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가게마다 통이 넓은 청바지와 배꼽이 보이는 짧은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다. 90년대에나 입던 촌스러운 패션 아이템으로 취급되던 게 먼 옛날 같다. 지난 2001년에 발매된 가수 쿨(COOL)의 ‘아로하’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주연 배우 조정석에 의해 리메이크되며 지난해 연간 음원차트 3위에 올라 더 이상 추억의 노래가 아니게 됐다. 이번해에도 리메이크 음원의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식품 업계에서도 이러한 트렌드가 이어지면서 멀게는 십수 년 전, 혹은 불과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과자나 음료가 재출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는 레트로 컨셉 식당과 카페가 문을 열고 있다. 레트로는 어느새 ‘뉴트로’가 돼 대중문화에 자리 잡은 것이다.

대중들이 레트로를 사랑하는 이유

1991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던 A(48) 씨는 요즘의 레트로 유행이 새롭고 재미있다. 20대 시절 즐겨 듣던 노래들이 얼마 전 아이돌 가수에 의해 다시 발매돼 자녀와 함께 감상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흐름이 시작된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그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시작되던 무렵부터 옛날 노래가 리메이크되고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과거의 노래들이 발굴되는 것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하영(18) 씨는 “예전에는 부모님 세대에 나온 노래들이 느린 템포와 서정적인 가사로 구성돼 있어 촌스럽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응답하라 1988>이나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OST를 최근에 다시 들어보니 요즘의 아이돌이나 힙합 노래와는 달라 새롭게 다가왔다”며 “부모님이 즐겨 듣던 이유를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중문화평론가인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김창남 교수는 “드라마나 영화, 가요 등 대중문화 상품은 제작비가 많이 드는 반면 흥행 결과에 대한 예측이 매우 어려워 리스크가 큰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문화 생산자들은 늘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인 수익을 얻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어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과거에 이미 상품성을 인정받은 상품을 모방하거나 리메이크하는 것이다”라며 문화 소비자들이 리메이크 음원에 반응하는 이유에 대해 밝혔다. 리메이크 음원 발매는 200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 시장이 아이돌 팝 위주로 흐르면서 음악적 스펙트럼이 매우 좁아진 상황에서 폭넓은 장르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됐다. 김 교수는 “일부 음악을 제외한 다양한 음악 취향이 소외돼왔기에 최근에 소비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패션계에서도 과거의 아이템들이 새롭게 떠오르기는 마찬가지다. A(48) 씨는 “대학 시절 입던 코트를 딸이 물려 입기 시작했다”면서 “오히려 요즘 나오고 있는 옷들이 나에게는 옛것 같아 촌스럽게 느껴지는데 지금의 20대 사이에서는 유행이라고 하니 의외였다”고 덧붙였다.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는 우세민(24) 씨는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곱창 모양 머리끈이나 집게핀은 어머니 세대가 사용하거나 내가 아주 어릴 때나 볼 수 있었던 액세서리였다”고 돌아보며 “하지만 이제 주변에 곱창 머리끈이나 집게핀이 없는 친구가 없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또한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다리에 달라붙는 바지인 스키니진이 유행이었는데 최근에는 통이 매우 큰 바지가 유행하는 것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고 덧붙였다. TV를 틀면 MZ세대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돌들이 8090세대의 패션 아이템을 하고 나오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이에 우 씨는 “방송계에도 레트로 패션이 이미 자리 잡은지 오래된 것을 알 수 있었다”며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옛날 아이템으로 취급되던 것들을 착용하고 나온다”고 말했다. 다소 획일화됐던 몇 년 전의 패션 문화와 달리 현재의 패션계는 MZ세대의 개성 가득한 면모가 반영되며 X세대 시절의 옷부터 미래지향적인 아이템까지 아우르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 이 역시 음악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취향이 존중받으며 나타나는 긍정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레트로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나

김 교수는 “레트로 유행은 최근에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다”라며 “어느 시대에나 비슷한 현상이 있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점점 더 그런 현상이 많아지는 것”이라며 “이미 나올 것은 다 나와 있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새로운 것을 창안하기가 어려워지는 데 그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과거에 인기 있던 상품을 재출시하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할 때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상품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재출시 상품은  과거에 실제로 향유했던 세대에게는 향수의 대상이 되고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그 자체로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레트로 문화의 유행은 기업이나 방송사와 같은 생산자가 주도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아니라는 답을 전했다. 대중문화에 있어 생산자와 소비자는 상호작용하는 존재이기에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순서를 따질 수 있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선도하는 건 기업 쪽이라고 할 수 있다”며 “시장의 변화와 소비자들의 욕망을 민감하게 읽어내면서 상품을 내놓으면 소비자들이 거기에 반응하면서 생산자들의 전략이 수정되거나 강화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레트로 문화의 유행을 환영하고 있기에 기업이 계속해서 생산해내는 것이다. 우세민 씨는 “레트로가 세대 간의 연결고리가 돼주고 있는 것 같다”며 “재출시와 재생산이 소비자 입장에서 반갑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레트로 열풍을 시작으로 유행이 돌고 도는 텀이 짧아져 8090뿐만 아니라 2010년대 초반의 문화까지 재유행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에서는 2010년대 아이돌 노래들을 재발견한다는 취지의 ‘컴백해도 눈 감아줄 명곡’ 프로젝트를 지난 6월 성공적으로 마쳤다.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여러 SNS의 등장으로 인해 2019년 서비스 종료돼 자취를 감췄던 커뮤니티 사이트 ‘싸이월드’도 얼마 전 다시 문을 열었다. 머지않은 훗날 2020년대 문화도 레트로로 취급돼 유행할 날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오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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