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국립극장에서 장애인 극단 ‘다빈나오’의 공연 ‘소리극 옥이’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소리극 옥이는 국립극장이 지난해 시작한 ‘동행,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공연이며 ‘배리어 프리’를 지향한다. 배리어 프리는 고령자나 장애인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장벽을 허무는 움직임을 일컫는 용어다. 최근 배리어 프리는 주택이나 공공시설을 넘어 영화, 전시, 축제, 공연 등 문화예술계 각지로 확대되고 있다. 소리극 옥이를 감상하며 배리어 프리 사업에 대해 알아봤다. 

배리어 프리,
공연장의 벽을 허물다 

배리어 프리는 1974년 6월 국제연합 회의 당시 ‘장벽 없는 건축 설계에 관한 보고서’에서 언급된 용어로 건축학 분야에서 처음으로 사용됐다. 2000년 이후부터는 의미가 확장돼 다양한 분야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자는 차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문화예술 향유권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문화예술분야로까지 확대됐다. 미국의 봉사 단체 ‘Metropolitan Washington Ear’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 연극 오디오 해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아르헨티나의 ‘Teatro Ciego’는 시각 외에도 후각과 촉각을 활용해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이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증가한 온라인 생중계 공연에 배리어 프리 요소가 도입되고 있다. 국립극장은 지난해부터 ‘동행,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며 공연 실황 영상에 음성 해설과 자막과 수어를 삽입한 무장애 영상 콘텐츠들을 제작하고 있다.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재금 책임피디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문화를 접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더욱 문화적 소외감이 심할 것이라 봤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공연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공공극장인 국립극장이 앞장서 이행해야 한다고 봤기에 사업을 기획했다”고 전했다. 이 책임피디는 “배리어 프리 영상 콘텐츠 제작을 넘어 이번해 하반기부터는 사업 영역을 오프라인 공연까지 확대하고 있다”며 “배리어 프리 공연 소리극 옥이의 경우 무대 위 해설과 수어 통역뿐 아니라 점자로 된 공연 안내지를 제공했고 보조 휠체어 서비스와 장애인용 셔틀버스 서비스를 도입했다”고 전했다. 
 

▲ ‘소리극 옥이’의 무대
▲ ‘소리극 옥이’의 무대

소리극 옥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무대

소리극 옥이는 ‘옥이’라는 이름의 시각장애인에 관한 이야기다. 공연의 첫 장면은 트랜스젠더 ‘은아’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쫓기듯 글을 적는 옥이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옥이는 병을 앓는 엄마가 깨어나길 소망하며 바리데기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던 중 잠에 들고 꿈속에서 엄마를 찾는 여행을 시작한다.  

소리극 옥이를 감상하기 위해 객석에 입장하자마자 무대 위에 있는 수화 통역사를 볼 수 있었다. 무대 밖에서 수화와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리라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공연이 시작된 후에는 수화 통역사가 대사 전달을 넘어 표정으로 배우의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무대에서 수화 통역사의 존재는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가 아닌 하나의 무대 장치로 작용했다. 소리극 옥이의 김지원 연출가는 “지난 2017년 초연부터 이번해까지 5년에 걸쳐 작품을 연출하며 많은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했다”며 “특히 이번해 공연은 해설과 통역이 극의 한 부분처럼 유기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구성, 배치, 표현법에서 많은 연구를 했다”고 설명했다. 
 

▲ ’옥이’에게 종이배를 건네는 트랜스젠더 ‘은아’
▲ ’옥이’에게 종이배를 건네는 트랜스젠더 ‘은아’

해설사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였다.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 위 해설사는 등장인물의 표정과 행동을 담아낸 지시문을 하나하나 낭독했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해설사의 설명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몰입시키는 효과적 장치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극의 후반부에서 엄마를 찾기 위해 저승으로 향한 옥이가 대기 번호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분노하는 장면에서는 공연장 내 모든 조명이 꺼져 장애인과 비장애인 할 것 없이 배우의 목소리와 해설만을 들어야 했다. 암전으로 시각이 차단된 상황에서 극 중 옥이가 겪는 두려움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김 연출은 해당 장면에 대해 “모두가 옥이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며 “암전 처리를 통해 우리에게는 다양한 언어와 소통의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장애인 배우가 무대에 오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소리극 옥이는 장애인 관객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예술 제공의 주체로 장애인을 맞이하며 무대 위 배리어 프리를 구현했다. 무대에서는 주인공 옥이 역을 맡은 배우를 비롯해 각자 다른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등장한다. 특히 저승문을 통과시켜주는 조건으로 옥이에게 결혼을 제안한 ‘범’ 역할을 맡은 배우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어 비장애인 배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음이 명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때보다 극에 몰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범의 대사에 집중함으로써 극에 더욱 몰입했다. 범의 등장을 통해 무대 위 배우의 소리에 귀 기울일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 아이를 낳고 떠나려는 ‘옥이’를 붙잡는 ‘범’
▲ 아이를 낳고 떠나려는 ‘옥이’를 붙잡는 ‘범’

김지원 연출가는 “배리어 프리 공연의 구체적 방향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데 가장 필요한 인력이 장애인 배우”라고 전했다. 장애 당사자가 장애인 관객의 불편함을 해결할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리극 옥이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거나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을 목적으로 한 작품은 아니라며 “우리는 그저 작품을 재밌게 만들었고 관객들이 재밌게 봐 주길 바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소리극 옥이에서 장애인 예술가들은 적극적으로 공연에 임하며 예술의 주체가 됐다. 지금까지 공연예술계에서 배리어 프리는 객석에서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소리극 옥이와 같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객석을 넘어 무대에서 배리어 프리를 구현하려는 공연예술계의 시도들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안가현 기자 worldisred0528@uos.ac.kr
사진출처_ 극단 ‘다빈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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