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씨는 문익점’.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의 가사 중 일부다. 사신으로 파견돼 원나라를 방문한 문익점이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 고려로 돌아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비록 몰래 가져온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논란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목화를 고려에 들여온 사람이 문익점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이야기다.

고작 씨앗 하나를 들여온 것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이기에 한국을 빛낸 위인들이 등장하는 노래에 문익점의 이름을 포함시킨 것인지 의아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목화가 새로 들어온 이후 고려 사람들의 생활 전반이 바뀌었다. 작게는 목화를 이용한 면직물로 옷을 만들어 사람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됐고 크게는 국익 증진에 도움이 되는 면화 산업이 탄생했다.

이처럼 작물의 품종은 인간의 삶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되며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인류는 작물을 더 쉽게 재배하기 위해 작물의 품종을 개량해 왔다. 품종 간의 교배를 통한 새로운 품종 또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선별하고 재배해 만들어지는 품종

‘품종(cultivar)’이라는 용어는 ‘재배된(cultivated)’과 ‘변종(variety)’이 합쳐져 생긴 말이다. 이때 변종은 같은 종이지만 서로 다른 형태와 특징을 가진 무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변종 중 인간이 생활에 이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특별한 성질이나 형태를 가지도록 선발한 변종을 품종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인류는 정착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품종을 만들어 왔다. 오늘날 재배되고 있는 중요한 작물들은 대부분이 야생 식물 그대로 전해져 온 것이 아닌 품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야생 밀의 경우 그 키가 1m가 넘었지만 현대의 밀은 키가 그 절반 이하인 50cm 정도다. 키가 큰 야생 밀 사이에서 우연히 키가 작은 돌연변이 밀을 발견한 후 그 유전자를 이용해 재배한 밀을 품종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키가 작은 밀은 거센 바람으로 인해 꺾이거나 병충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수확량이 훨씬 증가하는 이점이 있다. 바나나 역시 처음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달리 과육 안에 씨가 매우 많았다. 그러나 어느 날 먹기 편하고 풍미도 더 좋은 씨 없는 돌연변이 바나나를 발견했고 이것이 계속해서 재배되며 품종으로 뿌리내리게 됐다.

품종은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특징에 있어 다른 품종과 구별할 수 있으며 후속 세대에서도 그 특징이 유지된다. 한 종 내에서는 서로 다른 품종이라고 해도 교배가 가능하다. 교배의 결과로 후손을 만들 수 있으며 이 후손은 부모와는 다른 형질을 가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새로운 품종으로 고정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품종 간 교배를 계속 실시할 경우 서로 다른 형질을 가진 다양한 품종이 탄생한다.

품종 개량으로 품종을 강하고 새롭게

품종 개량은 작물의 유전적 특성을 개량해 실용 가치가 높은 품종을 육성, 증식, 보급하는 농업기술이다. 인류가 품종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순간부터 품종 개량 또한 같이 시작돼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품종 개량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품종은 현재 재배되고 있는 품종에 비해 종합적으로 우수성을 지녀야 한다. 또한 모든 개체들이 실용 면에서 지장이 없는 정도의 균등성을 갖춰야 하며 이러한 특성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영속성을 지녀야 한다.

전통적인 품종 개량 방법에는 선택법, 교잡법, 돌연변이법이 있다. 먼저 선택법은 작물에서 좋은 형질을 가진 같은 품종의 개체끼리 대대로 교배시켜 원하는 형질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다음으로 교잡법은 우량 형질을 가진 서로 다른 품종 사이에서 장점만을 골라내 좋은 형질을 가진 개체를 얻는 방법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샤인머스캣’이 교잡법을 이용해 개량된 새로운 품종의 포도다. 돌연변이법은 어버이에게서 볼 수 없었던 형질이 자식에게 갑자기 나타나는 돌연변이 형질이 인간에게 이로울 경우 그것을 살려 이용하는 방법이다. 자연 상태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자연 돌연변이고 인위적으로 X선이나 Y선, 자외선, 약품 등을 처리해 얻는 것을 인공 돌연변이라 한다. 인공 돌연변이를 이용한 돌연변이법의 대표적인 예로는 콜히친이라는 약품을 처리해 재배하는 씨 없는 수박을 들 수 있다.

