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사람 - 이나은 작가(국관 11)

이번호 ‘시대, 사람’에서는 성공리에 방영을 마친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을 집필한 국제관계학과 11학번 이나은 동문을 인터뷰했다. 이 작가의 드라마에는 청춘들의 고민과 사랑은 물론 성장까지 담겨있어 방영 당시 2030세대로부터 큰 공감을 샀다. 드라마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이 작가가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까지 들어봤다. -편집자주-

드라마가 20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쓰는 이야기들은 장르물이 아니다. 전부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아무래도 이런 일상물은 인물들의 감정을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나의 경험을 많이 반영했다. 우리대학 안에서 연애하던 모습들도 담겨있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경험을 한 나이대의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인물들의 현실적인 대사가 화제였다.
영감은 어디서 받나

실제 나눴던 대화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후회되는 부분들을 반영했다. 대본을 쓰다 보면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기억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말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대사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이 더 현실적으로 느꼈던 게 아닐까 싶다.
 
집필한 드라마들에 우리대학 학생들이 공감할 만한
요소들을 넣었다고 들었다

대표적으로는 [그 해 우리는]에 등장하는 ‘휘영동’이라는 지명이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휘경동’에서 따왔다. 촬영도 우리대학에서 하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불발됐다. 사실 [그 해 우리는]에서 주인공들의 대학시절 이야기는 대부분 내 경험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장면마다 염두에 두고 쓴 우리대학 장소들이 있었다. 끝내 촬영하지 못하게 돼 아쉬웠다. [전지적 짝사랑 시점]은 우리대학에서 한번 촬영을 했었다. 아마 학생들은 알아볼 것이다.
 
웹 드라마 작가로 시작해 TV 드라마까지 집필했다.
두 콘텐츠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길이에 차이가 있다. 웹 드라마는 플랫폼 특성상 짧고 TV 드라마는 보통 60분짜리가 16부작으로 편성돼 호흡이 길다. 쓰다 보면 많은 것이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웹 드라마에서는 하나의 사건과 한 가지 감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그 해 우리는] 같은 경우에는 하나의 감정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개개인의 성장을 담아야 했다. 이외에 다른 인물들의 관계성도 고려하며 더 다양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나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 해 우리는]의 주인공들은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거쳐
직장인으로 성장한다. 작가님의 그 시절들이 궁금하다

내가 가진 여러 모습들을 극 중 인물들에게 나눠줬다. 인물마다 나의 모습이 조금씩은 묻어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고등학생 때는 여고에 다녔기 때문에 드라마에는 어느 정도 판타지가 가미됐다. 실제 경험이 가장 많이 담긴 건 인물들의 대학 시절이다. 그리고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곳이 스타트업이었던 경험을 살려 여자 주인공 ‘국연수’를 스타트업 회사 팀장으로 설정했다. 남자 주인공 ‘최웅에게는 현재 모습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최웅이 아티스트로서 안경을 쓰고 혼자 작업하는 모습은 지금의 나와 닮았다.
 
작가님이 뽑는 명대사나 명장면은

극 중 연수가 잠든 할머니를 안고 ‘나는 내가 늘 혼자인 줄 알았는데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며 ‘내 인생을 초라하게 만든 건 나 하나였나 봐’라고 말한다. 그 대사는 청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자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20대 땐 힘들고 암울했던 시간들을 늘 혼자 견뎌온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항상 옆에 누군가가 있었더라. 한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는데 스스로를 너무 외롭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청춘이 완성되지 않나. 그걸 연수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경험 외에 영감을 주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기존에는 경험과 창작만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해 우리는]에는 설정의 모티브가 존재한다. 이야기 소재나 스토리 흐름은 모두 정해지고 시작점에 대한 고민만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EBS 다큐멘터리 [꼴찌가 1등처럼 살아보기]를 보게 됐고 평소에도 다큐멘터리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여기에서 출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작업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현재 2030세대라면 모두가 학창 시절 즐겨 보지 않았나. 그래서 ‘입 닫고 빵이나 먹어’, ‘저 인간의 진단명은 뭘까’ 등의 코믹한 대사들을 [무한도전]에서 가져왔고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진 시청자들이 거기에서 재미를 느꼈으면 했다.
 

