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품은 화산섬, 우리나라 남단에 위치한 제주특별자치도(이하 제주)는 고유한 매력으로 많은 여행자에게 사랑받는 장소다. 지난 겨울 서울시립대신문은 제주에서 동계 취재를 진행했다. 본 기사에서는 과거로부터의 시간들이 무수히 쌓인 제주의 자연을 만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민한 두 기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다. -편집자주-

 

제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제주올레길(이하 올레길)’이다. ‘올레’는 좁은 골목을 의미하는 제주의 방언이다. 지난 2007년 서명숙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도보 여행 코스인 올레길을 개발한 후 올레길은 제주의 대표적 여행지로 자리 잡았다. 기자는 ‘최대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최소한의 디자인’을 비전으로 하는 올레길에서 제주의 자연을 마음껏 만끽하며 취재를 진행했다.

제주의 독특한 지질 환경을 감상하며 10코스를 걷다

올레길 10코스는 화순금모래해수욕장에서 시작해 산방산을 지나 하모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용머리 해안과 산방산을 중심으로 취재를 진행했다. 용머리 해안은 제주의 대표적인 지질공원 중 하나다. 용머리 화산체의 경계에서는 여러 방향으로 쌓인 지층의 단면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아뿔싸, 만조로 인해 용머리 해안은 출입이 금지된 상태였다. 멀리서 사진을 찍고 산방산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멀리서 바라본 용머리 해안. 지층의 단면을 관찰할 수 있다.
▲ 멀리서 바라본 용머리 해안. 지층의 단면을 관찰할 수 있다.

산방산은 설문대할망이 한라산 백록담 봉우리를 뽑아 던져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점성이 강한 조면암질 용암이 흘러나와 굳으며 형성된 산방산은 해발 395m의 거대한 종 모양을 띠고 있다. 산방산 중턱의 산방굴사까지 오르는 것을 목표로 등산을 시작했다. 산방산에는 풍화에 의해 암석에 형성된 구멍인 작은 풍화혈들이 열을 이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벌집 풍화가 다수 존재했다. 천천히 감상하며 걸었음에도 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도 산방굴사에 도착하니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산방굴사는 자연 굴에 불상을 모셔 도를 닦아온 곳이다. 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약수를 마시면 수명이 6년 연장된다는 전설이 유명하다. 불상 앞에 향을 피우며 취재를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산방산을 내려왔다.

우도 순환 버스를 타고 1-1코스를 지나다

우도를 한 바퀴 돌며 절경을 만끽할 수 있는 올레길 1-1코스를 즐기기 위해 해안도로 순환 버스 이용권을 구매했다. 기자가 탑승한 하얀 버스는 해안도로를 따라 27구간의 정류장에서 자유롭게 승하차할 수 있는 버스였다. 덕분에 여유롭게 올레길을 즐겼다.

버스 기사의 관광 해설을 듣고 전흘동 해녀 탈의장 정류소에서 하차했다. 덕분에 주황색 테왁을 물에 띄워두고 물질을 하는 해녀들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이후 다음 버스를 타고 하고수동 해변으로 향했다. 하고수동 해변은 부드럽고 하얀 모래들로 이뤄진 해변이다. 유명한 우도 땅콩 아이스크림과 함께 바다를 산책해봤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장소는 검멀레 해안이었다. 검멀레는 모래가 전부 검은색을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해안의 모래는 매우 깊어 발이 푹푹 빠졌고, 신발에 모래가 잔뜩 들어갔다. 해안 끝에는 파도의 침식작용에 깎여 형성된 해식동굴인 검멀레 동굴이 있었다. 가파른 바위를 넘어 동굴 안에 들어가 지층을 구경했다. 검멀레 해안을 마지막으로 천진항으로 돌아가 배를 타고 돌아왔다. 다음에 우도를 방문한다면 팝콘을 닮은 하얀 자갈이 깔린 서빈백사와 섬 속의 섬 비양도도 방문하고 싶다.

제주의 자연을 지키며 2코스를 걷다

올레길 2코스는 성산리 광치기 해변에서 출발해 온평포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성산이 보이는 광치기 해변에서부터 철새들이 앉아있는 내수면을 낀 들길, 공기 좋은 산길까지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달 12일에는 올레길 2코스에서 ‘클린올레’ 캠페인이 진행됐다. 이는 올레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환경 활동으로 매월 둘째, 셋째 주 토요일에 진행된다. 당일 프로그램 시작점인 광치기 해변에 등산복을 입은 참가자들 수십 명이 모였다. 참가자들과 쓰레기봉투, 집게, 차, 떡을 받아 함께 클린올레를 시작했다.
 

