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더위에 하차작업은 사람을 과로사하게 만드는 것을 알면서도 중고로 150만원이면 사는 에어컨을 사주지 않고···’ 지난달 21일 생활고와 택배 대리점의 갑질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로젠택배’ 노동자 유서의 일부분이다. 잇따라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로 생을 마감하며 택배 노동자의 과중한 업무와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사회적 관심이 더해지고 있다. 계속되는 과로사와 개선되지 않는 업무 환경에 대한 불만은 파업으로 이어졌다. 로젠택배는 지난달 22일 부산 로젠택배 노조 파업을 시작으로 파업에 돌입했고 이후 로젠택배 대표는 대리점에서 일어나는 불공정한 계약관계와 갑질을 단속할 것이라 약속했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에 따른 영향이 파업으로 이어져 택배업계엔 큰 혼란이 있었으나 사측에서 대안을 내놓으며 점차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 같아 보였다. ‘CJ 대한통운’은 지난달 22일 택배 노동자의 업무를 돕는 분류지원인력 4천 명을 투입할 계획을 밝혔다. 사측의 사과와 개선의지는 도출했지만 모든 택배회사가 이와 같은 조치를 내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택배 노동자 노동 실태의 완전한 개선은 꾀하지 못했다.

특수고용직은 특별하지 않다

택배 노동자들의 이러한 업무 과중은 택배 분류작업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있다. 택배 노동자는 택배를 배송하기 위해 먼저 상품 분류작업을 실시한다. 택배업체마다 이 과정에 따로 인력을 배치한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택배 노동자가 직접 이 업무를 진행한다. 이는 관행적인 업무다. 택배 노동자의 업무는 상품 배송이 전부로 보인다. 그러나 택배를 배송하기 위해선 상품을 담당 지역별로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비자들이 택배를 통해 물건을 받는 일들이 늘어났고 이는 분류업무까지 도맡는 택배 노동자들의 업무 과중으로 이어졌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코로나로 인해 물량이 3~40% 이상 갑자기 증가하면서 매우 지칠대로 지쳐있는 상황”이라며 택배사 측에 분류도우미 한시적 투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택배업계에 종사하는 이들 중 운송을 직접하는 택배 노동자의 경우 고용형태가 특수해 이들을 근로자 범주 안에 넣어야 할지 모호한 지점이 생긴다. 택배업계 대부분은 택배 노동자를 특수고용직 형태로 고용한다. 특수고용직을 통해 노동을 하면 위임계약이나 도급계약에 의거해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는 개인사업자로 인정된다. 택배 노동자의 경우 자신이 배달하는 물건 건수마다 수당을 받게 되는 것이다. 특수고용은 택배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에서도 나타난다. 얼핏 일반 근로자와 같이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역량에 따라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이들은 근로자로서 대우를 받지 않기 때문에 노조를 형성하거나 사측으로부터 보험을 보장받는 것이 어렵다.

또한 자신의 직군이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때나 올해와 같은 전 세계적인 경제침체기엔 고용 안정을 보장받기 어렵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코로나19 여파로 특수고용직을 비롯한 프리랜서의 소득이 크게 감소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특수고용직과 프리랜서 계층별 평균 소득 감소율은 전 분위에 걸쳐 55%이상을 기록했고 1분위의 경우 75.6%라는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러한 특수고용직의 노동실태에 대해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권미정 사무처장은 “특수고용직은 노동시간의 제약이 없고 할당량에 따라 수입이 책정되다보니 과로에 시달린다”며 “사업자와 사업자 간의 계약이라는 형식으로 계약서 내용이 구성되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것도 내용에 따라 제약이 생긴다”고 밝혔다. 지난달 22일 극단적 선택을 한 택배 노동자 역시 이러한 사업자 간 계약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기 어려운 형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권 사무처장은 “특수고용직 계약서엔 대신 일할 개인사업자를 구해야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계약내용까지 있는 상황”이라며 “회사의 지시를 받아서 일을 하지만 개인사업자 형태로 근무해 근로기준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특수고용직의 노동실태에 정부는 특수고용직 종사자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고용보험법』과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지난 9월 법안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지정되는 구체적 대상 직종은 고용보험을 보장받는다. 이번 개정은 고용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첫 단계에 불과하고 대상 직종을 넓히기 위한 절차와 시간이 걸리기에 그 기간 동안 특수고용된 노동자들을 보호할 방안도 필요하다. 권 사무처장은 이에 대해 “『근로기준법』의 저촉을 받지 않고 실적과 할당량에 따른 임금지급체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쟁이 일어난다”며 “회사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은 늘어나지만 보호는 어려워

