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75주년이자 한글날이 제정된 지 95주년이 되는 한글날이었다. 세종대왕은 1443년에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을 완성하고 1446년에 이를 반포했다. 한글을 만든 이유와 사용법이 적힌 책인 ‘훈민정음해례본’의 서문에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중국 문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다”. 이처럼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문자이자 만든 목적과 사람, 시기를 아는 유일한 문자다. 한글날은 훈민정음이라는 문자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날이다. 한글날을 맞이해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자 했던 조상들의 노력과 오늘날 우리의 언어생활을 돌아보자.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노력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조선교육령』을 통해 일본어와 일본 역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 조선 민족 말살과 일본으로의 동화를 감행하고자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조상들은 우리말과 글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한 노력의 결실 중 하나가 바로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1926년 조선어학회에 의해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제정됐다. 이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보존하려는 방법이자 일본의 어문말살 정책에 대한 항거의 뜻으로 일종의 독립운동이었다. 다행히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며 우리는 우리말과 글을 지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광복 초기에는 식민통치를 받은 35년의 세월 때문에 우리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국어 교육을 받지 못한 청소년층은 문맹에 가까웠다. 그러나 정부는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우리말 도로찾기 운동’과 같은 제도를 시행하며 우리말과 글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국어기본법』 제20조에는 ‘정부는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범국민적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해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에 따라 매년 한글날에는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글에 대한 의식을 높이기 위한 각종 행사가 진행된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는 문맹률 1%로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됐다. 

지난 2018년 12월 국립한글박물관에서 발표한 ‘한글과 한글문화에 관한 국민 의식 기초 조사 연구’에서 우리나라 국민 1천 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글은 ‘아름답고’(92.1%), ‘과학적’(91.8%)이고 ‘현대적’(86.6%)이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86%)라는 의견에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조상들의 노력 덕에 한글을 지킬 수 있었고 국민들은 한글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며 한글날을 기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만 인지한 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목적과 일제강점기에 탄압을 받으면서도 한글을 지키고자 했던 조상들의 노력을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광복 76주년, 그러나 여전히 우리 곁에 잔재해 있는 일본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7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상 속에는 수많은 일본식 단어가 잔재해있다. △식비-밥값 △간식-새참 △잔고-잔액 등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와 순화한 우리말의 예이다. 이처럼 대체 가능한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차이를 모르거나 일본식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식 단어는 일상생활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 보고서, 언론 등 공적인 영역에서도 볼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와 관련한 신조어에도 국제 표준 용어가 아닌 일본식 단어가 빈번히 쓰이고 있다. 

지난 7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다음달 9일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위드 코로나라는 말이 정부와 언론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봤을 것이다. 위드 코로나는 ’With Corona’라는 영어에서 나온 용어인데 일상을 되찾기 위해 코로나19와의 공존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영어 표현조차 잘못된 표현이다. 사실 ‘Coexist with COVID-19’가 올바른 영어 표현이다. 그렇다면 With Corona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콩글리시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With Corona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식 영어다. 또한 지난 9월 6일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위드 코로나라는 용어 자체가 포괄적이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없앤다는 의미로까지 표현되고 있어 방역 긴장감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다”며 “일상회복을 위한 방역체계를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완화한다는 의미인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터넷 기사나 신문 제목에서는 여전히 위드 코로나라는 부정확한 용어가 쓰이고 있다. 지난해 1월 국립국어원에서 5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 따르면 일본식 외래어와 일본식 한자어에 대해 각각 70.9%와 60.1%가 ‘적극적인 순화어 사용’ 또는 ‘되도록 (일본식 외래어와 한자어) 사용을 자제하고 순화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국민들도 일본식 잔재어의 순화 사용 필요성을 인지하고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래어와 외국어 사용도 범람해

일상생활에서 새롭고 빠르게 등장하는 신조어에는 외래어나 외국어가 그대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촬영하고 편집해 올리는 영상을 일컫는 말인 ‘브이로그(vlog)’, 새로운 제품을 개봉하는 영상을 부르는 말인 ‘언박싱(unboxing)’ 등이 그 예이다. 브이로그는 영상 일기로, 언박싱은 개봉기로 순화해 사용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코로나19와 관련된 외래어와 외국어에는 ‘팬데믹’,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부스터 샷’ 등이 있다. 팬데믹은 ‘세계적 대유행’으로,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는 ‘차량 이동형 진료소’로, 돌파 감염을 방지하고 접종 효과의 향상을 위해 추가로 접종하는 것을 말하는 부스터 샷은 ‘추가 접종’으로 순화해 사용할 수 있다. 

공공언어는 공공 기관과 국민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언어생활의 모범과 규범 역할을 위해 바르게 쓰이도록 권장된다. 그러나 지난해 한글날을 맞아 국립국어원과 언론사 뉴시스가 ‘공공언어 쉬운 우리말 쓰기 조사’를 시행한 결과 53%의 국민이 코로나19 관련 단어를 알기 위해 개인적인 노력을 한 경우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감염병과 같이 전 국민이 알아야 하는 용어에 부정확한 용어, 어려운 용어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정확한 정보 전달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

평소 언어생활을 돌아볼 기회가 되길

앞서 언급한 ‘2020년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서 외래어와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은 순화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주된 이유로 ‘순화어가 본래의 의미를 정확히 나타내지 못해서’라는 의견이 42.6%를 차지했다. 그러나 ‘리유저블 컵’, ‘펫로스 증후군’, ‘쇼룸’ 같은 경우엔 ‘다회용 컵’, ‘반려동물 상실 증후군’, ‘체험 전시실’로 순화해 불러도 정확한 의미 전달이 가능하다. 오히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순화어가 의미 전달에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정부는 독립 이후부터 우리말과 글을 찾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특히 법제처는 2006년부터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를 추진하거나 지난해 10월 ‘일본식 용어 정비 사업 추진 현황 및 향후 계획’을 발표해 법 조항에 잔재해있는 어려운 한자어와 일본식 용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우리말 다듬기’를 통해 용어와 언어에 대한 상담과 감수, 번역 요청을 받고 이를 통해 다듬은 말을 국립국어원 누리집에 게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다듬어진 말은 약 1만 8천 건으로 검색을 통해 순화된 우리말을 찾아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던 시기부터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그리고 오늘날까지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우리말과 글을 보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평상시 불편했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공공언어나 단어들은 국립국어원을 통해 제보하거나 이미 다듬어진 말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말 보존에 이바지할 수 있다. 한글날을 맞이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목적과 한글의 우수성, 일제강점기에도 한글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조상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평소 언어생활을 돌아보고 개선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


김은정 기자 e0623j@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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