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제 실현 가능성을 다각도로 살펴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약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대권 후보들은 저마다 다른 공약을 내세우며 홍보에 한창이다. 여러 공약 중 단연 뜨거운 화제로 꼽히는 것은 바로 ‘기본소득’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2년째 지속되고 있는 유례없는 상황과 맞물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기본소득이란 무엇일까. 기본소득의 정의 및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과 기본소득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 기본소득제 도입 시 고려해야 할 요소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살펴봤다.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

기본소득제는 재산, 소득, 고용 여부 및 노동 의지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소득분배 제도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생산 과정에서 인간의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에서 비롯됐다. 4차 산업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미래에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해 노동으로 얻는 소득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대안 중 하나가 바로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바로 ‘보편성’이다.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선별해 지급하는 것이 아닌 여건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기본소득 실험실에 따르면 기본소득의 특성에는 보편성 외에도 △무조건성 △정기성 △현금 지급 △개인 기반 등이 있다. 즉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해야 온전한 의미의 기본소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기본소득 중에는 이러한 특성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것이 많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심소득’, 유승민 전 국회의원의 ‘공정소득’은 모두 ‘부의 소득세’라는 개념을 기본소득으로 재포장한 것이다. 부의 소득세는 특정 수준의 소득을 정해 놓은 후 그 수준을 초과하는 고소득자에게는 세금을 징수하고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저소득자에게는 보조금을 주는 제도다. 이는 선별적 복지의 측면이 있어 정석적인 기본소득제라고는 볼 수 없다. 코로나19 상황 속 경기도에서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지급된 지원금 역시 이름에 기본소득이 들어가 착각하기 쉽지만 엄밀한 의미의 기본소득이 아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조건이 붙어 무조건성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고 일회성으로 지급돼 정기성 또한 없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가장 큰 숙제, 재원 마련

기본소득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하다. 우리대학 세무학과 김우철 교수는 “변형된 기본소득제와 정석적인 기본소득제를 실시할 때 필요한 재원에는 차이가 있다”면서 “최소 60조원에서 최대 300조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막대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국가의 채무 부담 △기존 복지 예산의 구조조정 △증세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세 가지 방법 모두 쉽게 생각할 수만은 없다.

김 교수는 “기본소득제 시행을 위해 국가 채무 부담을 늘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1~2년밖에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는 결국 미래 세대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기존 복지 예산을 정리해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기존 복지 제도를 없애는 것에는 반대하는 의견이 존재하며 선별적 복지가 갑작스레 사라진다면 큰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

현재 가장 많이 논의되는 재원 마련 방안은 바로 증세다. 하지만 국민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증세는 강력한 조세 저항에 부딪힐 확률이 높다. 김 교수는 “당장 기본소득제 실시를 위해 증세를 한다면 기업에 부과하는 법인세나 재산세를 두 배 이상 늘릴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기업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부가가치세 등을 인상해 모든 국민이 소비에 비례해 증세된 세금을 내는 방식으로 재원을 충당한다고 해도 역시 저항이 거셀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기간에 기본소득만을 위한 증세를 실시하는 것은 단순한 조세 저항뿐만 아니라 사회 분란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증세를 통해 기본소득제에 이용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증세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기본소득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영향

기본소득제를 시행했을 때 우려되는 점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노동 공급의 감소다. 기본소득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생활 수준 유지가 가능해진다면 사람들의 근로 의지가 저하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김 교수는 “아직 충분한 경제성장을 이루지 못한 사회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했을 때 생기는 노동 의지 저하는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노동 공급이 감소하면 정치와 경제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효율성이 낮아져 결국 복지의 수준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해 인간의 일 대부분을 로봇과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사회라면 노동 공급 감소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사람들의 근로 의지가 저하돼도 그만큼을 로봇과 인공지능이 채운다면 생산성이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의 또 다른 쟁점은 소득의 재분배 효과다. 기본소득제 도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통해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기본소득제가 오히려 저소득층에게 타격을 주는 제도라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 2017년 OECD에서 프랑스, 핀란드, 영국, 이탈리아를 대상으로 실시한 기본소득 시뮬레이션에서는 3개국의 빈곤율이 증가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시뮬레이션의 전제조건은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 기존의 복지 혜택을 삭감하는 것이었는데 1인당 기본소득 지급액은 빈곤을 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금액인 빈곤선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반되는 두 주장에 대해 김 교수는 “기본소득의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대규모 기본소득이라면 빈곤층의 입장에서 봤을 때 상당한 소득 재분배 효과를 체감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 달에 20만원 수준으로 소규모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기대만큼의 재분배 효과가 없는 것은 물론 오히려 저소득층에게 타격을 준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소규모 기본소득의 경우 저소득층에 집중한 선별적 복지 정책보다 효율성이 낮으며 소득 재분배 효과 역시 떨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기본소득 도입, 장기적인 목표로 바라봐야

많은 나라에서 기본소득과 관련된 실험이 진행되고 있거나 이미 완료된 상황이다. 핀란드에서는 지난 2017년부터 2년간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했으며 독일에서도 지난해 8월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의 감정 상태, 생활 변화 등을 비교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김 교수는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는 나라들은 미래를 염두에 두고 정석적인 기본소득을 연구한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기본소득을 단기적인 목표로 생각해 재원 마련을 걱정하고 기본소득을 변형시켜 논의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제가 안정적인 제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원 마련과 기존 제도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하며 그 바탕에는 국민적 공감과 합의가 있어야 한다. 모두 단기간에 완성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전체 소득을 꾸준히 안정적으로 증가시키면서 그 안에서 재원을 축적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재원 마련 방안”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것이 4차 산업 혁명이 진전되기만을 손 놓고 기다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사회적 합의가 된다면 경제 발전 과정에서 얻는 소득의 일정 부분을 기금화해 적립한 후 기본소득을 계획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제도를 개혁하는 일 또한 한순간에 이뤄질 수 없다. 현재의 복지 체계와 고용 지원 제도뿐만 아니라 세금 제도에서도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며 기존의 제도와도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사이의 상호 신뢰와 공동체 의식이 긴밀하게 유지돼야만 한다. 김 교수는 “기본소득제 도입의 가장 큰 장애물은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 충돌”이라며 “사회적 합의만 이뤄진다면 기본소득제는 모두가 환영할 만한 제도가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여러 가지 입장 중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효과적이고 온전한 의미의 기본소득제를 우리나라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고려 사항과 준비 사항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눈앞의 단기적인 결과물을 얻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방향에서 기본소득을 살펴보며 장기적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김유경 기자 candy886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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