최근에는 유전자를 잘라내고 재조합해 품종 개량을 진행하는 기술이 개발 중이다. 전통적인 품종 개량 방법은 좋은 형질을 가진 유전자끼리 조합될 때까지 확률에 기대어 계속해서 교배를 실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따라서 작물의 유전자를 직접 조작해 품종 개량에 드는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GMO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유전자 재조합 생물은 생물의 유전자에 외부 유전자를 주입해 의도한 특성을 부여한 생물이다. GMO는 지금도 널리 유통되고 있으며 특히 식품 분야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반면 유전자 가위 기술은 GMO와 달리 외부 유전자의 주입 없이 그 작물의 유전자만 건드려 특성을 부여하는 기술이다. 수정할 유전자를 정해 놓고 잘라내 그 부위만 변이를 일으킨다. 이처럼 유전자와 관련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서 품종 개량은 점점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돈이 되는 품종, 우리 스스로 보호해야

여러 국가에서는 고유의 품종을 보호하는 한편 품종 개량을 통해 새롭고 우수한 형질의 품종을 개발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품종은 생물자원으로서 해외 수출을 통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킬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2017년부터 우리나라에도 적용된 「나고야의정서」에 의하면 생물자원 이용국은 생물자원 제공국에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하며 그 생물자원과 관련된 이익이 발생하면 생물자원 이용국과 제공국이 공정하게 나누도록 합의해야 한다.

생물 주권에 대한 개념이 정확히 확립되기 전인 19세기 말 무렵에는 해외의 학자들이 우리나라의 품종을 수집하고 상품화한 경우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지리산과 한라산의 대표 식물인 구상나무다. 구상나무는 1904년 서양으로 반출돼 품종 개량을 거쳐 현재까지 크리스마스 트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한 1947년 미국으로 퍼져 개량된 후 ‘미스킴라일락’으로 불리며 정원수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정향나무도 해외로 반출된 우리나라의 품종이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품종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다른 나라의 품종을 수입해 이용할 경우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데 이를 ‘품종 로열티’라고 한다. 지난 5일 방영된 SBS 예능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에서는 팽이버섯에 대해 다뤘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관우 연구사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생산 중인 팽이버섯의 95% 이상은 흰색이고 그중 75%가 일본 품종으로 매년 10억원 이상의 로열티를 일본에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흰색 팽이버섯 품종을 대체하는 갈색 팽이버섯 품종을 개발해 판매량을 늘리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딸기 또한 일본에서 도입돼 2000년대 초반까지 90% 이상이 일본 품종이었고 딸기의 소비량이 점점 늘면서 매년 30억원 이상의 로열티를 일본에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설향’, ‘매향’ 등의 국산 딸기 품종이 개발된 후 딸기 품종 중 국산 보급률이 지난해 95.5%까지 올라가며 지불하는 로열티도 감소했다. 이렇듯 품종의 개발과 보호는 국가의 경제와 직결되므로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품종 보호 위해서는 농업에 대한 관심 필요

우리대학 환경원예학과 김선형 교수는 “품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농업에 대한 관심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품종 보호는 식량 문제와도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주요 식량작물 생산국이 수출 금지령을 내렸다. 세계 3위 쌀 생산국 베트남에서는 쌀 수출을 중단했고 러시아 또한 밀, 쌀, 보리 등 모든 곡물의 수출을 중단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3%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앞으로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면 그 원인은 식량 문제일 것”이라며 “이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비는 미흡한 수준”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콩마저 미국과 중국에 최대 생산국 자리를 뺏긴 실정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식물신품종 보호법』에 따라 품종을 보호하고 있다. 또한 농촌진흥청 등 다양한 국가 기관에서 종자의 자급을 위해 노력 중이다. 김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농업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농업은 1-4차 산업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산업”이므로 “농업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지원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품종을 개발하고 보호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단기적인 성과를 바라기보다는 농업과 품종 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유경 기자 candy886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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