▲ 검멀레 해안의 검은 모래.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과 푸른 파도가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 검멀레 해안의 검은 모래.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과 푸른 파도가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올레길 2코스를 지나는 것은 가장 즐거운 경험이었다. 올레길은 리본으로 방향만 표시했을 뿐 자연 속에 사람들의 발자국이 만들어낸 흙길 그 자체였다. 어떤 길은 바위가 많아 손으로 짚어가며 걸어야 했고, 어떤 길은 내수면을 가로지르는 좁은 다리였으며, 어떤 길은 담장 사이에 난 좁은 틈이기도 했다. 철새 도래지도 구경하고 식산봉도 오르며 천혜의 자연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걷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참가자들과 함께 쓰레기를 주웠다. 둑방길에 잔뜩 쌓인 쓰레기를 줍고 있으니 인솔자들이 큰 쓰레기는 공공기관에 신고해야 한다며 손 닿는 곳의 쓰레기만 주우며 즐겁게 걸어달라고 공지했다. 인솔자들로 부터 올레길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산길과 흙길에는 쓰레기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아스팔트나 동네의 길에 많은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약 2시간이 지나 도착점인 클린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기자의 쓰레기봉투는 반 이상 차 있었다. 봉투를 제출하고 클린올레 리플릿에 도장을 받았다. 도장을 일정 개수 모으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 쓰레기봉투를 들고 올레길 2코스를 걷고 있는 참가자들. 나뭇가지에 걸린 리본이 코스를 안내해주고 있다.
▲ 쓰레기봉투를 들고 올레길 2코스를 걷고 있는 참가자들. 나뭇가지에 걸린 리본이 코스를 안내해주고 있다.

인솔자는 도장을 받으면 목적이 생겨 더욱 적극적으로 올레길을 걸을 수 있다고 말했다. 클린하우스에서 다른 참가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제주도민 박희철(62) 씨는 “지난 2020년부터 거의 매일 가족들과 함께 캠페인에 참여해왔다”고 이야기했다. “고향이 제주인데 외부인들에게 더러운 길을 보여주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길이 깨끗해지자 보람과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고 다수의 참가자와 함께 쓰레기를 줍는 것은 캠페인 홍보 효과가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제주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제주지역에서 수거된 해양 쓰레기는 약 2만 1천 톤이다. 이는 지난 2019년에 비해 약 82.7% 증가한 수치다. 아름다운 제주 환경의 이면에는 이런 안타까운 사정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 제주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자연을 지키는 올레길을 걸어보며 함께 쓰레기를 주워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_ 이은정 객원기자 bbongbbong01@uos.ac.kr

 

흔히 제주라고 하면 ‘청정제주’, 천혜의 자연이 가득한 섬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이런 제주의 환경을 지키기 위한, 누군가의 삶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관광지 제주 너머의 이야기를 살펴봤다.

‘쓰레기 섬’이 된 천혜의 섬 제주

제주에는 ‘삼다도(三多島)’라는 별칭이 있다. 바람과 여자, 돌이 많은 섬이라는 의미다. 그렇지만 제주 곳곳을 돌아보면서 이제는 삼다도의 의미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정자연으로 유명하던 제주가 ‘쓰레기 섬’이 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지를 덮친 쓰레기 대란에서 제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더 심각했다. 지난 2019년 기준 제주의 1인당 일평균 쓰레기 배출량은 전국 평균(1.1kg)보다 63% 많은 1.8kg를 기록했다. 날로 커지는 관광산업, 난개발 등의 이유로 고립된 섬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쓰레기가 나오고 있었다.

제주에는 수중 및 해안 정화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있다.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다이버, 서퍼들이 해양쓰레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만든 단체다. 이호테우 해변에서 서핑을 배우던 단 두 시간 만에 기자는 그들의 활동 계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푸른 바다 풍경에 넋을 놓고 있던 와중에 본 비닐 쓰레기가 뇌리에 깊게 박혔다.

그러다 직접 해양 정화 활동에 참여해보고 싶어 ‘디프다제주’에서 운영하는 ‘봉그깅 마시깅’을 신청했다. 봉그깅 마시깅은 프리다이빙을 통해서 제주의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는 디프다제주의 해양쓰레기 수거 캠페인이다. 여기서 봉그깅은 ‘줍다’의 제주 방언인 ‘봉그다’와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인 ‘플로깅’의 합성어다. 연계상점에서 집게와 마대를 받아 지정된 장소에서 해양쓰레기를 주워 마대를 채우면 5천원 상당의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캠페인이다. 
 

▲ 옹포항 근처에 쌓인 해양 쓰레기. 플라스틱 페트병과 신발, 어업 폐기물 등 다양한 쓰레기가 한데 얽혀 있었다.
▲ 옹포항 근처에 쌓인 해양 쓰레기. 플라스틱 페트병과 신발, 어업 폐기물 등 다양한 쓰레기가 한데 얽혀 있었다.

