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인터뷰]

서울시가 지난 3월 ‘장애인 탈시설 지원에 관한 조례(가칭)’ 제정 계획을 밝히며 장애인 탈시설에 대한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서울시립대신문은 2005년부터 장애인 탈시설을 위해 운동해온 NGO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여준민 상임활동가를 만나 시설 내 장애인과 탈시설, 그간의 운동에 관한 구체적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의 명함엔 점자가 표기돼 있었다.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들. 여준민 상임활동가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다.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들. 여준민 상임활동가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어떻게 설립됐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탈시설 운동을 하는 곳이다. 단체가 설립된 2005년 당시엔 지적, 발달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다. 폐쇄적인 시설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운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 시설이 상식처럼 굳어진 이유에 대해 고민하며 운동을 전개했다. 

탈시설 운동을 한다고 했다. 공동의 목표가 그것인가
우리 공동의 목표는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탈시설 운동에 대해 개념 정의를 어려워했다. 또 당시엔 시설이 아니면 어디서 사느냐며 탈시설 운동을 무책임하고 대안 없는 주장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탈시설이란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자유롭게 지역사회에서 살자’라고 말을 풀어서 쓰기 시작했다. 탈시설의 궁극의 목표는 촘촘한 관계망 확대다. 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학연, 지연이 없다. 촘촘한 인간적 관계를 맺으면서 든든함을 갖게 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가장 처음 한 활동은 어떤 활동인가
2005년에 처음 했던 활동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행한 수용시설 내 인권실태조사 연구프로젝트였다. 국가연구를 수행한다는 자격으로 시설 안에 들어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당시 결론은 ‘좋은 시설은 없다’는 것이었다. 한 장애인의 증언에 따르면 이름이 불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야”, “너” 이렇게 불렸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과 내내 벽만 바라보다가 잔다는 증언도 있었다. 
시설 내부를 방문한 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의 시설 복지 정책은 관리자, 운영자, 가족, 노동자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정작 당사자인 장애인의 목소리는 거세당한 채로 진행됐다. 그 안에 들어가서 직접 만나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시설이 존재한다는 것은 침묵의 카르텔이 한국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탈시설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인가
정책이다. 그동안 시설은 중요한 사회복지 정책이었다. 사람들이 그것에 길들어 있으니 우리의 이야기를 급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방향 전환을 말한다. 한순간에 시설 폐쇄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5~10년의 기간을 두고 단계적 계획을 세워서 가야 한다. 2006년에 시설의 부당한 대우로 인해 괴롭다며 자신을 탈시설 해달라고 활동가에게 연락한 전신마비 장애인이 있었다. 그를 탈시설 시키고 우리 단체가 그의 활동을 보조하며 처음으로 탈시설 장애인을 직접 지원했다. 그때 탈시설 장애인이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그렇게 정책을 구체화했다. 지금은 많은 것이 변했다. 탈시설 선언문을 서울시에서 인정해 5개년 계획 1차를 실행했다. 지금은 2차를 진행 중이다. 

시설에서 나오려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집, 돈, 활동지원제도다. 그중 주거항목인 지원주택제도는 장애인이 주택에서 살며 지역사회의 주거코치, 자립생활센터가 그들의 안위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계획됐다. 그런데 이번에 이 제도는 ‘검토’ 대상에 그쳤다. 시급한 정책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원동력은 무엇인가
당사자들의 목소리다. 2009년 시설의 비리와 인권침해를 고발한 8인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을 한 ‘마로니에 8인의 투쟁’이 있다. 시위를 계기로 실제 사회를 경험한 장애인들이 시설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해 노숙을 하며 투쟁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한강대교를 기어가는 시위를 8시간 동안 한 적도 있다. ‘활동지원제도’를 위해서였다. 이런 투쟁은 단 한 번도 실패의 역사가 없다. 무언가 성과를 내기 전까지는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 활동은 어떤 것이 있나
이사장의 친인척으로 운영되던 ‘석암베데스다 요양원(현 향유의집)’의 비리가 밝혀지고 서울시가 감사를 하며 그 재단의 이사회에 우리 단체가 들어갔다. 향유의집을 포함한 3개의 시설이 남아있었는데 지난 4월 30일자로 향유의집은 폐지됐다. 장애인들이 탈시설한 것이다. 그동안의 탈시설은 장애인 한 명의 요청으로 산발적, 개별적으로 이뤄졌었다. 이번 탈시설은 조직적, 계획적으로 진행돼 그 의의가 있다.

탈시설 운동을 계속 전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운동은 마치 늪 같다. 우리는 사람들이 변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시설 내에선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사회성이 결여돼 있던 한 사람이 시설에서 나와 1년이 지나고 만나면 다른 사람이 돼 있다. 못했던 공부를 하겠다며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돈을 조금씩 모으고 연애를 하고 임대주택에 들어가 자립을 한다. 이런 과정을 보며 사람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했다. 이 사람들이 더 안전하게 살려면 지역사회엔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탈시설 운동에 관해 청년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시설에 자원봉사는 가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가더라도 거주인에게 집중해 그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 놓여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귀담아 듣길 바란다. 그래서 그것을 외부로 전해줬으면 한다. 자원봉사는 시설 내 직원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 해주기 때문에 시설체계를 공고하게 하는 것 중 하나다. 추천하고 싶은 것도 있다. 활동지원사교육을 받고 실습을 하면 활동지원활동을 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로 좋다. 시간도 기관과 조정할 수 있다. 청년들이 직접 경험해보면 시설 내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사진_ 김우진 기자 woojin2516@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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