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의 서재

 

융합전공학부 임병식 초빙교수
융합전공학부 임병식 초빙교수

 

서재랄 것까지는 없지만 제법 책이 많은 편입니다. 책 읽고 글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해온 까닭입니다. 어떤 책을 소개할까 고민하다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수년 전, 이 책을 읽고 전율했습니다. 지금까지 다섯 번 넘게 읽고 주변에도 권할 만큼 강렬했다는 뜻입니다.

책은 ‘쪽바리’나 ‘왜놈’으로 부르며 손가락질하는 대신 제대로 된 극일을 제안합니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막연한 적개심과 우월의식이 있습니다. 자기만족에 도취된 나머지 걸핏하면 핏대 세우고, 정치인들은 반일감정을 자극합니다. 과잉 민족주의는 극일은커녕 스스로 객관화를 방해합니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에 빠져 허우적댈 때 우리는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제쳤습니다. 책은 ‘그러면 된 것인지, 이제 한국은 일본을 극복한 것이냐’고 묻습니다.

책은 주관적이며 감상적인 일본 관찰기가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과 결과를 토대로 냉정하게 현상을 분석합니다. 조선과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출발선은 비슷했지만 결과는 딴 판입니다. 고종과 메이지 천황은 공교롭게 나이도, 집권 시기도 1~2년차로 엇비슷합니다. 한데 일본은 개항 57년 만에 조선을 집어 삼켰습니다. 또 중국과 러시아를 격파하고, 세계 최강 미국과도 4년 동안 맞장 떴습니다. 더 놀라운 건 잿더미를 딛고 19년 만에 도쿄 올림픽(1964년)을 개최했습니다. 나아가 40년 넘게 미국과 G2 자리를 지켰습니다.

일본은 지금도 세계 3위 경제 규모에다 제조업 강국입니다. 우리는 첨단소재 상당부분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일정 부분 기술독립에 성공했지만 벽은 여전합니다. 일본은 노벨상 과학 분야 수상자만 25명입니다. 평화상과 문학상까지 합하면 32명입니다. 노벨상이 한 나라의 지적 역량과 과학기술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한다면 일본과 한국은 32대 1입니다.

책은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어떻게 근대화에 성공했는지 추적합니다. 결론은 신분을 따지지 않은 인재육성이었습니다. 물론 힘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군국주의로 치달은 어두운 역사도 함께 조명합니다. 반면 조선은 변화 요구를 외면한 채 쇄국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저자는 야마구치 하기(萩)라는 곳을 다녀온 뒤 “일본에게 망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 마을에 망했다.”고 토로합니다. 하기(萩)라는 작은 마을에서 배출된 인물들은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를 주도했고 조선 침략에 앞장섰습니다. 요시다 쇼인이 연 서당 ‘쇼카손주쿠(松下村塾)’가 근거지입니다. 여기에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노우에 가오루, 미우라 고로, 데라우치 마사타케, 가쓰라 다로 등 기라성 같은 인물이 나왔습니다.

또 하나. 일본은 메이지유신 당시 대규모 해외 사절단을 유럽으로 보냈습니다. 가고시마 중앙역 ‘젊은 사쓰마의 군상’과 영국 런던대학 ‘조슈(長州) 파이브’ 기념비는 이런 흔적입니다. 150년 전, 조선은 꽁꽁 걸어 잠글 때 일본은 유학생을 보냈으니 놀라운 일입니다. 저자는 “일본 사무라이들은 상투를 자르고 근대화를 받아들인 반면 조선 선비들은 상투를 고집하며 세상과 거꾸로 갔다”고 갈파했습니다.  

책은 지금도 우리사회가 변화와 혁신을 거부한 채 정신승리에 도취된 건 아닌지 묻습니다. 파나소닉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1979년 사재 70억 엔을 들여 사설 교육기관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을 설립했습니다. 이곳을 거친 인재들은 일본사회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쇼카손주쿠’에서 ‘마쓰시타 정경숙’으로 이어지는 치밀한 인재양성 시스템이 일본의 저력이라는 진단입니다. 우리도 목소리만 높일 게 아니라 무섭게 냉정해야 합니다. 정신승리에서 벗어나 제대로 일본을 이기고 싶은 청춘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제목|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
저자| 이광훈
출판| 따뜻한 손
중앙도서관 청구기호| 911.059 이155ㅅ2


융합전공학부 임병식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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