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복궁의 중심이 되는 정전인 근정전의 모습. 이곳에서는 공식적인 대례나 사신을 맞이하는 등 중요 행사가 치러졌다.
▲ 경복궁의 중심이 되는 정전인 근정전의 모습. 이곳에서는 공식적인 대례나 사신을 맞이하는 등 중요 행사가 치러졌다.

세종대로 양쪽에 줄지어 있는 높은 빌딩들. 그 사이를 걷다 보면 이질적인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인왕산과 북악산을 배경 삼아 자리 잡은 광화문이다. 이 외에도 길을 걷다 보면 서울 도심 곳곳에서 조선의 궁궐을 만나볼 수 있다. 과거에 멈춰 있는 것만 같았던 고궁에 활기찬 움직임이 생겨났다. 지난 1일부터 9일간 시민들이 직접 고궁을 보고 즐길 수 있는 문화유산 축제인 ‘제7회 궁중문화축전’이 열린 것이다. 이번 행사는 5대 궁과 종묘 일대에서 진행됐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대부분 프로그램이 사전예약을 통해 이뤄졌다. 사전예약에 실패한 기자는 현장체험, 온라인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에 참여해 따뜻한 봄날의 궁궐을 만끽하고 왔다.

조선의 중심, 경복궁에서 마주한 조선

서울살이 3년 차에 접어든 기자에게 광화문은 다른 목적지를 향하는 길에 멀리서 보기만 하던 곳이었다. 궁궐을 직접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맞아 ‘언젠가 가 봐야지’라고 생각했던 경복궁을 드디어 들어가게 됐다. 수문장이 지키고 있는 광화문을 건너 들어가자 조선왕조 최초의 궁궐이자 조선의 건국이념이 담긴 법궁인 경복궁을 만날 수 있었다. ‘경복궁’이라는 이름은 태조의 명을 받은 정도전이 ‘큰 복을 누리며 번성하라’는 뜻을 담아 지어 올린 것이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던 육조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현재의 세종대로로 과거와 현재가 마주하는 광화문 일대는 조선왕조 500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경복궁 내부로 들어가자 떠오른 첫인상은 웅장하다는 것이었다. 왕과 신하가 다니는 길인 삼도 좌우에 펼쳐진 품계석을 따라 걸으니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이 나왔다. 경복궁의 중심건물이자 국가의 중요의식이 이뤄졌던 근정전을 보자 조선 왕실의 권위와 위엄이 느껴졌다.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경복궁 시간여행 – 한양도성 타임머신’이라는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들어갔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경복궁과 근정전에 대한 VR과 타임스코프 체험을 마치고 들어가니 원래라면 그냥 보고 지나쳤을 법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어좌 뒤편에 있는 ‘일월오봉도’는 드라마에서 많이 봐서 알고 있었지만 천장에도 왕권을 극대화하기 위해 ‘칠조룡’ 조각을 설치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VR 체험을 하며 봤던 근정전 천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는데 정면에서는 보지 못했고 좌측 문을 통해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경복궁 내부를 직접 살펴보자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맑고 따뜻한 날씨에 경복궁을 거닐다 보니 몇백 년전 같은 공간에 있었을 선대들의 모습을 거듭 떠올리게 됐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도 많아 앞을 바라보면 조선시대 궁궐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데 뒤를 바라보면 높은 빌딩들이 보여 그 풍경이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 생과방에서 즐긴 궁중병과와 궁중약차
▲ 생과방에서 즐긴 궁중병과와 궁중약차

오감으로 즐기는 경복궁

경복궁에서 제일 기대한 프로그램은 ‘경복궁 생과방’이었다. 궁중의 육처소 중 하나인 생과방은 국왕과 왕비의 후식과 별식을 준비하던 곳이었다. 이번 행사에서는 『조선왕조실록』 내용을 토대로 만든 궁중병과와 약차를 생과방에서 즐길 수 있었다. 기자는 평일과 주말 두 차례 방문했는데 생과방 앞에서 대기명단을 작성한 후 차례를 기다려 입장했다. 

