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우사인 볼트 선수는 100m 달리기에서 9초 58을 기록하며 세계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 사실은 전 세계에 퍼졌죠. 그의 기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 프랑스, 자메이카, 캐나다에서도 여전히 ‘100m 9초 58’입니다. 국가나 대륙과 무관하게 모두가 같은 단위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세계 곳곳의 그 많은 국가들이 동일한 단위를 쓰게 된 걸까요?

기록상 단위가 처음 쓰인 것은 기원전 이집트입니다. 이집트는 비옥한 토지로부터 얻은 풍부한 식량과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현재까지 불가사의로 여겨질 만큼 정교한 건축물이죠. 정교한 공사를 위해서는 단위계가 뒷받침돼야만 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매우 세밀한 단위를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바로 최초의 길이 단위인 ‘큐빗(cubit)’입니다. 큐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 중지 끝까지의 길이를 기준으로 설정된 단위입니다. 현재 기준으로 약 48.5cm에 해당하는 길이죠. 큐빗의 도움으로 이집트는 피라미드라는 찬란한 유산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단위는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길이를 재는 ‘자’, 무게를 재는 ‘저울’, 그리고 부피를 재는 ‘되’를 함께 묶어 ‘도량형’이라 부르는데요. 통일된 도량형은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자리했습니다. 물건을 만들고 교환하며 거래하기 위해 필수적인 단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도량형의 통합을 위한 노력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났습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중국의 고대국가인 진나라입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가장 먼저 도량형을 통합시켰습니다. 표준 단위계를 만들어 표준 자, 표준 되, 표준 저울을 대량으로 생산해 각지로 보낸 것입니다. 거대한 중국 대륙을 통일한 이후 지역마다 일정치 않은 단위로 인해 혼란이 심각했기 때문이죠. 이처럼 사회가 융화되고 발전하기 위해 통일된 단위는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근대로 넘어오며 세계적인 교류가 늘어나면서 국제적인 단위체계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국제단위계(이하 SI)의 탄생까지 이어졌죠. 현재 우리가 흔히 쓰는 단위 역시 SI입니다. 이는 '미터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SI 단위 중 최초로 세계화된 단위가 미터였기 때문입니다.

미터의 시초는 18세기 말 프랑스였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시민 혁명이 한창이었고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을 위한 단위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800개에 이르는 도량 단위가 쓰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통합되지 않은 단위가 사회를 분열시키는데 이바지해왔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혁명가들은 새로운 단위의 기준을 자연에서 찾았습니다. 자연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이유였죠. 최초의 1미터는 적도부터 극점까지의 거리를 천만으로 나눈 길이였습니다. 덩케르크부터 바르셀로나까지 이어지는 자오선의 길이를 측정한 후 삼각측량법을 통해 길이를 산출했습니다. 미터는 이후 1875년 5월 20일 17개국 간에 ‘미터협약’이 체결되며 국제단위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미터가 현재 우리가 쓰는 미터와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미터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를 거쳤습니다. 울퉁불퉁한 지표를 기준으로 길이를 산출한 만큼 ‘적도-극점’ 기준은 정확도에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초기 미터는 ‘원기’를 통해 길이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원기란 표준이 되는 물건을 일컫습니다. 진시황이 표준 도량형을 각지에 보낸 것처럼 말이죠. 변형이 적은 합금으로 임의의 자를 만들고 그것을 복제해 17개국에 배포한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물질은 변하기 마련이고 각국은 자신들이 가진 원기가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매번 비교를 거쳐야 했습니다. 번거롭고 부정확했죠. 

이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은 1960년에 제시됐습니다. ‘자연표준’이 등장한 것입니다. 기준이 되는 물건을 만드는 대신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불변의 길이를 기준 삼기로 한 것입니다. 첫 번째 자연표준으로는 원자의 파장을 이용했습니다. 크립톤 원자의 에너지가 특정 수치에서 일정 정도 떨어질 때 방출되는 파장에 정해진 숫자를 곱한 수치를 1미터로 정했습니다. 굳이 물건을 만들어 서로 비교하지 않아도 언제나 1미터를 알 수 있게 된 것이죠. 이후 1983년엔 광속을 기준으로 삼고 2019년엔 플랑크 상수를 기준으로 개정했습니다. 그렇게 미터법은 점점 더 정밀해지며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미터의 세계화를 위시해 1960년 10월 제11차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는 미터뿐만 아니라 킬로그램(무게), 초(시간), 켈빈(온도), 암페어(전류), 칸델라(광도), 몰(물질량)까지 국제단위에 편입이 되면서 SI가 결성됐습니다. 단위가 국제화됨에 따라 각국의 교류는 보다 원만해졌습니다. 상업적인 측면과 학술적인 측면에서 단위계의 통합은 효율적인 교류를 가능케 했습니다. 단위계를 공유하는 국가 간엔 복잡한 단위 환산을 거칠 필요 없이 자원과 자료를 주고받을 수 있었죠. 우사인 볼트의 세계 신기록이 전 세계에서 똑같이 ‘100m 9초 58’이듯이 말입니다.


김대훈 기자 daehoon0523@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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