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해 편의점을 비롯한 각종 매장들은 행사 상품 제작과 진열에 열을 올렸다. 지난달 14일 CU는 밸런타인데이 행사 상품 매출이 지난해 대비 35.9% 증가했다고 밝혔다. 오늘날 밸런타인데이는 연인과 친구처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자리 잡았다. 
 

밸런타인데이와 데이마케팅

데이마케팅은 기념일을 이용한 마케팅이 우후죽순 늘어나며 생긴 용어로 특정 기념일을 이용해 상품 판매를 촉진하는 마케팅 방식이다. 데이마케팅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사례로는 밸런타인데이가 있다. 밸런타인데이는 로마 시대 발렌티노 신부를 기리기 위한 날에서 파생된 기념일이다. 발렌티노 신부는 당시 로마에서 불법이었던 연인 간 결혼을 허락하고 주례를 서다 269년 2월 14일 처형당했다. 밸런타인데이는 19세기 영국에서 발렌티노 신부를 기리기 위해 연인 간 초콜릿을 주고받는 관습에서 시작해 일본을 거쳐 오늘날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변화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상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특별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우리나라만의 밸런타인데이 문화가 됐다.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김종흠 교수는 “밸런타인데이 때 초콜릿을 받지 못한 남성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화이트데이가 만들어졌고 아무것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블랙데이가 만들어졌다”며 밸런타인데이가 데이마케팅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이유를 설명했다. 

각양각색 기념일

밸런타인데이 외에도 △다이어리데이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로즈데이 △키스데이 △실버데이 △그린데이 △포토데이 △와인데이 △무비데이 △허그데이 등 매월 14일에 다양한 기념일이 존재하나 대부분 유래가 불분명하다. 매월 14일에 기념일이 존재하는 이유에 관해 묻자 김종흠 교수는 “매월 14일 기념일들이 발렌타인데이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으나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라며 “특별하지 않은 날에 의미를 부여해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마케팅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각 기념일 중에서 그나마 기원을 추측할 수 있는 것으로는 화이트데이, 와인데이, 허그데이가 있다. 3월 14일 화이트데이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사탕을 선물하며 마음을 전하는 날이다. 화이트데이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만 기념하는 날이다. 화이트데이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가장 유력한 가설은 1980년 일본 제과업체 모리나가가 진행한 사랑 고백 캠페인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지역의 축제에서 청년이 추위로 사망한 후 투명한 색의 화이트 보드카를 주고 받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가설은 독일의 사탕 마을에서 가까운 지인들끼리 사탕을 한 줌씩 챙겨주는 문화에서 영향 받았다는 것이다. 

10월 14일 와인데이는 연인과 함께 포도주를 마시는 날이다. 와인데이의 유래로 추정되는 가설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고대 그리스에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매년 10월 14일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유럽에서 늦여름에서 가을까지 포도 수확을 마친 후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10월에 축제를 열었다는 것이다. 

12월 14일 허그데이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안아주는 날이다. 지난 2006년 프리 허그 단체인 ‘프리 허그 코리아’가 매월 11일에 프리허그 캠페인을 진행한 것에서 기원했다. 이후 캠페인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포옹이 필요한 겨울인 12월에 허그데이가 자리 잡았다.

상술과 의미 전달 사이

일각에서는 대부분의 기념일이 데이마케팅에 이용되는 상술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박성배(기계 20) 씨는 “데이마케팅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대중의 심리를 이용하는 속임수”라며 “불필요한 기념일은 개개인에게 지인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더할 뿐”이라고 전했다. 정유진(화공 20) 씨는 “기념일 마케팅의 일환으로 늘어난 각종 기념일들은 처음 들어보거나 의미도 유래도 없는 날들이 대부분”이라며 “상업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과정에서 늘어난 기념일 때문에 정작 중요한 기념일들이 잊히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종흠 교수는 “필요나 욕구에 의해 소비하는 실용적 소비와 달리 데이마케팅은 상징적 소비로서의 의미가 있다”며 “선물을 구매해 주고받는 것은 단순한 소비행위지만 연인 간 사랑의 의미가 전달된다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질에서 행복을 찾지만 물질적 행복은 인간이 누리는 행복의 일부분일 뿐”이라며 “데이마케팅을 단순히 상업적 수단으로 이용하기보다는 평범한 날에 의미를 부여해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선물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의 여부를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산물 데이마케팅

농산물 분야에서도 데이마케팅이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 예전부터 오곡밥을 짓고 부럼을 깨 먹는 정월대보름이나 달래와 같은 농산물을 먹는 입춘처럼 데이마케팅이라는 용어가 탄생하지 않았을 때부터 농산물 소비를 독려하는 명절 문화가 존재했다. 농산물과 관련한 최초의 지정 기념일은 사과데이다. 2002년 학교폭력을 예방하고자 사과가 많이 출하되는 10월에 둘(2)이 사(4)과를 선물하자는 의미로 10월 24일이 사과데이로 선정돼 사과 소비에 기여하고 있다. 

2003년에는 구제역으로 침체한 돼지고기 소비 촉진을 위해 3월 3일 삼겹살데이가 생겼다. 이후 △쌀 △콩 △두유 △인삼 △복숭아 △포도 등을 비롯한 농축산물 기념일이 소비 위축을 극복하고 생산자의 노고를 생각하자는 차원에서 활성화됐다. 주로 농산물을 소리 나는 대로 읽거나 한자의 의미를 풀어 쓰는 등의 방법으로 날짜가 지정된다. 쌀의 날은 한자 米(미)를 풀어 쓰면 八十八(팔십팔)이 되므로 8월 18일이 됐다. 쌀 한 톨이 만들어지는 데 농민의 손길이 88번 필요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우데이는 한미 FTA에 따라 미국산 수입 쇠고기 개방이 본격화된 후 한우 생산 농가를 돕기 위해 지정됐다. 한우가 으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며 소의 한자어인 牛(우)에 사용되는 一(일)을 세 번 사용해 11월 1일이 됐다.

가장 효과가 좋았던 기념일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에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이종순 원장은 “마케팅의 관점에서는 직접적인 매출과 연관이 큰 삼겹살데이가 효과가 좋았던 것으로 판단되지만 매출로만 성과를 가늠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구제역으로 피해를 입은 양돈 농가를 돕기 위한 행사이기에 매출만을 성과의 지표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에 의미를 담은 기념일을 활성화하는 것은 어려운 농업인들을 돕는 것은 물론 농업을 보존하고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일”이라며 “기념일을 통해 소비자의 관심과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고 전했다.

민선홍(국문 17) 씨는 “데이마케팅이 소비 창출을 위한 마케팅 수단이라고 해도 기념일을 통해 소비자가 특별한 추억을 만든다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데이마케팅에서 파생된 다양한 기념일은 이미 기업 이익을 위한 마케팅을 넘어 대중의 일상 속 문화로 자리 잡았다. 기념일을 통해 특별한 추억을 만들되 현명한 소비를 지향해야 하는 시점이다.


안가현 기자 worldisred0528@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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