기자는 옹포항 근처 해양쓰레기를 주우러 갔다. 옹포항에 도착하기 전에도 쓰레기가 많았지만 해양쓰레기는 염분이 많아 일반쓰레기와 따로 모아야 하기에 애써 지나쳤다. 도착하자 여기가 동네 쓰레기장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쓰레기가 쌓여있었다. 플라스틱병이나 통발 같은 어업 쓰레기, 스티로폼은 마치 해안가의 모래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두 시간가량 쓰레기를 주운 기자는 카페 사장에게 받은 마대 두 개를 가득 채웠다. 신발 네 켤레, 현무암 사이에 끼인 유리병 조각들, 알 수 없는 외국어가 적힌 비닐 등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싶은 다양한 쓰레기들이 마대를 채웠다. 

봉그깅을 마치고 지정된 장소로 마대를 배출하러 가는 길에 들었던 감정은 뿌듯함보다도 다 줍지 못한 쓰레기들을 두고 가야 한다는 부채감이 더 컸다. 생태계의 4법칙 중에는 ‘모든 것은 어디론가로 가야만 한다’는 법칙이 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은 당장 눈앞에서는 사라질지 몰라도 생태계 어디론가로 가야만 한다. 이 바다에 있는 쓰레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물살이에게로, 그리고 인간에게로 다시 돌아오진 않을지 그 종착지가 궁금해졌다. 

까미와 평화로 7.6km를 걷다

지난 1월 KBS 대하 사극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에서 학대를 당해 사망한 말 ‘까미’(예명)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짧은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200kg이 넘는 말의 발목을 묶은 채 목이 꺾여 죽게 만든 것이다. 까미의 죽음은 ‘동물자유연대’의 문제 제기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까미가 퇴역 경주마 출신이었다는 점이 밝혀지며 퇴역 경주마의 복지체계 구축의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지난 12일 기자는 ‘제주비건’과 동물자유연대가 진행하는 ‘도축장 가는 길’ 네 번째 행진에 참여했다. 이날 행진에서는 까미를 포함한 퇴역 경주마들을 위한 추모제가 함께 열렸다. 추모제는 제주 경마장  렛츠런파크’ 앞에서 시작됐다. 경마장을 찾은 사람들이 하나 둘 입구로 들어가던 토요일 아침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까미와 그동안 희생된 퇴역 경주마를 위해 묵념했다. 경마장에서 도축장까지의 도로명은 평화로였다. ‘평화로’라는 지명과는 이질적인 일을 추모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을 보자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퇴역 경주마의 삶 보장을 위한 대한민국 행동 ‘도축장 가는 길’ 4차 행진. 이 날 행진에서는 드라마 촬영중 사망한 퇴역경주마 까미(예명)의 추모제가 진행됐다. 까미의 영정사진을 들고 경마장에서 도축장까지 추모 행진이 이뤄졌다.
▲ 퇴역 경주마의 삶 보장을 위한 대한민국 행동 ‘도축장 가는 길’ 4차 행진. 이 날 행진에서는 드라마 촬영중 사망한 퇴역경주마 까미(예명)의 추모제가 진행됐다. 까미의 영정사진을 들고 경마장에서 도축장까지 추모 행진이 이뤄졌다.

길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목장에 풀어져 있는 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어린 말들은 우리를 보고 조금씩 다가왔다. 마냥 해맑아 보이는 말들이 반가우면서도 그들의 미래를 알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기자는 앞뒤로 ‘나는 로얄 리버입니다’, ‘나는 살고 싶다’고 적힌 조끼를 입고 까미의 영정 사진을 들었다. 그렇게 7.6km의 도축장 가는 길 행진은 전국 최대 규모의 도축장이라는 제주 도축장에서 끝이 났다. 차를 타면 10분도 걸리지 않는 이 거리 안에 말들의 삶과 죽음이 모두 담겨있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제주에서 ‘뚜벅이’로 취재를 다니며 가장 불편했던 점 중 하나는 긴 버스 배차 시간이었다. 그런데 제주 경마공원인 렛츠런파크 앞에는 버스가 10분마다 한 대씩 지나다녔다. 행진하는 길목에는 신선한 고기를 먹기 위해 도축장 근처 정육식당으로 향하는 차들로 붐볐다. 맛있는 것을 위한 당연한 수요, 수요를 위한 당연한 공급일 수 있지만 행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보인 이 광경들이 기자에게는 기이하게 다가왔다. 

지난 23일 까미가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퇴역한 경주마 ‘마리아주’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주마로 활동하던 1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마리아주는 세 번의 경주에 나갔고 총 54번의 치료를 받았다. 말의 수명은 25~30년 정도라고 한다. 그렇지만 경주마들은 인간의 유희를 위해 평생을 살다 수명의 3분의 1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까미와 같은 퇴역마들이 햇빛 하나 들지 않는 마방에서 홀로 아픔에 고통받고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학대받고 죽어간 까미의 본명이 이제야 알려진 것도 말 이력제가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간의 유희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지속가능한 삶에 관해서도 사회적인 관심과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글·사진_ 신유정 객원기자 tlsdbwjd0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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