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사람] 픽사 장호석 디렉터(산디 96)

장호석 동문은 우리대학 산업디자인과 96학번으로 현재 ‘픽사’에서 ‘세트 익스텐션 테크니컬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장 디렉터는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코코] 그리고 [소울] 등에 참여했으며 [토이 스토리 4]와 [소울] 제작팀으로서 두 번이나 VES 어워즈의 애니메이션 장편영화 부분 창작배경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시대, 사람’ 코너에서는 장 디렉터를 만나 대학 생활부터 픽사에 입사한 지금까지의 과정과 애니메이션 제작 중 있었던 재미난 일화들에 관해 이야기 나눠봤다. -편집자주-

 

픽사 장호석 디렉터(산디 96)
픽사 장호석 디렉터(산디 96)

대학 생활은 어땠으며 어떻게 애니메이터를 꿈꾸게 됐나

주로 컴퓨터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3D 컴퓨터 그래픽에 입문한 계기도 컴퓨터실에서 선배들 어깨너머로 처음 접한 것이었다. 1학년 학기 말 시각디자인 전공 과제를 선배의 도움으로 3D 그래픽으로 완성한 후부터 대부분의 과제를 가능한 3D 그래픽 혹은 영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공모전이나 영화제에 단편 애니메이션을 출품하기도 했다. 정지 화면이 아닌 움직이는 무언가를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재밌었다. 3학년 때는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생겨서 기계정보공학과의 자바 프로그래밍, 자료구조와 알고리즘 수업을 수강하면서 기술과 디자인, 아트를 접목하는 분야에 더 매력을 느꼈다. 
졸업 즈음에 선배들과 ‘Alfred Imageworks’라는 영상 디자인 회사를 시작했고 1년 후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퇴사 후 유학길에 올랐다. 사바나예술대학교(이하 SCAD)에서 비주얼 이펙트 전공으로 석사를 하며 컴퓨터 그래픽의 기술적인 분야를 더 깊이 있게 공부했고 졸업과 동시에 FX 아티스트로 게임 회사 블리자드의 동영상 제작팀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FX 아티스트란 불, 물, 폭파장면과 같은 기술적 난이도가 높으면서 예술성을 필요로 하는 장면을 만드는 역할이기에 우리대학에서 공부했던 디자인적인 문제 해결 능력과 SCAD에서 배운 기술의 적용 능력이 입사하는데 강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픽사에 입사 계기와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블리자드 시네마틱 팀에서 약 5년간 일을 했는데 원래 게임보다는 영화와 애니메이션, 특히 픽사 작품을 많이 좋아했다. 또 매년 열리는 학회 ‘SIGGRAPH’에서 봤던 픽사의 창의적인 발표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지원하게 됐다. 블리자드에서 5년간 일하면서 ‘스타크래프트 2’,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3’에 참여했기에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온종일 진행되는 인터뷰와 팀 전체에게 해야 하는 발표가 오히려 더 부담됐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영어 면접 팁을 한 가지 주자면 흔히 나올 수 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가능한한 충분히 준비해 인터뷰 시간을 다 쓸 정도로 혼자 떠들면 면접관들도 편하고 시간이 남아서 나올 수 있는 어려운 질문들을 피할 수 있다.
 

▲ 영화 [소울] 속 ‘유세미나’.
▲ 영화 [소울] 속 ‘유세미나’.

픽사에서 어떤 작품에 참여했나

지난 2013년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7개의 장편과 3개의 단편에 참여했다. ‘FX 테크니컬 디렉터’로 참여한 작품 [인사이드 아웃], [굿 다이노], [도리를 찾아서], 단편 [파이퍼] 등에서는 물, 거품 시뮬레이션, 붕괴 효과, 연기, 마법 효과 등을 담당했다. [카 3]의 ‘군중 시뮬레이션’ 팀을 거쳐 지금 있는 ‘세트 익스텐션’ 팀에서는 [코코] 속 죽은 자들의 세상을 시작으로 [토이 스토리 4]와 최근 [소울] 등에서는 주로 환경 제작을 중심으로 하고있다.

‘세트 익스텐션 테크니컬 디렉터’는 어떤 직업인가

전통적으로 ‘세트 익스텐션’ 팀은 예전에 컴퓨터가 영화 제작에 쓰이기 전에 매트 페인팅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멀리 있는 풍경이나 도시를 실제로 만들기 힘든 경우에 그림으로 그려서 실제로 세트 뒤에 세우거나 컴퓨터로 합성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성격이 많이 바뀌어서 매트 페인팅보다는 주로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일반적인 방식으로 제작하기 힘든 환경이나 소품들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토이 스토리 4]에서는 400장면이 넘는 골동품 상점의 먼지와 거미줄을 만드는 역할을 했었다. 상점 내에 있는 물건들이 수천 개가 넘었고 그 물건들 위에 쌓인 먼지들은 역시 수천수만 가닥의 아주 가느다란 섬유들로 만들어져야 했기에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경우 ‘세트 익스텐션 테크니컬 디렉터’가 투입돼 여러 가지 기술을 이용해 먼지가 쌓여야 할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분석하는 로직을 만들었다. 거미의 행동 패턴을 디자인해서 유기적인 형태의 거미줄을 상점 구석구석에 자동으로 만드는 시스템을 제작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 영화인 [소울]에서 주인공이 맨홀로 떨어져서 도착하는 공간인 Great Beyond(저승 가는 길 끝에 있는 밝은 빛)는 총 2천만 개의 움직이는 작은 입자들로 구성돼 있는데 이 작업에도 참여했다.

