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48개의 대학을 매년 신입생으로 다닌 사람이 있습니다. ‘엑스맨’ A씨의 이야기입니다. A씨는 6년에 걸쳐 총 48개 대학의 신입생이 됐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신입생 행세를 한 것입니다. 단순히 말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신입생 환영회나 교내 동아리 활동 등의 모임에도 직접 참여하는 등 진짜 신입생이 된 듯이 행동했습니다. 그는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일까요? 원인은 환경에 있었습니다. A씨의 아버지는 대학교수, 형제는 모두 명문대를 나왔습니다. 학벌을 중시하는 가정환경 속에서 A씨는 끊임없이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명문대를 나왔다고 거짓말을 했을 때 본인에게 돌아오는 반응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합니다. 거짓의 달콤함을 맛본 것입니다. A씨의 거짓말은 이후로도 계속됐고 48개 대학의 신입생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언론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A씨는 리플리 증후군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리플리 증후군이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며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는 증상을 이릅니다. 환상을 빚어내고 그것이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단어는 미국의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씨』의 주인공 리플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던 리플리는 어느 날 한 재벌의 부탁으로 그의 아들인 디키를 집으로 데려오는 일을 맡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디키와 함께 상류층의 생활을 즐기게 되죠. 그러나 그것은 리플리에겐 일순간의 꿈에 불과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리플리는 디키를 죽이고 그의 행세를 하며 살아가기로 합니다. 거짓과 은폐가 이뤄지고 재벌 2세 디키로서 살기 위해 리플리는 거짓말과 범죄를 끊임없이 저지르게 되죠. 그 과정에서 리플리는 거짓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됐습니다. 결국 디키의 시체가 발견돼 모든 거짓이 탄로 나는 그 순간에도 리플리는 자신이 실제 재벌 2세인 것처럼 믿고 행동을 합니다. 자신의 거짓말에 완전히 집어삼켜진 것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리플리 증후군’은 꽤 널리 알려진 단어입니다. 다만 실제 의학계에 정식으로 등재된 질병 명칭은 아닙니다. 환자가 실제로 허구를 진실로 믿는지는 환자 본인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리플리 증후군은 단순히 특정 상태를 묘사하는 용어입니다. 그 대신 리플리 증후군과 유사한 정신 질병은 존재합니다. 바로 ‘공상허언증’입니다. 공상 속에서 자신만의 환상을 만들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실제 그 자신이 그것을 실제로 믿는지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말이죠. 

무언가 열망하지만 그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누군가는 포기를 할 것이고 누군가는 악착같이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중에선 우회로를 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짓을 택하는 것이죠. 가질 수 없는 대상을 거짓으로 가졌다고 치는 겁니다. 그렇게 거짓을 통해 열망이 충족되면 그는 앞선 사례의 A씨처럼 거짓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공상허언증의 가장 일반적인 증세입니다.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성취 의욕을 해소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죠. 그러면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은 목표를 달성한 사람이 되니까요.

간판과 외면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남들에게 뒤처져선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할수록 공상허언증은 더욱더 흔해집니다. 입학한 적도 없는 대학에 재학 중이라 속인 A씨의 사례뿐만 아니라 학력과 지위, 재산을 속이는 사례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종종 주식을 하면서 자신의 투자 수익을 속이는 사람들이나 SNS에 심한 보정을 거친 사진을 본인의 얼굴로 내세우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어쩌면 이는 외적 가치를 과도하게 중시하는 사회가 빚어낸 안타까운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공상허언증은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거짓말을 통해 억눌린 감정을 해소해본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 남에게 하는 거짓말보다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거짓을 통해 마음을 달래는 일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본인의 감정 해소를 위해 거짓을 이용하다 보면 어느새 그 거짓에 사로잡힐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대훈 기자 daehoon0523@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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