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우(국관 18) 시대법학회 대표

2018년 10월,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확정판결을 내렸다. 일본기업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일본 정부가 한국을 백색국가(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보복성 조치를 가하자 한국에서는 ‘No Japan’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등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본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강제집행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양국 정부와 국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반인권적 행태에 있다. 다만 이와 별개로 2018년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적으로 문제 될 여지는 없는지, 강제징용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는지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1965년 한국과 일본이 체결한 청구권 협정에 관해 일본은 양국 정부와 양국민 간의 청구권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반면 우리 대법원은 강제징용피해자의 개인적 청구권과 한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은 여전히 존속한다고 판결했다. 국가 간 청구권 협정은 개인적 청구권 소멸과는 무관하며, 일본이 한국에게 지급한 자금은 단순한 ‘경제협력자금’에 그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실질에서는 국가 간 협정으로 국민의 청구권이 함께 청산되는 ‘일괄보상협정방식’이 인정되고 있다.

예컨대, 20세기 초부터 약 30년 동안 리비아를 식민 지배한 이탈리아는 우호 협력 및 동반자 관계 협약을 통해 식민지배책임을 해결하였다. 이 조약 또한 양국과 국민 사이에 발생하는 청구권 문제가 청산된다는 명시적 조항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한 과거 역사의 장을 최종적으로 닫기를 희망한다”는 전문 내용과 “과거의 장 및 분쟁의 최종적 종료”와 같은 표제 문구를 통해 국가 간 청구권뿐만 아니라 국민의 청구권까지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와 같은 일괄보상협정은 2005년 ILA(세계국제법협회) 보고서와 2006년 ILC(국제법위원회) 외교적 보호 초안에 의해 국제법적 정당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ILC 초안은 가해국으로부터 받은 보상을 피해자에게 최대한으로 지급해야 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이는 법적 의무보다 도덕적 의무로 이해된다. 또한, 일괄보상협정으로 개인의 권리가 소멸할 수 있다는 견해에는 변함이 없다(더욱 자세한 논의는 이근관의 논문 「한일청구권협정상 강제징용배상청구권 처리에 대한 국제법적 검토」을 참고하라).

따라서 ICJ(국제사법재판소)와 같은 국제사법기관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의 해석과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판단 받는다면 2018년 대법원의 논리가 그대로 인정될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이 때문에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본 사안에 우리 대법원이 지나친 ‘사법 적극주의’적 태도를 취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물론 일제의 강제징용은 우리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관한 문제라는 점에서 피해 회복을 위해 ‘최대’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 외교적, 국제법적 논란이 큰 사안을 국내 법원의 판결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최선’인지는 의문스럽다. 어찌 되었든 이미 대법원 판결은 확정되었고 남은 것은 손해배상의 이행과 관련된 문제이다. 한일 양국 정부 모두 국내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감정을 자극하기보다, 원만한 교섭과 합의를 통해 타협점을 찾기 바란다.


*독자여론은 신문사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울시립대신문사는 독자 여러분의 투고를 기다립니다.
신문사 홈페이지(http: //press.uos.ac.kr)로 접속하세요.
글이 채택되신 분에게는 원고료를 드립니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