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A(20) 씨는 동묘에 위치한 옷가게에 방문해 피팅룸에서 옷을 갈아입던 중 수상한 빛을 발견해 카운터 직원에 제보했다. 세 달 뒤 A씨가 다시 동묘를 방문했을 때 해당 옷가게는 사라져 있었으며 이웃 상인을 통해 “변형카메라가 발견돼 재공사를 하는 중”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이외에도 A씨는 불법촬영 범죄 현장을 목격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A씨는 학원 상가에 위치한 여자화장실에 경찰이 와있어 의아함을 느꼈으나 이유를 알지 못하고 지나쳤다. 1년 뒤 A씨는 ‘성폭력 알림e’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보던 중 해당 상가 여자화장실에 설치기사로 변장한 범죄자가 변형카메라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또 다른 여성 B(22) 씨는 평소 자주 가던 술집의 상가 화장실에 경찰이 온 것을 보고 방문 이유를 물었으나 답을 듣지 못해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후 B씨는 며칠 전 방문했던 화장실에 이웃 술집의 한 직원이 변형카메라를 설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늘어나는 불법촬영 범죄, 화장실도 맘 편히 못 간다

이처럼 변형카메라를 화장실이나 탈의실, 모텔 등에 설치해 성적인 의도로 타인을 촬영하는 불법촬영 범죄는 우리 주변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앞선 사례 외에도 최근 한 초등학교 교장이 교사 화장실에 변형카메라를 설치한 사건, 동료 직원 사무실 책상 밑에 카메라를 설치한 은행원 사건 등이 잇따라 보도됐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찾는 피해자 수는 지난 2018년 1315명, 지난 2019년 2087명에서 지난해 4973명으로 급증했으며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발생한 피해자 수는 5695명으로 벌써 지난해 피해자 수를 넘어섰다.

불법촬영 범죄의 주 타깃인 여성들은 화장실을 갈 때도 불안을 겪는다. 서울시가 지난해 만 19세 이상 서울시 거주 여성 10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외부 화장실 이용시 불법촬영을 걱정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91.2%로 밝혀졌다. A씨와 B씨 역시 “밖에서 화장실에 가면 항상 수상한 구멍이 존재하는지 확인한다”며 “발견한 구멍은 모두 휴지로 막은 후에야 안심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 알 수 없는 구멍들이 잔뜩 뚫려있는 한 상가내 여자화장실 내부 모습
▲ 알 수 없는 구멍들이 잔뜩 뚫려있는 한 상가내 여자화장실 내부 모습

변형카메라, 구매는 쉬우나 발견은 어려워

실제 용산전자상가에 방문해 변형카메라 구매를 직접 시도해본 결과 어렵지 않게 변형카메라를 구할 수 있었다. 구매 목적을 묻는 상인에게 물건 도난을 이유로 답하자 “그런 이유로 구매하러 오는 분들이 많다”며 다양한 상품을 소개했다. 심지어 “요즘은 렌즈 각도가 조절되는 제품도 나와 천장에 안 보이게 설치할 수도 있다”며 발각이 어려운 카메라를 추천하기도 했다. 상인 C씨에게 불법촬영을 목적으로 카메라를 구매하는 손님은 없는지 묻자 “대놓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면서도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목적을 밝히지 않거나 다른 이유를 대고 구매하는 경우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범죄를 저지르려는 이들에게 의도치 않게 걸리기 어려운 변형카메라를 추천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더욱 쉽게 변형카메라를 구매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위장 카메라, 초소형 카메라 등의 검색어를 입력하자 회원가입 없이도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여러 사이트가 등장했다. △인형 △시계 △뱃지 △라이터 △마우스 등 취급하는 카메라 형태도 다양했다. 몰래카메라 전문탐지업체 ‘두드림보안탐지기업’ 관계자는 “알리바바와 익스프레스 같은 해외 유통 사이트에서는 국내 가격의 절반 가격에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쉬운 구매 방법과는 대조적으로 숨겨진 카메라를 찾는 것은 어려워 범죄 검거가 힘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플래시를 켜 카메라 렌즈에 덮어 사용하는 ‘몰카탐지카드’와 적외선 탐지를 통해 카메라를 찾아내는 앱을 직접 사용해보았다. 용산전자상가에 위치한 카메라 매장에는 다양한 변형카메라가 전시돼 있었는데 두 방법을 적용했을 때 모두 일부 렌즈는 하얀 빛으로 반사됐지만 숨겨진 렌즈들의 대부분은 찾기 어려웠다.

