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을 다룬 영화 <투모로우> 제목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원제는 ‘모레(the day after tomorrow)’였으나 번역 과정에서 배급사가 ‘한국 사람들은 모레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서 위급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일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배급사가 사람 볼 줄 알았네’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달 대통령 직속의 ‘2050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는 모인지 두 달 만에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탄중위에서 내놓은 탄소중립 시나리오 3개안 중 2개안은 탄소중립이 불가능한 시나리오고 나머지 1개안 역시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의 퇴출 시점이 부재했다. 이를 본 환경단체는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라며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이야기한 녹색 성장에서 나아가 녹색 ‘전환’을 이루겠다는 현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진정한 전환은 찾아볼 수 없다. 단 두 달 만에 내놓은 졸속한 시나리오나 사업을 위한 사업들은 없으니만 못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ESG 경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기업이 친환경 마케팅을 펼치고 있지만 정작 환경 문제에 관한 깊은 고민 없이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해 친환경을 내세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런 기업을 행태를 두고 위장환경주의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는 이상 기후,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같은 인수공통감염병까지. 지금의 위기를 말해주는 경고등은 수없이 울리고 있지만 문제에 직면하고도 변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 누군가는 성장에 집중하기도 바쁜데 환경은 잠시 미뤄두자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장을 이룬다 한들 그 성장이 자리할 터전 자체가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후위기가 찾아왔고 지금 당장 해결책을 찾아 나서더라도 이미 늦었다는 이야기를, 진정으로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관한 주제를 ‘피씨하다’며 꺼리거나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누군가에게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불쾌함을 느끼거나 오만하다고 생각하진 않을지 스스로 검열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환경이 옳고 그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범위인가라는 의문도 든다. 이미 우리는 한계선을 넘어섰다. 투모로우가 아닌 오늘의 문제가 된 것이다. 내일을 바라는가. 내일을 원한다면 오늘 우리는 변해야 한다.


신유정(도사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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