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슈퍼에 가면 300원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슈퍼에서 300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최소한 천원은 있어야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물가가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에 따르면 이는 통화량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 화폐의 양을 꼽으며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화폐적 현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화폐의 양이 늘어나면 그만큼 가치가 떨어지고 그 결과 같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 많은 양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통화량은 어떻게 늘어난 것일까요. 최근 조폐 공사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돈을 많이 찍어내고 있지는 않은 듯합니다. 답은 은행의 대출, 즉 빚입니다. 빚이 돈이 되는 과정을 경제학적 용어로 신용 창조라고 합니다. 

가령 A씨가 시대은행에 100만원을 예금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시대은행은 예금 100만원 중 10만원을 은행에 남겨두고 90만원은 B씨에게 빌려줍니다. 그러면 시중에 있던 통화량 100만원에 더해 B씨의 대출금 90만원 만큼의 통화가 새롭게 생겨나게 됩니다. 이때 은행이 남긴 10만원은 지급준비금이라고 하며 은행은 지급준비금을 남김으로써 예금자의 인출에 대비합니다. 

다시 B씨가 물건 구입 대금으로 C씨에게 90만원을 주고 C씨가 이 금액을 전농은행에 예치했다고 해봅시다. 전농은행은 90만원을 가만히 가지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전농은행은 9만원을 남겨두고 81만원을 D씨에게 빌려줍니다. 그 결과 D씨의 대출금 81만원이 시중에 풀리게 됩니다. 

이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면 등비수열의 합 공식에 따라 전체 통화량은 1천만원(100만원/10%)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은행은 고객에게 받은 예금보다 더 많은 예금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새롭게 생겨난 돈이 모두 빚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금융 제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도 양적완화를 통해 통화량을 늘릴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채권시장에서 채권 등 금융자산을 매입함으로써 시중에 통화를 직접 푸는 것을 양적완화라고 합니다. 자금 조달을 위해 정부나 기업 등이 채권을 발행하면 중앙은행이 이를 사들이기 때문에 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양적완화는 경기부양 효과가 한계에 봉착했을 때 추가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쓰는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최근에는 양적완화의 효과가 미미해지자 자산 매입 한도를 없앤 ‘무제한 양적완화’를 시행하는 국가들도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자본주의 체제의 금융 시스템에서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계속 늘려야 하는 이유가 학자들 사이에서 연구되기도 했습니다. 경제학자인 로저 랭그릭은 그 답을 이자에서 찾았습니다. 가령 중앙은행과 농부 A씨, 씨앗 판매자 B씨가 섬에 있다고 해봅시다. 중앙은행은 100만원을 발행해 이자 10%로 A씨에게 100만원을 빌려줍니다. A씨는 B씨에게 100만원어치의 씨앗을 구매해 열심히 농사를 짓습니다. 1년 뒤 A씨가 수확을 해 돈을 벌더라도 그 금액은 최대 100만원일 것입니다. 애초에 섬에는 100만원 밖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결국 중앙은행이 빌려준 돈의 이자를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돈을 발행해야 합니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화폐를 계속해서 공급해야 하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게 로저 랭그릭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통화량을 무한대로 늘릴 수는 없습니다. 통화 공급이 늘어나면 그만큼 가치가 떨어져 돈이 휴지조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물가가 통제 상황을 벗어나 극단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하이퍼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독일에서는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수레에 돈을 가득 싣고 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필요 이상의 돈이 풀려 유동성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통화 공급이 감소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동안 시중에 풀린 막대한 돈으로 사람들은 집도 사고 차도 샀습니다, 갚아야 할 돈은 그대로인데 돈의 양이 줄어들면 빚을 갚기 어려워지겠죠.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늘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한 은행은 큰 타격을 받습니다. 대출에서의 손실이 쌓인 은행이 예금자와 기타 자금공급자들에게 예금을 지급할 수 없으면 그 은행은 파산합니다. 그 결과 은행에 돈을 맡겨둔 모든 경제 주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지난 3일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자산 매입을 축소하는 테이퍼링을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연준이 매입하는 채권의 규모를 점차 축소해 시중에 풀었던 돈의 양을 서서히 줄여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돈 잔치가 막을 내린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시중에 풀린 막대한 돈으로 누렸던 호화로운 생활이 끝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어찌 보면 버블로 쌓아 올린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비정상적인 것은 언젠가는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경제학의 균형이론처럼 말입니다.


신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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