두드림보안탐지기업 관계자 역시 “불법카메라 탐지용 앱이나 탐지카드는 거의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판매되는 카메라 렌즈는 코팅 처리가 돼있어 앱이나 카드로 발견하기 어려우므로 전문 탐지기를 이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중에 판매하는 8만원 상당의 ‘몰카탐지기’ 화면에서는 숨겨진 카메라가 비교적 잘 두드러지긴 했으나 육안으로는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불법촬영 범죄 근절 위한 노력 이어져

지난 7월 초소형 카메라 판매 금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23만 명을 돌파하는 등 불법촬영 범죄 근절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회에서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정부는 “초소형 카메라 등 변형카메라에 대한 등록제 도입과 위반 시 처벌을 위한 관련 벌칙 등을 통한 관리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지난 8월 밝혔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카메라 탐지기 대여 사업을 시행하거나 시민들이 직접 불법카메라 설치 여부를 감시하는 ‘불법촬영시민감시단’을 운영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변형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상정되는 등 입법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변형카메라의 제조·수입·판매·대여·구매 대행을 업으로 하는 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등록해야 한다. 이외에도 △변형카메라 취급 정보의 체계적 관리를 위한 이력 정보시스템 구축 △변형카메라 판매 시 구매자에게 성범죄 등 부당한 목적의 사용이 불가함을 고지할 의무 등이 포함됐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예방법은

정부와 국회가 단속과 규제를 강화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모든 범죄를 예방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개인 역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이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대비책으로 인천 디지털성범죄 예방대응센터 김한솔 홍보 담당관은 “‘여성안심화장실’이나 ‘불법촬영 안심존’ 스티커가 붙은 공중화장실, 모텔 등을 이용하면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불법촬영 안심존 스티커는 경찰청,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불법촬영 합동 점검을 마친 안전한 곳임을 증명해주는 표지다. 공공기관에서 탐지기를 대여해 직접 변형카메라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다. 우리대학에서도 학부과를 통해 총무과에 요청하면 탐지기를 빌릴 수 있으며 관악구청과 강남구청 등에서도 민간인을 대상으로 불법촬영 탐지기를 빌려주는 사업을 시행 중이다. 변형카메라의 유형을 숙지하는 것도 예방법으로 꼽힌다. 김 담당관은 “모든 유형의 변형카메라를 파악할 수 없지만 흔하게 구매할 수 있는 제품 유형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불법촬영 피해를 당했을 시에는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김 담당관은 “불법촬영 범죄는 증거물이 가장 중요하다”며 “타인의 휴대폰 등에서 불법촬영물을 발견했다면 원본을 확보하고 가해자가 증거를 없앨 것을 대비해 가해자 휴대폰에 불법촬영물이 있는 것 자체를 별도로 촬영해 증거로 확보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대부분의 성인 사이트와 SNS에는 불법촬영물, 미성년자 성착취물 등을 신고할 수 있는 삭제 요청 창구가 있다”며 “서핑 중 불법촬영물을 발견한다면 삭제를 요청하고 신속히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최근 불법촬영물의 구매·소지·시청이 불법이며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함에 따라 국내외 사이트의 신고 접수가 원활히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명백한 불법 영상임에도 삭제 요청을 받지 않는 사이트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이트의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협력해 국내에서 접속할 수 없도록 차단하고 있으며 법률 검토와 자문을 통해 지속적으로 삭제 요청을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방문해 피해 상담이나 일상 회복 등의 도움을 받아볼 수도 있다. 김 담당관은 “인천 디지털성범죄 예방대응센터를 비롯한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는 피해 상담부터 일상으로의 회복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기관”이라며 “범죄 피해는 피해자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게 아니라 가해자의 행위로 인한 문제이므로 피해를 겪었다면 망설이지 말고 각 지역에 있는 센터로 전화하거나 게시글을 남겨달라”고 당부했다.

 

글·사진_ 채효림 기자 
chrim7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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