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브라운

지난해 12월에는 유독 충격적인 유기아동 소식이 많이 전해졌다. 경기도 오산에서는 의류 수거함에서 탯줄도 자르지 않은 태아가 발견됐으며 강원도 바닷가 공영화장실에도 신생아가 버려져 있었다. 신생아 유기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베이비 박스’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친모가 출생신고를 해야만 입양이 가능한 『입양특례법』으로 인해 베이비 박스의 아이들은 고아로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다수다.

김설야 작가는 “매스컴을 통해 유기아동 문제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며 모두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 꼽았다. 이런 그의 주관은 저서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베이비 브라운>은 주인공 ‘로이’의 어릴 적 이름으로 말 그대로 갈색 머리를 가진 아이라는 뜻이다. 도대체 부모가 누구길래 이렇게 형편없는 이름을 지어줬을까.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할 수 없다. 이름의 주인인 로이조차 부모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에 피임약이 시판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 5월. 그 이전까지 몇 명의 베이비 블론디, 베이비 블랙이 버려졌을지 모른다. 과거 미국에서 일어나던 아동 유기는 오늘날 한국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책은 독자들에게 로이를 통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유기아동 문제를 꼬집고 함께 고민해 볼 것을 제안한다.

16살 개명 전까지 브라운으로 살아오던 로이의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보육원을 밥 먹듯이 탈출하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던 로이는 입양돼서도 위탁모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주변인의 신고로 파양되고 다시 고아가 된 그는 소년원에 들어갔으나 성폭력에 시달려 도망쳐 나왔다. 갱단에 들어가 익힌 도둑질을 하며 살다가 리조트를 운영하는 시각장애인 할머니에게 거둬져 일을 배우고 비로소 정직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싸우는 어른들, 부모 잃는 아이들

전쟁 역시 유기아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에서 평생 지속돼 온 문제다. 최근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은 물론 아프리카 대륙 전역과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에서까지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전쟁은 로이의 삶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악재로 작용했다. 리조트에서 일을 배우며 안정을 찾아가던 그에게 1960년 전쟁에 참여하라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전쟁이 발발하면 사형수 또는 고아가 1순위 징병 대상이었다. 이들이 죽어도 찾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참전 역시도 결국 유기아동이라서 겪게 된 불행인 셈이다.

지옥 같은 전쟁통에서 로이는 아내와 함께 폭격으로 어머니를 잃은 아기를 돌본 것을 시초로 아동 위탁을 실천했다. 전쟁 구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기구인 국제적십자사와 협력해 영국으로 입양 보내는 데 힘썼다. 잠시나마 고아들의 부모가 돼 주고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는 과정에서 버려진 아기였던 그가 가진 상처도 조금씩 아물지 않았을까.

김설야 작가는 과거와 미래, 언제 어디서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의 집필을 갈망해왔다. 특히 국가보훈처 산하 공법단체인 월남전 참전자회 연설문 작성가로 활동하며 마주한 전쟁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다루고 싶었다. 그러던 중 딸을 가르치는 원어민 선생 ‘로이’의 생애를 접하고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그림이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46년생, 이미 백발 할아버지가 돼 버린 로이가 던져주는 이야기는 군데군데 구멍 나 있었지만 김설야 작가의 세밀한 설정을 통해 기워질 수 있었다. 결국 베이비 브라운은 미국인 ‘로이’의 이야기지만 모두의 주변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삶의 이야기로 세상에 나왔다. 미혼모, 전쟁, 유기 아동, 아동학대, 소년원 등 해결해야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의 총집합체다. 

김 작가가 뒤늦게 작가가 됐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한 글을 쓰게 된 것은 공부의 힘이다. 지난 2017년 9월 우리대학 교육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역사교육을 전공해 지난해 2월 21일 졸업 후 소설 집필에 전념했다. 김설야 작가는 “우리대학 대학원에 다니며 한국 역사를 넘어 세계의 역사에 시선이 닿게 됐다”라며 “두메산골 태생 할머니가 먼 나라 미국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가 된 것은 끊임없는 배움 덕”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기자를 배웅하면서까지도 눈을 빛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던 김 작가의 차기작에는 또 어떤 사회 문제가 담겨있을지 주목해 주길 바란다.


글·사진_ 채효림 기자 chrim7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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