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 사회부장 
김우진 사회부장 

어릴 적 『돈키호테』라는 소설의 존재만 알고 그 내용은 읽어 보지 않았을 때는 ‘돈키호테처럼 용감하게 살아가라’는 말만 듣고 돈키호테를 그저 용감한 장군쯤으로 생각했다. 당시엔 그런 말이 관용구처럼 쓰였다. 그만큼 돈키호테는 ‘용기’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업적도 많고 본받을 점도 많은 사람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당당한 장군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모의고사에 등장한 『돈키호테』 소설을 읽고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기자가 상상하던 돈키호테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하를 고생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가망 없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무모했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돌진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용감하긴 고사하고 무모하기만 하니 어떻게 용기의 상징이 돼 어린이들에게 멋진 인상을 심어준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렇게 청년이 됐고 궤도를 그저 충실히 돌기만 하는 삶을 살아가다 문득 돈키호테를 떠올렸다. 이탈이 두려워 정해진 길만 걷던 기자에게 돈키호테가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했다. 이뤄질 수 없는 것엔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거나 외면해버리는 것이 습관이 된 지금, 그의 무모함은 무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모한 것이 용감한 것이라는 것을 이탈이 두려워진 지금에서야 실감한다. 우리는 모두 내가 돌고 있는 궤도 속에서 같은 길을 뱅뱅 도는 삶을 안정이라 여기고 요즘 사회는 그것을 최우선으로 평가한다. 20대 초반의 청년들은 우리의 기대수명이라는 120살을 대비하기 위해 정년을 보장해주는 직업을 가지려 청춘을 쏟는다. 내가 도는 이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 혹은 내가 속한 이 사회라는 궤도에서 튀지 않기 위해 열정을 쏟는다. 

그러나 정작 세상을 뒤흔드는 사람들은 궤도를 이탈한 사람들이었다. 무모한 시도로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던 그들은 어느새 혁신이라는 것을 해내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무모한 도전과 시도를 하는 용감한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위인전처럼 사람들에게 설파된다. 그들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이야기일 뿐 우린 당장의 삶에 충실하기 바쁘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모한 시도를 했다가 실패를 했을 때의 그 아픔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무모한 꿈 하나 정도는 담아두고 산다. 그 꿈을 감히 펼치기엔 청년들의 앞엔 수많은 과제가 놓여있다. 이탈을 종용하기엔 사회는 에어백이 돼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모함이 답이라고 외치지 못한다. 

그래도 김중식 시인의 「이탈한 자가 문득」을 인용해, 젊음을 빌려 감히 무모함을 한 번 권해본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그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우진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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