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이하 노조)이 기자회견을 통해 파업에 돌입할 것을 예고했다. 지난 6월 사측이 적자 대책으로 총정원의 10%에 가까운 1539명 감원과 복리후생 축소 등을 골자로 한 구조 조정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파업을 예정한 지난 14일은 이동량이 늘어나는 추석 연휴와 근접한 날짜였으므로 노조 측의 선언은 폭탄과도 같았다. 
 

한 달가량의 노사 간 긴 줄다리기 끝에 파업 예정일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8시간이 넘는 협상을 통해 합의에 성공했다. 이후 △경영정상화는 노사공동협의체를 구성해 논의 후 추진 △무임수송 국비보전 정부·서울시에 노사 공동으로 건의 △임금은 작년과 동일 수준 △강제적 구조조정 없음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문을 작성했고 노조는 파업 철회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 대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의 근본 원인인 대규모 적자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구조조정은 언제든 다시 논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승 할인과 무임승차 정책으로 불어난 적자, 외부 지원은 없어

서울교통공사통합노동조합 김판규 교육홍보실장에 따르면 현재 서울교통공사 적자는 약 3조 7천억원으로 추산돼 언론에 발표된 3조원보다 많다. 이는 지난 2017년 5월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합병 이후 3년 연속으로 매년 5천억대의 적자가 누적된 결과다. 특히 지난해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승객이 줄며 적자 폭이 대폭 커져 재정난이 심화됐다. 이용자가 줄어 운영 수익이 적어져도 서울교통공사는 언제나 같은 수의 전철을 같은 시간 간격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김 홍보실장은 “코로나19 이전에는 이자는 갚을 정도의 수익이 났지만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승객이 적어져 이마저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김 홍보실장은 “중앙공기업과 달리 지방공기업은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정부에서 시행하는 복지정책인 무임수송 제도는 오로지 서울교통공사의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버스 환승 할인에 대해서도 시청의 지원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정부와 서울시의 정책 시행에 따라 발생한 손실을 서울교통공사가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노조는 지난 2010년부터 지방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왔지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지원 없이 손실만 발생하는 상황에서 적자가 누적돼 부도 직전에 다다른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우리대학 국제도시과학대학원 고홍석 초빙교수는 “서울 지하철은 비용 대비 요금 수준이 65% 내외에 불과해 만성적인 적자를 유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령인구의 증가에 따라 수송 인원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만 65세 이상 인구는 모두 무임으로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어 수입의 증가를 제약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공사는 요금인상 외에 특별히 수입을 증대시킬 수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만성적인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서울교통공사는 기존 인력의 10% 감축을 해결책으로 제시했으나 노동자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당장 목에 칼이 들어온 상황에서 노사갈등이 깊어진 것은 물론 노조 내부에서도 분열이 발생했다. 특히 지난 2018년 3월 무기계약직 직원 약 13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가 있는데 약 1500명의 인원을 감축한다고 발표하니 원망의 시선은 정규직 전환자들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 서울교통공사통합노동조합과 사측의 본교섭 현장
▲ 서울교통공사통합노동조합과 사측의 본교섭 현장

부대사업, 요금 인상 등 대안 제시됐으나  “실효성 없거나 시행 어려워”

