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밴 플리트상을 수상했다. 밴 플리트상은 한미 친선협회인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1992년부터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매년 수여하고 있는 상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수상식에서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올해 행사는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의미가 남다르다”며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남녀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일부 네티즌들이 이 수상 소감을 문제 삼았다. 중국의 국가 존엄을 무시했으며 전쟁에서 죽은 ‘중국인민지원군(이하 중국군)’을 무시한 발언이라는 이유였다.

해당 사건으로 6.25 전쟁에 대한 중국 네티즌들의 시각이 논란이 되던 와중 논란을 더 크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23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 작전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중국군의 6.25전쟁 참전을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행동"이라 표현한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곧바로 “한국전쟁은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이라고 반박했으며 우리나라 역시 “북한의 남침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입장을 밝혔다.

이런 논란 속에 오랜 기간 잊혔던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용어가 다시 떠올랐다. 항미원조는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구한다’는 의미로 중국의 참전 명분 중 하나이자 중국에서 6.25전쟁을 부르는 명칭이기도 하다. 항미원조는 중국이 6.25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을 함축한 용어라고도 할 수 있다.

▲ 압록강을 건너는 중국군의 모습. 중국은 1950년 10월 19일부터 압록강을 넘기 시작했다.
▲ 압록강을 건너는 중국군의 모습. 중국은 1950년 10월 19일부터 압록강을 넘기 시작했다.

항미원조를 내건 중국군의 참전

1950년 10월 18일 중국군들이 압록강을 넘어 한반도로 넘어와 전쟁에 개입했다. 이들의 명분은 ‘항미원조 보가위국(保家衛國)’이었다. 미국에 맞서 조선을 도와 국가와 가정을 지킨다는 의미다. 우리대학 중국어문화학과 하남석 교수는 “국군과 국제연합군(이하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계속 북진해오자 중국은 위기를 느꼈다”며 “북한을 도와 유엔군을 남하시켜야만 중국 역시 안전할 것이라 여겼다”고 설명했다. 전쟁에 참전한 중국군은 정식 명칭이 중국인민지원군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의용군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지휘관이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던 펑더화이였으며 군대 역시 중국인민해방군 소속이었다.

중국군은 초반에는 게릴라 전술로 유엔군의 전력을 파악하다가 본격적인 공세를 펼쳐 유엔군과 국군을 남쪽으로 후퇴시켰다. 평양, 개성까지 계속 내려왔으며 이윽고 서울까지 점령했다. 그러나 밀리던 유엔군 역시 전력을 다듬어 북진을 시작했고 서울을 재탈환했다. 그 뒤 38도선을 기준으로 크게 북진하거나 남진하는 일 없이 고지전이 이어지다 휴전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이 전쟁을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으로써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참전했고 미국에 승리한 전쟁이라고 하지만 기존에 북한이 점령하고 있던 영역을 넘어 서울까지 점령해오는 등 보가위국 이상의 행동을 보였다. 또한 전쟁 전 마오쩌둥은 김일성이 스탈린을 설득하는 것을 돕는 등 군대 개입이 없었을 뿐 전쟁 발발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 승리했다는 주장에 관해 보자면 유엔군을 후퇴시키는 등 개입 초에 승리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정말 항미원조 보가위국만이 중국군의 목적이었다면 중국 입장에서는 목적을 달성했다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다시 북쪽으로 쫓겨 올라간 점이나 중국군이 입은 피해, 전쟁이 최종적으로 휴전으로 끝난 점 등을 고려할 때 미국에게 승리한 전쟁이라 주장하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반미감정이 부활시킨 항미원조 문구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항미원조는 중국 내부에서도 점차 사용되지 않았었다. 한중관계가 정상화됨에 따라 한국을 자극할만한 단어 사용을 피한 것이다. 그 대신 조선전쟁이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됐다. 조선전쟁은 그 전에도 북한과 일본에서 주로 사용되던 용어로 한반도를 조선반도라는 지명으로 부르는 데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은 다시 항미원조를 강조하며 관련된 다큐멘터리와 영화 등 영상매체를 제작해 애국심 집결에 활용하고 있다. 하 교수는 “최근 몇 년간 미중관계가 악화되면서 다시 항미원조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단순히 한국을 핍박하는 맥락보다는 미중관계의 맥락이라는 큰 차원에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다. 하 교수는 “항미원조는 중국의 입장이기 때문에 전쟁 중 중국이 적국이었던 우리에겐 당연히 불쾌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주장의 경우 곧 중국과 같은 편인 북한의 승리와 연결되기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우리에게 중국군 참전은 북진을 통한 통일의 기회를 놓치고 분단 상황을 고착화하게 만든 사건이다. 전쟁에 개입해 국군과 유엔군을 남하하게 만든 중국이 항미원조를 외치는 것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 중국 단둥에 위치한 항미원조 기념관. 입구에 마오쩌둥과 당시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 뒤 한자로 적힌 ‘항미원조 보가위국’이라는 구호가 눈에 띈다. (출처: 항미원조기념관 홈페이지 캡쳐)
▲ 중국 단둥에 위치한 항미원조 기념관. 입구에 마오쩌둥과 당시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 뒤 한자로 적힌 ‘항미원조 보가위국’이라는 구호가 눈에 띈다. (출처: 항미원조기념관 홈페이지 캡쳐)

역사관 차이와 역사 왜곡 사이에서

지난달 21일 왕웨인 주한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방탄소년단을 둘러싼 논쟁에 관해 “양국이 맺은 두터운 우정을 소중히 여긴다”며 “역사를 거울로 삼고 미래를 내다보며 평화를 소중히 여기고 우호관계를 증진하는 것은 양국이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달 27일 싱하이밍 주한대사는 '2020 한·중·일 평화포럼'에 참석해 시진핑 주석의 발언에 대해 “역사적 관점에서 봐주길 바란다”고 해명했다. 하 교수는 이 같은 중국 외교가의 발언에 관해 “국가마다 역사에 관한 해석은 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니 이런 것으로 싸우기보다는 우호를 다지는 것에 집중하길 바란다”는 뜻이라 해석했다. 여기에 덧붙여 하 교수는 “이 문제는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분쟁보다는 중국이 항미원조를 외치는 이유와 대응책을 강구하고 실제 학문적 논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6.25전쟁에 관해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고 심지어 전쟁의 원인에도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공산주의의 팽창주의에서 원인을 찾는 전통주의 학설,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원인을 찾는 수정주의 학설, 한반도 내부의 좌우 대립에서 원인을 찾는 내적 기원론 등이 대표적인 학설이다. 이념 차이와 시기에 따라 공개된 자료에 따라 여러 학설이 나오는 것이다. 전쟁의 명칭이나 영향 평가 역시 각 국가마다 다르다. 이렇듯 6.25전쟁을 둘러싼 역사관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중국의 발언을 사실로 받아들여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주장에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많고 세계사적 관점에 비춰 봐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 이것을 학술적 고찰과 토론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감정적 분쟁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길훈 기자 greg0306@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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