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살아있어라. 두 눈 뜨고 지켜봐라. 아빠가 대신 싸워줄 테니까” 지난 13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고 이선호(23) 씨 추모문화제에서 고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가 외친 말이다. 고 이선호 씨는 지난달 22일 평택항 수출입화물보관 창고 앞에 있던 개방형 컨테이너에서 원청업체 동방에 소속된 지게차 기사의 지시로 나뭇조각을 줍던 도중 갑자기 접힌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이날 행사는 추모 공연과 추모 발언, 추모 편지, 유가족 발언으로 구성됐다. 컨테이너 모형에 참석한 인원 모두가 꽃을 꽂는 추모 행동으로 행사가 마무리됐다. 추모 행동이 모두 끝나고 행사가 정리되는 시점에서 이 씨는 컨테이너 모형 밑에 깔려있던 꽃 한 송이를 주워 모형 위에 꽂으며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 고 이선호 씨의 사진을 어루만지는 이재훈 씨
▲ 고 이선호 씨의 사진을 어루만지는 이재훈 씨

고 이선호 씨 말고도 그동안 수많은 노동자가 산업재해(이하 산재)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지난 2016년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던 당시 19살이던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 아무개 군이 열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17년에는 당시 18살이던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 고 이민호 군이 음료 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제품 적재기 프레스에 눌려 10일 뒤에 결국 사망했다. 지난 2018년에는 당시 24살이던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밤샘 일을 하다 기계에 끼여 숨졌다. 지난해 4월에는 이천시에 있는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화재 참사가 발생해 38명의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모두 취약계층 노동자인 비정규직, 현장 실습생, 하청 노동자였다.

산재 통계의 아이러니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산재로 인한 총재해자 수는 약 11만 명이며 그중 사망자 수는 2020명이다. 문제는 산재율은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서 평균 이하인데 산재 사망률은 상위권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런 모순은 산재 통계에 빠진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산재는 승인통계이다.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통계에 들어가지 않는다. 전체 근로자의 97%가 산재보험에 가입했지만 그 수치에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빠져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약 13%만 산재보험에 가입했다. 공무원 연금과 같은 타 보험에 의해 보호를 받는 사람도 통계에 들어가지 않는다. 

산재보험에 가입했고 산재보험에 의해 보호를 받는 노동자라고 해서 모두 산재처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는 산재사고를 겪었을 때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진다. 첫째는 산재보험을 신청하는 것이고 둘째는 공상처리를 하는 것이다. 산재보험은 4대 보험 중 하나로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의 치료와 생계를 국가가 책임지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아파서 일하지 못하는 동안 임금을 보전받을 수 있다. 장애가 남거나 병이 재발하는 등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할 때 재신청해서 산재보험으로 계속 보장받을 수 있다. 반면 공상처리는 사업주가 치료비나 위로금을 주면서 산재처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공상처리는 회사가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보상을 받기 어렵다. 당연히 산재 통계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산재가 은폐돼 산재율은 낮은데 산재 사망률은 높은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 라이더유니온의 배달 기사 인권 운동
▲ 라이더유니온의 배달 기사 인권 운동

‘특별한 죽음’만이 알려진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운동을 이끈 노동건강연대 정우준 활동가는 “취약계층 노동자 산재사고의 문제점은 산재처리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정 활동가는 “그동안 산재는 두 가지로 취급 받았다”며 “하나는 경제 발전에 딸려오는 어쩔 수 없는 부산물로 바라보는 운명론이고 또 하나는 노동자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노동자 과실론”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노동자가 안전장치를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그 배경들이 무시당했다”고 이야기했다. 산재처리와 공상처리에 관해서도 “고용이 불안정하고 오랜 기간 일할 수 없는 취약계층 노동자들은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한다”며 “산재처리를 한다고 했을 때 회사는 노동자에게 유무형의 압박을 가한다. 따라서 공상처리를 무조건 노동자의 선택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산재처리가 되지 않았을 때 문제점은 사고가 일어난 작업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 활동가는 “29건의 큰 재해와 300건의 작은 사고가 있은 후 사망사고가 한 건 발생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며 “만약 이 300건의 작은 사고가 산재처리가 돼서 개선됐다면 평택항에서의 한 건의 사망사고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약계층 노동자의 사고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노동자 개인이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 활동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질 때는 특별하게 죽었을 때”라고 덧붙였다.

산재를 기업의 책임으로… 중대재해처벌법 필요해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1월 26일에 제정됐으며 공포 후 1년이 지나야 시행된다. 다만 50인 미만 사업 또는 사업장에는 3년 후부터 시행된다. 5인 미만 사업 또는 사업장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우리대학 법학전문대학원 노상헌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사업 또는 사업장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해당 사업주, 경영책임자,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확보의무’를 부과해 안전인력과 예산을 갖추는 등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안전의무를 준수하도록 관리 감독하는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에 기대되는 효과”라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과 정부에게 노동자 산재사고의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기존 ‘김용균법’이라고 불린 『산업안전보건법』은 기업에게 안전 의무를 부과하는 행정법이다. 그러나 이 의무를 실제로 수행하는 것은 하급 현장 관리자기 때문에 원청과 대표이사를 처벌하기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 복잡한 연결고리를 추론의 원칙으로 축소시켜 하청 직원이 아닌 원청 기업을 처벌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부여한 의무를 지키기 않을 때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하는 상호 보완적 관계인 것이다.

구조와 인식의 변화가 중요

기업은 이윤을 탄력적으로 창출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고용한다. 또한 원청은 안전사고 예방과 관리 의무를 하청업체로 전가한다. 하층 노동자가 더 위험한 일을 하는 ‘위험의 외주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정우준 활동가는 “아무리 산재사고에 관련된 법이 만들어져도 불평등한 고용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산재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불안정한 고용 형태에서는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는 현장이 위험하다고 얘기하지 못해서 계속해서 사고가 일어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산재에 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며 일터의 민주주의 실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정 활동가는 “산재 사망사고는 주로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발생한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생에게는 산재가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며 “하지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화상을 입는 것도 산재에 포함된다. 문제는 산재가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아주 위계적이고 불평등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이어 “산재는 단순히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불평등 문제”라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산재사고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산재가 특별한 영역이 아니라 불평등의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노동은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다. 노동의 의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의 안전은 국가에서 보장해야 하는 권리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전히 가장 취약한 계층의 노동자가 가장 위험한 환경에서 일한다. 정 활동가는 “우리가 좀 더 취약계층의 산재사고에 관심을 기울이고 목소리를 낸다면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글사진_ 이주현 수습기자 xuhyxxn@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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