 비덩주의라는 유형도 존재한다.

인생 첫 채식, 다짐을 실천으로

기자가 하루아침에 채식을 다짐하게 된 건 아니었다. 이전부터 환경과 동물권에 관심이 많아 공장식 사육을 다룬 기사를 쓰기도 했지만 직접 채식을 하겠다고 실천에 나선 적은 없었다. 비교적 부담이 덜한 ‘고기 없는 월요일’ 같은 캠페인에 동참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갖가지 이유로 시작을 미뤄왔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채식을 시작하겠다는 자기 합리화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 기사를 작성하면서 처음으로 일주일 동안의 채식을 실천하게 됐다. 채식을 하겠다 마음을 먹었지만 남은 과제가 있었다. 어떤 유형의 채식을 할지 정해야 했다. 여러 채식의 유형 중 기자는 우선 일주일 동안만 하는 채식이니 기왕 하는 김에 완전 채식인 비건을 하기로 결정했다.

풀만 먹고 어떻게 사냐고? 채식에도 먹는 즐거움이 가득해

채식(菜食)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비건을 하면 채소나 과일 같은 음식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기자 또한 처음에는 일주일 동안 먹는 재미는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주일 동안 기자는 고구마나 샐러드부터 라면, 마라탕, 피자, 짬뽕까지 꽤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식물성 재료로 만든 빵이나 우유 대신 두유를 넣은 음료까지 비건을 위한 음식도 찾아 먹었다. 비건 음식을 구하느라 품이 들긴 했지만 흔히 채식하면 떠올리는 것보다 다양한 선택지들이 있었다. 우리대학 주변에서도 김밥집에서 계란을 빼달라고 하거나 채식메뉴나 옵션이 있는 식당을 방문한다면 비교적 쉽게 채식을 유지할 수 있다. 마치 해리포터 영화 속에서 다이애건 앨리로 가는 비밀통로처럼 비건 어플을 통해 평소 가던 식당에서 비건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하루는 서브웨이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서브웨이에 베지 메뉴가 있고 빵이나 소스 옆에 비건 표시가 돼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최근에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여러 대체식품이 개발되고 있다. 기자는 미국 식물성 고기 제조업체인 ‘비욘드 미트’의 버거 패티와 식물성 고기가 들어간 비건 피자를 먹었다. 비건 피자는 일반 피자와 도우도 많이 다르고 위에 올라간 재료도 달랐지만 맛있었다. 비욘드 미트의 버거 패티는 빌 게이츠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유명인들이 대규모 투자를 한 대체육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하고 먹었다. 그런데 식감도 기대 이하였고 냄새도 이상해서 실망이 컸다. 굳이 대체육을 먹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다른 업체의 대체육은 다르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성분 분석의 달인이 되다

비건을 하던 일주일 동안 기자에겐 습관이 하나 생겼다. 바로 ‘성분 분석표 보기’였다. 대부분의 식품 뒷면엔 알러지 유발물질을 강조해 표기하고 있다. 그 부분을 활용하면 비건을 할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를 간편하게 구분해낼 수 있었다. 기자는 완전 채식을 했기에 성분 분석표를 보고 ‘계란, 우유,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 꿀, 팜유’ 등이 함유되지 않은 음식을 찾아야 했다. 보통 비건 소스나 완제품을 사서 먹는 경우가 많아 성분 분석표를 보고 괜찮은지 여부를 확인하곤 했다. 그러다 첫날에는 야식으로 두부김치와 막걸리를 먹었는데 다 먹고 나서야 김치에 젓갈을 사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분 분석표에만 의지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아 발생한 실수였다.

그렇지만 더욱 큰 문제는 정확한 성분 분석표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였다. 일반 식당이나 배달음식 등은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알기 어려웠다. 채식 식당 정보를 제공하는 어플을 활용하거나 인터넷에 검색해 비건 메뉴이거나 채식 옵션이 가능한지 확인해야 했고 시중에 나와있는 정보가 없다면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방법은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친구들과 함께 채수 옵션이 있다는 마라탕 가게를 찾아갔다. 채수 옵션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인터넷에 나오지 않아 먼 길을 걸어갔는데 허탕을 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도 번역 어플까지 사용해가며 채수 옵션을 확인했고 비건 마라탕을 먹을 수 있었다.

이번 체험에서 기자는 교차오염까지 고려하진 않았다. 교차오염이란 동물성 원재료를 사용해 조리한 조리기구를 비건 음식을 조리할 때 사용하는 등 조리과정이나 공정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말한다. 원래 비건 제품 인증을 받아야 하거나 엄격한 비건을 할 때는 이런 교차오염의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체험에서 교차오염까지 생각했다면 성분 분석표를 보거나 직접 음식 재료를 묻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먹을 수 있는 것도 한정적이라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동물 보호를 위해 채식하는 현대 채식인

과거 채식은 종교, 철학적 이유나 개인의 건강을 위해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환경이나 동물권에 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이를 동기로 채식을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실제로 채식을 하는 이유에 관해 MBC 다큐스페셜 제작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환경·동물 보호’를 이유로 답한 사람이 58.14%로 가장 많았다.