택배 노동자 과로사 사건과 파업에 이어 KBS 청소 노동자도 파업에 나섰다. 지난달 29일 KBS 자회사인 ‘KBS비즈니스’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들의 쟁의가 시작됐다. KBS비즈니스 소속 KBS 청소 노동자들은 1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한다. 때문에 아무리 오랫동안 KBS에서 청소업무를 맡은 사람이어도 정규직으로 전환이 불가하다.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형태에 의해 안전한 노동을 보장받지 못하기도 했다. 한 청소 노동자는 발목골절이 된 와중에도 비정규직은 병가가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KBS비즈니스는 1년 계약에서 3년 계약으로 변경해주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KBS 청소 노동자 측은 쟁의 의지를 밝혔다. 이들은 KBS 소속이 아닌 KBS 자회사 소속이며 그중에서도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은 연 단위 혹은 계약 단위로 고용 갱신이 되기 때문에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올해 비정규직 노동자수는 748만 명에 달한다. 이는 노동자 비중 중 36.4%에 달하는 수치다. 또한 2014년 이후로 600만 명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올해 비정규직 규모는 2019년보다 3%p 가량 늘었다. 비정규직의 노동형태는 근로계약기간을 정하거나 계약을 갱신하는 한시적 근로자와 1주에 36시간 미만 일하는 시간제 근로자, 파견이나 용역 특수형태로 근로하는 비전형 근로자로 나뉜다. 사측과 계속해서 계약을 해야 하는 한시적 근로자는 올해 1백만 명 가량 늘었다. 비정규직 규모는 점차 늘어나지만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은 해소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용균재단 권 사무처장은 “IMF 이후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비정규직법』이 제정되면서 비정규직이 한국사회에서 비정상적인 고용형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고용형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며 “고용형태가 불안정해 비정규직들은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 못한다”고 『비정규직법』의 문제점을 짚었다. 그는 “고용형태가 불안정해 일자리 유지가 어떤 것보다 최우선돼 최저임금을 받거나 장시간노동으로 부족한 임금을 채우고 인격모독을 당해도 사측에 개선 요구를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언제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면 상시고용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동유연화에서 시작된 고용불안

비정규직이 생기고 특수고용, 파견 근로 등으로 노동자들이 불안한 노동시장에서 생활한 것은 IMF 이후 등장한 노동유연화 정책에서 시작됐다. 노동유연화 정책은 기업과 노동자 입장에서 자유로운 노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노동자의 고용 불안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다. 노동자의 권리와 기업과 노동자 간 동등한 위치가 설정된 후 노동유연화 정책이 단계적으로 실시된다면 노동유연화 정책의 장점이 노동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 침체로 인해 비정규직을 대거 고용하는 방식으로 시행했기 때문에 비정규직은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자리잡았다. 노동이 유연해져 노동자가 융통성 있는 노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측이 노동자와 계약하는 방식이 유연해져 고용을 편리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 실태에 대해 김용균재단 권 사무처장은 “한국사회에서 노동의 중요성을 임금이 아닌 필요성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사회의 가치 기준을 바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의 중요성을 인정해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학생들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면 노동자다.

취업이 아니라 하더라도 노동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 내게 주어진 권리가 있다”며 “노동자의 권리는 나중에 취업해서가 아니라 지금부터 찾아야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현장실습을 하다가 다치는 일이 생길 때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우진 기자 woojin2516@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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