국제관계학과 출신인데 드라마 작가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 시절 학교생활을 할 때 학업에 집중하기보다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찾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렇게 찾다 보니 내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짧은 글을 쓸 수 있는 직업이 광고 카피라이터라고 생각해서 광고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들어가 일을 해보기도 했다. 나중에는 좀 더 길고 깊이 있는 글에 욕심이 생기더라. 방송과 드라마도 좋아해서 방송 제작사에서도 인턴으로 일했다. 인턴으로서의 경험을 다양하게 쌓은 게 많은 도움이 됐다. 그렇게 인턴을 하던 시기에 마침 웹 콘텐츠가 활성화됐고 그때 스타트업을 시작하신 선배가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셨다. 그때부터 1분, 5분, 10분, 30분짜리 대본을 쓰다가 이렇게 60분짜리까지 쓰게 됐다. 처음부터 드라마 작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일이라면 훗날 또 다른 직업에 도전해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으레 겪는 과정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작가 지망생 친구들이 그 부분에 대해 많이 물어본다.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보통 떠올리는 루트는 확고하다. 보조작가로 일하다가 메인작가가 된다거나 공모전에 당선이 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웹이 부흥하면서 이 업계에도 많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사실 요즘 TV 드라마 작가가 많이 부족하다. 그러던 시기에 마침 운이 좋게도 웹 드라마를 하고 있었고 그렇게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은 정해진 루트가 많이 무의미해진 것 같다. 오히려 다양한 기회가 많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항상 글을 쓰면서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드린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기억에 남는 활동이나 수업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오히려 전공 수업보다 교양 수업이 내게 많은 영향을 줬던 것 같다. 교양은 듣고 싶은 수업을 찾아서 신청하는 방식이지 않나. 당시에는 크게 도움이 됐는지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인간관계의 이해]라는 과목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성향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인간관계를 이해하게 됐다. 그런 교양 수업을 더 많이 들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흥미를 느끼는 주제의 수업을 꼭 들어보기를 후배들에게 권한다. 동아리도 정말 많이 했고 학생회 활동이나 대외활동도 열심히 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특정한 것 하나가 나에게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씩 해보면서 내 취향에 맞는 게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대학생일 때만 할 수 있는 경험에는 무엇이 있나

CC(캠퍼스 커플)를 꼭 해봤으면 좋겠다. 흑역사가 된다는 말도 있지만 그 흑역사가 나머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정말 좋은 원동력이 된다. 조금 부끄럽고 창피한 기억일지라도 그것이 대학 시절 추억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하더라. 또 과거를 떠올려보면 혼자 한 행동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누군가와 함께 했던 일들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지 않나. 그래서 연애도 연애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활동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 혼자만의 시간도 좋지만 어차피 사회에 나오면 정말 많은 일들을 혼자 하게 돼있다. 그러니 학교에 다닐 때는 힘이 들더라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학교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도 재미있게 했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인터뷰에서는 ‘사랑하세요, 연애하세요’라는 말을 많이 했다. 물론 이 또한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지만 우리대학은 타대학에 비해 등록금 부담이 덜한 편이지 않나. 그 부분이 내게 많은 자유를 줬다고 생각한다. 실수나 실패를 해도 이번 학기를 지나 다음 학기의 기회가 있고 추가 학기를 다니는 데도 부담이 없다는 점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줬다. 그래서 이것저것 부딪혀 볼 수 있었다. 인간관계에서의 실수나 학점에서 오는 절망감 같은 것을 잘 극복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니 후배들에게도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뭐든 시도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뭐든 시도하되 실패해도 된다. 꼭 기억해 주길 바란다.


글·사진_ 오유빈 기자 oyubin99@uos.ac.kr
드라마 관련 사진제공_ 이나은 작가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