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남부지법은 장인이 보는 앞에서 1m 길이의 장검 일본도로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A(49)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지난 3일 서울의 한 빌라에서 아내 B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한 인터넷 익명 커뮤니티에는 ‘일본도로 살해당한 아내의 친구예요.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에 따르면 평소 A씨는 B씨에게 가정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A씨 부부는 이혼 소송을 진행하며 별거 중이었다. B씨는 소지품을 챙기기 위해 본인의 아버지와 함께 집에 들렀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한 달 동안 보도된 ‘부부 살인’과 관련된 기사 제목들이다. 이를 보면 적지 않은 수의 사람이 배우자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배우자 간에 발생하는 살인 사건을 '0촌 살인'이라고 한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이 지난 2014년부터 2019년까지의 부부 살인과 사망 사건 1심 판결문을 조사한 결과 100건의 부부 살인 사건이 일어났음을 밝혀냈다. 그중 아내가 피해자인 경우는 66%이며 남편이 피해자인 경우는 34%에 달했다. 왜 이런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날까. 가장 가까운 사이인 배우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일까.

수치를 찾아볼 수 없는 0촌 살인

그렇다면 0촌 살인이 얼마나 일어나는지 알 수 있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이다. 우리대학 법학전문대학원 김희균 교수는 “현재 통계로는 배우자 관계를 따로 적는 란이 없고 동거 친족으로 구분된다”며 “실제로 몇 명의 남편이 몇 명의 부인을 죽였는지 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넓은 범위의 통계 때문에 가정폭력과 배우자 살인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불가능하다. 위의 수치도 범죄 통계를 통해 얻은 것이 아니라 직접 판결문을 조사해 얻은 수치다.

도입부의 사건과 같은 0촌 살인은 대부분 가정폭력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 <마부작침>이 조사한 바로는 0촌 살인에 대한 판결문의 71%에서 가정폭력이 언급됐다고 한다. 또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1년간 발생한 가정폭력 범죄 중 ‘가해자는 남성이며 피해자는 여성’인 사건이 74.8%에 달한다. 0촌 살인 사건에서 아내가 피해자인 경우가 66%였던 것을 보면 둘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수치도 가정폭력과 0촌 살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아니다. 김 교수는 “가정폭력은 그야말로 가정 내 폭력이기 때문에 노인학대, 아동학대, 배우자 학대 등을 전부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사실혼 배우자나 동거인, 동성 간 폭력은 가정폭력에서 따로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자 살인뿐만 아니라 가정폭력에서도 배우자 간 폭력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부족한 것이다. 이 때문에 가정폭력이 배우자 간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나라 범죄통계 분류 체계 바뀌어야

0촌 살인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또한 문제다. 0촌 살인에 관한 통계가 없어서 관련 법률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 법률에는 바로 위 혈연관계인 부모와 조부모 등을 뜻하는 존속에 대해서만 가중처벌 규정이 있다. 아들이나 딸과 같은 비속이나 배우자인 0촌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된 바가 없다. 김희균 교수는 “양형 기준에서도 ‘존속인 피해자’나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는 가중요소지만 ‘친밀한 사이’는 가중요소로 나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서 친밀한 사이는 배우자뿐만 아니라 애인 또는 동거인과 같은 사이를 나타낸다.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가정폭력을 포함해 데이트 폭력, 스토킹 등이 있다. 이와 관련된 통계 자료가 제대로 나와 있지 않으며 이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도 없다는 점은 문제가 된다. 지난해 5월 2일에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여성폭력범죄 대응을 위한 범죄통계 개선방안’ 세미나에서도 같은 지적이 있었다. 윤덕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현재 명예연구위원)은 피의자통계원표 ‘피해자와의 관계’ 항목에 가정폭력의 주 대상인 ‘배우자’가 빠져 있다는 문제점을 강조하여 피해자 정보 수집 항목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같은 자리에서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국내 범죄통계의 분류 체계가 범죄 행위를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우리나라 형법에서는 가정 폭력이 범죄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아 현황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배우자 살해하면 ‘무기징역’

그렇다면 외국에서는 0촌 살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존속뿐 아니라 비속이나 배우자를 살해했을 때도 가중 요소가 있다. 이탈리아 형법은 보통 살인죄를 20년 이상의 자유형으로 처벌하지만 자녀나 입양 자녀, 배우자를 살해한 경우 24년 이상의 자유형을 처벌한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로 보통 살인죄는 30년의 징역형에 처하지만 배우자를 살해한 경우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또한 우리나라 살인 통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분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제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범죄자와 피해자와의 관계를 분류할 때는 기타와 미상을 포함해 총 15가지의 기준이 쓰인다. 이때 애인과 친구는 있지만 배우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 살펴봤듯 동거친족에 포함되는 것이다. 반면 버지니아주의 범죄통계에서는 ‘살인 범죄자·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친밀한 관계 △전·현 배우자 △사실혼 배우자 △남자친구·여자친구 △동성애 관계를 비롯해 모두 24종으로 분류한다. 이렇게 세분화된 분류가 필요한 이유는 범죄에 대한 유의미한 데이터가 쌓여야지 그에 따른 정확한 판결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분류와 처벌 필요

0촌 살인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살인의 종류를 더 자세하게 나눠야 한다고 말한다. 앞에서 계속 언급한 것과 같이 우리나라의 범죄 통계는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존재한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폭력을 경험한 45.6%가 ‘별다른 대응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답했다. 대응하지 않은 이유로는 ‘배우자이기 때문에’가 21.9%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범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규정할 때 ‘배우자’ 항목이 필요한 이유다. 배우자도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제대로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살인을 가중처벌하는 규정이 필요하다. 김희균 교수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살인이나 도망할 방법이 없는 경우의 살인을 가중처벌하는 규정이 있다면 해결에 조금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글_ 이주현 기자 xuhyxxn@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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