다행히 노사합의를 통해 무산됐지만 적자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구조조정이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부대사업을 확장해 위기를 탈피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실제 지난 2017년 역내 광고를 줄이는 ‘문화예술철도 사업’을 시행한 지 약 3년 만에 상업 광고를 재개했다. 지난 8월의 경우 ‘역명병기 유상판매 사업’을 진행해 기존 지하철역 이름 옆이나 아래에 추가로 표기되는 부역명을 판매했다. 이처럼 운영수익 외에 부대사업을 강화해 적자를 메우려 노력하고 있지만 많아야 수십억원 정도인 부대사업 수익으로 조 단위의 적자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일각에서는 65세 이상 고령자 대상으로 실시 중인 무료승차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정책 최초 시행 당시 무임승차의 대상이 되는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16%로 그 비율이 4배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하루 평균 83만 명이 서울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데 이 요금은 한 해 37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에 △현행 65세에서 70세 이상으로 고령자 연령 상향 △기존 100%가 아닌 50% 할인율 적용 △노인 연령대에서 소득계층에 따라 무임대상자를 선정하는 방식 등 다양한 개선안이 등장했다. 그러나 연령을 올리거나 일부 노인들에게 지하철 요금을 받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사라지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들 역시 감소할 것이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도시철도를 둘러싼 논의는 ‘시민의 삶을 어떻게 개선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므로 무임승차를 축소하는 방식보다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증진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에 중점을 두고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하철 요금을 인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된다. 고홍석 교수는 “불합리한 내부적 비용구조를 개선하는 것을 전제로 원가에 못 미치는 요금 수준을 적절하게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송 인원은 지역별로 상이한 반면 지하철 요금은 전국 모두 동일한 것도 요금 인상의 근거로 꼽힌다. 이 역시 쉬운 대안은 아니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특히 서울 지하철 이용료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요금을 올리면 시민들의 반발이 크고 선거 결과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에 결정의 주체인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누구도 선뜻 나서 함부로 인상할 수 없다. 실제 서울 지하철 요금은 지난 2015년 이후 6년째 동결 중이다. 이에 김판규 홍보실장은 “지하철 요금을 인상하려면 서울교통공사, 서울시, 정부, 시민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하는 협의체를 꾸려 충분히 논의를 거친 후 합리적으로 책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사 측과 국회 다수, 무임승차 비용 국가가 부담해야

27년간 서울 지하철에서 근무하며 노동운동에 앞장섰던 이은주 의원은 지난해 8월 철도 운영 중 공익서비스 제공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하는 『도시철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미래통합당 의원까지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이처럼 도시철도의 공적 서비스 의무(PSO)를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에 여야는 물론 지방정부와 노사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다수의 합의에 힘입어 해당 개정안은 국도교통위원회 법안 소위를 통과했으나 전체 회의에서 처리가 보류됐다. 이은주 의원은 “사회적으로 공고한 합의가 형성됐음에도 제도화에 이르지 못한 것은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재정당국의 반대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획재정부는 재정 부담과 예산 문제를 이유로 PSO 법제화에 반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도시철도 운영회사의 재정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며 “이로 인한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재정은 시민을 위해 쓰여야 하는 사회적 자원으로 공공 교통의 안전성과 공공성을 지키는 것은 우리 재정의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용처 중 하나”라며 “코로나19 국면에서 시민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PSO 제도화와 도시철도의 안정적인 재원 확보는 더욱 절실하다”고 『도시철도법 일부개정법률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교통공사 부도 위기, 정부와 서울시가 나서야

이번 노사합의를 계기로 서울교통공사의 만성적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만큼 문제를 타파할 대안을 시급히 모색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김판규 홍보실장은 “현재 서울교통공사는 부도 위기에 몰려있는 상황”이라며 “그동안 손실을 메꾸기 위해 공사채를 발행해왔지만 그 횟수가 너무 잦아 승인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사채 발행이 허용되지 않아 어음을 갚지 못하면 꼼짝없이 부도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어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여름엔 에어컨도 틀지 못하고 형광등을 꺼두는 등 최대한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파업 선언은 최후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시민들께는 죄송하지만 여러분이 불편을 겪고 민원을 제기해야만 정부와 국회, 각종 이해관계자들이 직원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보인다”라며 양해를 구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부와 서울시는 더 이상 사측에 운영문제를 떠넘기지 말고 복지정책으로 인해 생기는 손실에 대한 보전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주 의원은 “도시철도의 공공성 보호를 위해 지출되는 비용을 노동자와 운영기관에 떠넘기는 방식과 지방정부로 하여금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식의 정부 태도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공공 교통 체계 전반의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며 “PSO 국비 보전을 명시한 『도시철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채효림 기자 chrim77@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