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이 지나고 있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방법은 모두 다를 것이다. 글자 하나하나를 씹어먹듯 탐독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두꺼운 책을 몇 시간 만에 읽어버리는 속독 능력을 가진 자도 있다. 기자가 선택한 방법은 정독에 필사를 곁들이는 것이다. 건너뛰거나 대충 훑어내리지 않고 꼼꼼히 읽는다. 그렇게 읽다가 인상에 깊게 남는 문장이나 단락은 노트에 손으로 직접 기록한다. 이렇게 문장을 채워 넣은 노트는 어느새 한 권을 넘어 두 권이 됐다.
 

▲ 수개월 전 책 [바깥은 여름]의 일부분을 필사한 노트
▲ 수개월 전 책 [바깥은 여름]의 일부분을 필사한 노트

1년 이상 필사를 하다 보니 느끼는 장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와닿는 점은 바로 독서에 재미를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독서를 하던 지난날과 달리 영감을 주고 내 감성에 맞는 문장을 찾는 재미가 있다. 시집을 읽어도 읽는 중에만 몰입하고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어떤 시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수십 개의 시 중 재미있게 혹은 인상 깊게 읽은 시 한 편을 기록하고 나면 비로소 시집 한 권을 오롯이 읽어낸 기분이다. 기자는 책 표지를 넘길 때마다 설렘을 느낀다. 이번엔 어떤 문장과 어떤 시가 기자의 노트에 기록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글쓰기 실력과 어휘력이 는다는 장점도 있다. 작가마다의 개성이 담긴 문체와 매 책마다 만나는 새로운 단어들은 사고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이런 장면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이런 상황에 이런 단어를 쓸 수도 있구나’를 단지 느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노트에 꾹꾹 눌러 쓰다 보면 그 문장과 단어가 내 것이 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실제로 기자는 기사를 작성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 인상 깊었던 문장을 노트에 기록하는 기자의 모습
▲ 인상 깊었던 문장을 노트에 기록하는 기자의 모습

필사의 매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필사는 때로는 악필을 명필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노트의 한 페이지를 보기 좋게 채우고 싶다는 욕심은 휘날리는 글씨를 정갈하게 변화시킨다. 기자의 경우 공부를 할 때나 메모를 적을 때는 글씨를 대충 쓰지만 필사를 할 때만큼은 시간과 공을 충분히 들여 천천히 글을 써내려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평소에 쓰는 글씨도 보기 좋게 바뀌었다. 이처럼 필사는 필체 교정에도 탁월하기에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발전을 원하는 사람에게도 적합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북 리더기, 책 정기구독 앱 등 디지털 시대에 맞춰 다양한 독서 문화가 생겨날수록 아날로그의 중요성을 깨닫는 요즘이다. 필사란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휙휙 넘기며 글을 읽다가도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문장을 공책에 수기로 작성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잠금 버튼을 누르면 전자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노트에는 직접 기록한 문장이 남는다. 읽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마음에 남기고자 하는 독자에게 필사를 추천한다. 오늘 읽은 신문에서 흥미롭게 느껴진 한 문장을 노트에 기록해보는 것으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글·사진_ 오유빈 기자 
oyubin9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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