궁중병과인 ‘드시다’ 6종과 궁중약차인 ‘마시다’ 6종이 있으나 평일 오후에는 궁중병과가 모두 품절돼 ‘오미자다’만 시켜 먹었다. 신맛, 쓴맛, 단맛, 아린맛, 짠맛 이렇게 다섯 가지 맛이 난다는 오미자차는 중종 때 왕의 몸에서 열이 나고 갈증이 나자 의녀가 오미자차를 대령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날 실패한 궁중병과를 맛보기 위해 생과방이 문을 여는 10시에 맞춰 주말에 다시 방문했다. 그런데 이미 대기인원이 많아 차례를 기다리며 경복궁을 한 바퀴 돈 후에야 생과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루 40개만 한정 판매하는 ‘서여향병’은 먹지 못했고 나머지 궁중병과 5종은 맛볼 수 있었다. 맛있는 먹거리도 있겠다, 열려있는 넓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과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눈으로 보기만 하던 궁궐 내부에 앉아 한복을 입은 나인과 차비의 안내를 받아 차를 마시자 조선시대 왕실의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코로나19로 한 번에 21명 정원으로 운영되고 좌석마다 거리를 둔 채 가림막이 쳐 있어 쾌적했다. 궁중문화축전은 지난 9일에 막을 내렸으나 생과방은 오는 6월까지 문을 연다고 하니 한 번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궁, 마음을 보듬다’라는 슬로건 하에 힐링과 휴식을 주제로 한 행사답게 궁궐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심쿵쉼궁’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경회루 서편 소나무숲에 놓인 푹신한 빈백에서 경회루 풍경을 바라보며 설치된 화면을 통해 궁중문화축전의 온라인 콘텐츠와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나무숲의 바람을 느끼며 경회루를 바라보고 앉아있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경복궁을 나서던 길에는 국립고궁박물관에 들렀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경복궁을 재건했으나 일제에 의해 다시 훼손돼 오늘 본 경복궁의 대부분이 다시 복원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 덕수궁 석조전을 배경으로 열린 ‘덕수궁 풍류 - 음악소풍’. 시원한 봄바람과 함께 한 연주는 깊은 여운을 남겼다.
▲ 덕수궁 석조전을 배경으로 열린 ‘덕수궁 풍류 - 음악소풍’. 시원한 봄바람과 함께 한 연주는 깊은 여운을 남겼다.

덕수궁에서 즐기는 봄날의 풍류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1897년 고종이 이곳으로 환궁하면서 궁궐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덕수궁 대화재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 이후 규모가 작아졌고 이 시기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명칭도 바뀌었다. 경복궁에서 나와 세종대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서울광장 맞은편에 위치한 덕수궁을 볼 수 있다.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은 많이 걸어 가봤지만 정작 덕수궁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덕수궁 역시 수문장이 대한문을 지키고 있었다. 대한문을 지나 덕수궁 내부로 발을 내딛자 웅장하고 큼직한 건축물이 주를 이뤄 압도적인 느낌을 줬던 경복궁과는 달리 나무들이 심어진 길이 나와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덕수궁에서는 동서양 건축물을 함께 볼 수 있어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덕수궁에 머물렀던 고종은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애호가였다.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시기 커피 맛에 반한 고종은 덕수궁에 돈덕전과 정관현을 짓고 커피를 즐겼다. 이 당시 커피는 영어 발음에서 따와 ‘가배차’라고도 불렸다. 이번 행사에서도 ‘고종의 가배’라는 이름으로 고종이 즐겼던 커피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열렸다.

덕수궁 석조전 분수대 앞에서는 ‘덕수궁 풍류 – 음악소풍’이 열렸다. 이날 본 덕수궁 풍류에서는 ‘박수빈의 subito’라는 팀이 공연을 맡았는데 동서양의 악기들의 내는 선율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조선시대 궁중음악에서 쓰인 아악기 중 하나인 생황과 더블베이스, 기타 등 다양한 서양 악기의 소리가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까지 깊은 여운을 남겼다. 특히 저녁 시간이 지나면서 어두워진 석조전 앞에서 분수 소리와 함께 공연을 보고 있으니 온종일 걸어 다니며 쌓인 피로가 다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과거에 멈춰있는 것만 같았던 고궁을 직접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은 환상적이었다. 따뜻한 봄날 시민들에게 잊지 못할 시간을 만들어 준 궁중문화축전은 가을에도 다시 열린다. 만약 이번 행사 소식을 늦게 접해 참석하지 못한 이들은 또 다른 매력으로 우리를 찾아올 가을의 궁궐을 기대해보는 것도 좋겠다.


글·사진_ 신유정 기자 tlsdbwjd0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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