채식을 하면 왜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육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봐야 한다. 동물을 사육하기 위해서는 넓은 부지와 사육시설이 필요하다. 또한 가축에게 먹일 곡물과 사료의 경작지도 있어야 한다. 이에 산림을 개발해 숲이 파괴되거나 토지가 침식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많은 물이 사용된다. 돼지, 닭, 소 같은 가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도 상당하다. 실제로 소 한 마리를 온전히 식품으로 소비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최대 28톤으로 이는 자동차 한 대를 5년간 운행했을 때 나오는 탄소량과 맞먹는다. 물론 채소를 기르는 일도 친환경적이지는 않다. 채소를 기르기 위해서는 밭을 개간해야 하며 많은 농업용수가 소비된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육식을 할 때 환경 파괴가 더 많이 발생하기에 이를 막고자 채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동물 보호가 채식의 동기인 경우 동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서 출발한다. 동물권은 동물도 인간과 같은 생명이므로 인권에 준하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특히 ‘공장식 축산’으로 길러진 가축을 소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채식에 동참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참고기사 : 제744호 5면 ‘동물과 고기의 딜레마, 우리 식탁은 어디에서 오는가’) 공장식 축산이란 작은 공간에 많은 가축을 밀집시켜 사육하는 축산방식을 말한다. 대다수의 가축이 동물권이 보장되지 않는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되기에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육류 소비를 줄여 공장식 축산의 필요성을 줄이고자 한다.

채식을 넘어 비건으로

보통 윤리적 가치 때문에 채식을 선택한 이들은 식습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죽제품, 동물실험 제품 등 동물성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동물 착취에 반대하는 보다 적극적인 개념을 비거니즘이라고 한다. 기자 또한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을 시작했기에 단순히 육류나 생선 등을 먹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동물의 알이나 우유, 꿀 등 동물로부터 얻은 식품까지 먹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우유나 꿀처럼 동물로부터 얻은 식품이 비건 음식이 아닌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그 이유는 우유나 꿀은 동물이 자신들이 소비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사람들이 소비하기 시작하자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비윤리적인 생산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생산과정에서 오랑우탄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팜유가 들어간 식품도 소비하지 않았다. 비거니즘은 생산이나 폐기과정에서 동물이나 환경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비건을 실천하던 중 기존에 사용하던 샴푸를 다 써서 동물성이거나 동물 실험한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비건 샴푸바를 구매했다. 샴푸바는 고체형태의 비누로 원료도 친환경적이지만 플라스틱 용기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았다. 실제로 해마다 8백만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은 바다로 흘러가 해양생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해양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이렇게 해양생물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플라스틱 사용을 반대하는 것도 비거니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명의 완벽한 채식인과 열 명의 채식 지향인

이틀은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 지인들을 만나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학교 주변에 있는 ‘하오짬’이라는 가게와 ‘국수천천히’에 갔다. 하오짬에서는 야채식 짜장, 짬뽕, 볶음밥을 선택할 수 있었다. 볶음밥에는 계란이 들어간다고 해 짬뽕밥을 선택해 먹었다. 천천히 국수에서는 열무국수를 먹고 싶었지만 멸치육수를 사용한다고 해 계란, 김치를 뺀 비빔국수를 먹었다. 앞서 언급했듯 육수를 사용하는 국물 요리가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눈에 보이는 재료만을 보고 비건 음식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도 어려웠다.

밥을 먹던 중 고기 없는 월요일에 참여하고 있는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한 명의 완벽한 채식인보다 여러 명의 채식 지향인이 더 좋다고 하더라”. 이는 한 채식주의자가 한 말로 여러 명의 채식 지향인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이 더 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월요일마다 SNS에 채식 식단을 올리는 선배 덕분에 함께 고기 없는 월요일을 시작하게 된 친구도 있었다. 기자 역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리대학 채식 동아리인 ‘베지쑥쑥’의 부원들과도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 부원은 얼마 전 인턴 생활을 하면서 함께 하는 식사자리나 구내식당을 이용할 때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채식을 하는 이들은 개인적인 어려움보다도 사회적인 어려움이 크다고 이야기한다. 채식인들을 위한 선택지가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요즘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 간 비건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자도 채식 기간 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은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해야 할 때였다. 이럴 때 주변에 채식을 하는 이들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큰 도움이 됐다. 이처럼 비거니즘 확산을 위해서는 연대도 중요하다. 실제로 베지쑥쑥은 ‘휘경동 채식지도’나 채식 관련 서적을 제작하거나 교내외에 채식 옵션 추가를 제안하는 등 비거니즘의 확산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

꽤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던 채식을 직접 실천하게 된 일주일 동안 기자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갖은 이유로 채식 실천을 미뤄왔던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실제로 일주일간의 비건 기간이 끝난 후에도 베지 샐러드를 먹는 등 평소보다 육류 소비를 많이 줄이게 됐다. 그렇지만 엄격한 비건은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에 앞으로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육류를 섭취하는 플렉시테리언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기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채식을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완벽한 채식주의자에 대한 강박을 가지기보다는 채식을 일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가볍게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


글·그림_ 신유정 기자 tlsdbwjd00@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