영화 [소울] 속 ‘Hosuk’s 호호만두’라는 한국어 간판은 어떻게 등장한 것인가

[소울]에서 뉴욕 장면보다는 소울 월드 제작에만 참여했다. 호호만두 간판이 유일하게 참여한 뉴욕 장면이다. 프로덕션 막바지 어느 날 회의에서 팀 슈퍼바이저가 다가오더니 뉴욕에 한국 식당을 낼 생각이 없냐고 했다. 영화 내의 간판을 담당하는 그래픽 팀에서 한국 식당 이름을 지어놨는데 약간 어색하게 지었나 보다. 그래서 내가 식당 이름 하나 지어 보지 않겠느냐 하길래 재밌겠다 싶어서 이름의 앞글자와 소울 푸드인 만두를 합쳐 뜨거운 만두를 호~호~ 불면서 먹는 것을 연상시키는 호호만두라는 식당 이름과 메뉴(김치만두, 고기만두, 배달 가능)를 그래픽 팀에 넘겨줬다. 나중에 영화에 나온 것을 보니 감사하게도 이름까지 넣어 줬다. 덕분에 한동안 ZOOM 배경화면으로 잘 썼다.
 

▲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한 장면. 하키섬과 다양한 섬들이 보인다.
▲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한 장면. 하키섬과 다양한 섬들이 보인다.

영화 속 이스터에그를 소개해달라

픽사 작품에 이스터에그가 많은 것은 많이들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토이 스토리 4]의 골동품 상점은 그야말로 이스터에그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골동품 상점은 어디선가 쓰였던 물건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영화 속 골동품들도 많은 양이 다른 픽사 영화에 등장했던 소품들이다. 그중에는 아주 오래전 픽사에서 만들었던 단편 애니메이션에 쓰였던 소품들도 등장하고 심지어 픽사 설립자 Ed Catmull이 1972년에 만든 자신의 손 모델도 찾을 수 있다.

[소울] 제작팀으로 VES 어워즈에서 수상했는데 수상 소감이 궁금하다

VES 어워즈란 Visual Effects Society라는 단체에서 매년 그해의 영화와 애니메이션 작품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회사와 개인들에게 주는 상이다. 이번에 [소울]의 ‘유세미나’라는 공간을 만드는 데 참여해 Outstanding Created Environment in an Animated Feature 부문에서 수상했다. 그중에서 성격 파빌리온이라는 건물들을 만들었는데 컴퓨터 그래픽의 일반적인 방식인 폴리곤 모델링이 아닌 구름처럼 반투명한 건물을 만들어야 해서 기술적 난이도가 높았다. 
또한 소울 월드이다 보니 사람의 성격을 문화 코드에 의존하지 않고 형태와 움직임으로만 표현해야 하는 제한도 있었다. 과정이 어려웠던 만큼 매 장면이 완성될 때마다 영화도 점점 완성돼 가는 성취감도 컸다. 결과적으로 상까지 받게 돼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제일 좋아하는 감독인 Pete Doctor의 작품에서 맡은 역할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 영화 [토이스토리 4]의 한 장면 이곳저곳 거미줄이 걸려있다.
▲ 영화 [토이스토리 4]의 한 장면 이곳저곳 거미줄이 걸려있다.

가장 좋아하는 픽사 캐릭터나 배경, 작품은

우선 [소울]에 이름이 나오는 식당이 나오기 때문에 [소울]의 뉴욕 장면이 제일 좋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인사이드 아웃]과 빙봉 캐릭터를 좋아한다. [인사이드 아웃]은 처음으로 참여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었기에 작업하면서 수도 없이 봤지만 개봉날 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관람을 했다. 빙봉이 사라지는 부분이 슬퍼서 많은 관객이 조용히 훌쩍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한 어린아이가 상황 파악이 좀 늦게 됐는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극장 전체가 울음바다에서 웃음바다로 바뀐 기억도 있다. 내가 참여한 작품에 사람들이 울고 웃으면서 좋아하는 것을 처음 경험해서인지 [인사이드 아웃]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다. 참고로 [인사이드 아웃]에서 하키 섬, 가족 섬 생성과 붕괴 효과를 담당했다.

픽사 입사 혜택이 궁금하다.

캐릭터 굿즈와 포스터들을 매 작품이 개봉될 때마다 받아서 집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새로 개봉한 영화들을 공짜로 회사 극장에서 볼 기회가 정말 많다. 운이 좋으면 감독이나 배우들이 직접 방문해 시사회를 하는 경우도 있어 궁금한 것을 직접 질문할 수도 있다. 그리고 픽사가 디즈니 계열사이다 보니 디즈니랜드가 공짜다. 또한 예전에 픽사가 스티브 잡스 소유였기 때문인지 애플 제품도 꽤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학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소울]을 아직 보지 못한 학우들이 있을 텐데 기회가 된다면 꼭 보기를 추천한다. 만약 대학생이었던 20대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일단 영화 <소울>을 먼저 보여주고 컴퓨터실에만 있지 말고 밖에 좀 나가라고 할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그때의 내가 말을 들을지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디렉터가 되고 싶은가

픽사에 취직해 작품에 참여해 보는 것이 꿈같은 일이어서 그 이후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픽사에서 일한 지 약 8년이 돼 가는데 하는 일들이 너무 재밌고 보람도 있어서 당분간은 지금 하는 일을 좀 더 잘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는 성격인데 최근에 계획했던 일들보다 그렇지 않았던 일들이 지나고 보면 더 재밌고 의미도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현재 참여하는 작품이 완성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고 다음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기대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테크니컬 디렉터로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한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방식과 시각적 스토리텔러로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계속할 것 같다.


글_ 이은정 기자 bbongbbong01@uos.ac.kr
사진제공_ 장호석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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