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시대 경농관

▲ 신축 당시 경농관의 모습
▲ 신축 당시 경농관의 모습
▲ 청량리 교사에서 전농동 교사로 이사하며 책걸상을 나르는 학생들
▲ 청량리 교사에서 전농동 교사로 이사하며 책걸상을 나르는 학생들

우리대학은 1918년 개교한 경성공립농업학교(이하 경농)를 기원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개교 당시에는 전농동 부지에 교사가 위치해 있지 않았다. 경농은 경기도 종묘장 일대에서 임시 개교한 지 두 달 후 현재 청량고등학교 부지의 교사로 이전했다. 이후 교세가 커지며 교사의 공간이 부족해지자 1937년 현재의 전농동 부지로 대학을 이전하게 된다. 이때 경농의 본관으로 지어진 건물이 지금의 경농관이다. 경농관은 일제 강점기 전형적인 학교 건축양식에 따라 빨간 벽돌과 목조 트러스 지붕을 가진 좌우대칭의 건물로 지어졌다.

해방 후 1974년 전농관이 대학 본부로 신축되면서 경농관은 전시실, 수장고 그리고 서울학 연구소와 박물관으로 사용됐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경농관은 점차 변형되고 낡아갔다. 빨간 벽돌 외벽은 시멘트와 모래를 반죽한 모르타르로 뒤덮여 본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천정 가설물 과다 설치에 목조 트러스 부식이 더해져 붕괴 위험이 커졌고 결국 지난 2012년 시행된 정밀안전점검에서 즉각 건물 사용을 금지해야 하는 E등급을 받았다.

이후 경농관 거취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경농관을 철거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단층 건물인 경농관을 철거한 후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면 캠퍼스 공간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경농 시대를 상징하는 경농관을 철거해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경농관 철거에 대한 학교 구성원의 반대 목소리는 격렬했다. 경농관은 서울시 등록문화재에 등록될 만큼 일제 시기 근대 건축의 사료로서의 가치가 컸다. 경농 시절 경농관을 지은 사람들과 경농에서 공부한 학생의 다수가 식민지 조선인이었던 만큼 경농관을 일제의 잔재로만 보는 시각은 부적절하다는 관점도 있었다.

결국 우리대학은 경농관 보수를 결정했다. 초기에는 구조 안전성과 단열 성능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 공사 중 건축학부 이충기 교수의 건의안이 채택되면서 단순 보수에서 리모델링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이 교수의 지휘하에 경농관은 빨간 벽돌을 되찾았고, 천장을 제거함으로써 층고를 높여 본연의 목조 트러스가 드러나도록 했다. 이렇듯 복원에 가까운 리모델링을 통해 경농관은 다시 태어났다. 

경농관 리모델링의 성공은 이충기 교수의 우리대학 캠퍼스 계획에도 계승돼 중앙도서관과 대학본부 그리고 100주년기념관이 빨간 벽돌 외벽을 갖게 됐다. 하나씩 쌓으며 만들어지는 벽돌 건물처럼 지난 100년의 세월만큼 앞으로 쌓일 우리대학의 역사를 기대해보자.


최윤상 기자 uoschoi@uos.ac.kr
사진제공_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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