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 학술문화부장
김유경 학술문화부장

하루 종일 놀다가 밤늦게 집으로 가는 지하철 막차에 오르고 나서야 핸드폰에 쌓여 있던 카카오톡 알림을 확인했던 적이 있다. 메시지의 내용은 다양했다. 기사 취재에 문제가 생겼다며, 또 취재에 대해 질문이 있다며 기자를 찾는 후배 기자들의 메시지와 집에 몇 시쯤 도착할 것 같으냐고 묻는 엄마의 메시지, 소소한 잡담을 보내온 친구의 메시지까지. 하나씩 빠르게 답장을 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메시지마다 기자를 부르는 호칭이 전부 다르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후배 기자들에게 ‘부장님’, ‘선배님’, ‘기자님’이었다. 엄마에게는 ‘우리 딸’이었으며 친구들에게는 ‘유경이’였다. ‘나’라는 존재는 분명 하나뿐인데 이렇게나 다양한 이름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기사를 쓸 때는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독자들의 눈에 가장 먼저 띄는 기사의 ‘이름’은 바로 제목이다. 제목이 좋을수록 그 기사에 관심을 가지고 읽는 사람의 숫자 역시 늘어나게 된다. 이렇듯 제목의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잘 알기에 기사의 제목을 정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 기사의 주제를 포괄하면서도 한 주제에 대해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내용 중 핵심이 되는 부분을 강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 역시 매호 기사를 쓸 때마다 제목을 열심히 고민한다. 어떨 때는 기사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제목을 정하는 시간이 더 길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제목을 열심히 고민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다. 이때 기사의 내용은 고려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기사에 나오는 단어 몇 개를 골라 짜깁기한 후 본문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제목을 붙이는 것이다. 조회 수가 곧 돈이 되는 인터넷 기사의 경우 이러한 현상이 특히 심하다. 일단 클릭만 누르게 만들면 그 후에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느낄 실망감은 상관없다는 태도다.

잘못 이름 붙여지는 것은 기사의 제목뿐만이 아니다. 특히 언론이 범죄에 대해 보도할 때 아무렇지 않게 피해자를 부각시켜 사건의 이름을 칭하고 있다. 지난 5월 발생한 공군 내 성추행 은폐 사건의 경우에도 ‘공군 여중사 사건’, ‘공군 여부사관 성추행 사건’ 등으로 흔하게 보도됐다. 이는 한 사건의 여러 특성 중 드러내지 않아야 할 특성을 선택해 옳지 못한 이름을 붙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기자는 이름을 붙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기자가 붙인 이름은 어마어마한 힘을 갖는다. 이름을 단 기사가 나간 순간부터 사람들은 한 기사에, 또 한 사건에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 이름만으로 기사와 사건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자가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이름을 붙일 때 항상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의 무거운 책임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때다.

 

김유경 학술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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