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혐오 정서는 뭉치기 쉽다. 아주 오래전부터 연대와 화합이 그렇게 강조된 이유는 그만큼 실현해 내기 어렵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매몰차게 싫어하고 죽도록 미워하는 마음은 세상을 병들게 한다. 그 산물이 현대이고 그중에서도 지금 이 시점이라는 게 모두를 슬프게 만든다. 그러므로 사전적 의미가 아닌 사회적 의미를 기반으로 우리는 연대와 화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라온 환경에 따라 생각은 다르기 마련이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우선순위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점을 받아들이고 조금만 이해하려 노력하면 평화에 한발짝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준비돼야 할 전제 조건이 있다. 모든 구성원의 생각 밑바탕에 약자를 향한 배려가 깔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동권 보장 시위를 하는 장애인의 간절함과 시위로 인해 목적지에 제때 도착하지 못해 느끼는 비장애인의 불편함을 같은 선상에 둘 수는 없다. 손님에게 조용한 식사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이유로 어린이를 내치는 노키즈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은 어린이 손님의 마음 중 우선돼야 할 것은 당연히 후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다 보면 많은 것을 간과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언제 어디서든 강자와 약자의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아동혐오을 일삼던 이들이 나이들어 그때 그 어린이에게 노인혐오를 당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지금부터 변화를 꾀해야 한다. 비장애인이라서 가질 수 있는 거만한 마음은 최저시급이라도 보전하기 위해 애쓰는 피고용인의 불안으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혐오하고 타자화하던 누군가는 다시 어디선가 외국인이 돼 인종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로부터 진보 진영의 대표 집단으로 꼽히던 대학생이, 언제든 약자가 되기도 강자가 되기도 하는 바로 그 대학생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미 젠더 갈등은 물론 ‘틀딱’과 ‘잼민이’라는 비하 단어를 통해 타 세대까지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20대가 이제는 변화의 길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평화의 노래 ‘Imagine’ 속 ‘모든 인간이 서로 도우며 산다고 상상해 보라’는 존 레논의 말처럼 아마도 그 길에는 혐오 아닌 선량함이 가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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