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천하의 대세란 오랫동안 나뉘면 반드시 합하게 되고 오랫동안 합쳐져 있다면 반드시 나뉘게 된다. 한나라 유방이 대륙을 통일한 지 400년, 노란 물결이 천하를 뒤덮자 황제는 꼭두각시로 전락했고 세상은 다시 분열하며 군웅할거 시대가 열렸다. 혼돈의 시기 위나라 조조와 오나라 손권 그리고 촉나라 유비는 천하를 삼분해 통일을 위해 혈전을 벌였지만 그 누구도 승리하지 못했다.

▲ 삼국지 속 도원결의를 묘사한 여러 매체들. 시계 방향으로 △영국 게임 ‘토탈워: 삼국’ △한국 만화 『고우영 삼국지』 △중국 드라마 [삼국] △명나라 시기 ‘삼국지 연의 삽화’ (출처: [토탈워: 삼국 트레일러] 캡쳐, 『고우영 삼국지 1권』, [삼국] 캡쳐, 『金陵萬卷樓刊本』)
▲ 삼국지 속 도원결의를 묘사한 여러 매체들. 시계 방향으로 △영국 게임 ‘토탈워: 삼국’ △한국 만화 『고우영 삼국지』 △중국 드라마 [삼국] △명나라 시기 ‘삼국지 연의 삽화’ (출처: [토탈워: 삼국 트레일러] 캡쳐, 『고우영 삼국지 1권』, [삼국] 캡쳐, 『金陵萬卷樓刊本』)

최초의 삼국지는 역사서, 진수의 『삼국지』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삼국시대는 후한 황건적의 난 이후부터 서진이 삼국을 통일할 때까지 약 100년의 분열기다. 첫 번째로 등장한 삼국지는 역사서 『삼국지』다. 소설 『삼국지연의』를 통해 삼국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삼국지』를 접하면 당황하곤 한다. 『삼국지』에서는 도원결의부터 조조의 여백사 살인사건 그리고 독화살을 맞은 관우를 치료한 화타까지 유명한 일화들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임용한 소장은 “삼국시대 직후부터 삼국시대에 관한 많은 저술이 있었지만 과장되고 신뢰성이 부족했다”며 “이에 비해 『삼국지』 저자 진수는 비교적 조심스럽게 사료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진수는 삼국을 통일한 서진도 그 전신인 위나라 출신도 아닌 패전국 촉나라 사람이지만 서진은 『삼국지』를 삼국시대를 다룬 정사로 채택했다. 임 소장은 “촉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촉나라 인물인 진수의 『삼국지』가 선택됐다는 설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임 소장은 『삼국지』의 서술적 특징을 언급하며 “중국의 24사 정사 대부분이 유가적 사관으로 쓰였지만 『삼국지』는 매우 냉혹한 서술을 했다”며 “진수가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삼국지』가 정사로 채택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것도 가짜였어? 나관중과 『삼국지연의』

『삼국지』는 짧은 시기를 다루고 있고 남아있는 촉과 오의 사료가 적어 간결하다. 기록 사이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기 위해 『삼국지』는 수많은 사람에 의해 재창조됐다. 먼저 429년 남조 송나라의 문관 배송지가 황제의 명을 받아 150권 이상의 역사서를 참고해 『삼국지』에 주석을 단 『삼국지주』를 완성했다. 배송지는 진수의 방식과 반대로 역사가 본인이 신뢰할 수 없는 기록까지 상세하게 덧붙였다. 임용한 소장은 “『삼국지주』부터 유명한 일화가 등장하기 시작해 소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삼국지주』는 민간에 퍼지기 시작하며 이야기꾼과 연극이 생겨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과정에서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가 새로 창작되고 덧붙여지기도 했지만 문자화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았다. 현존하는 최초의 삼국지 소설은 원나라 시대 삼국지 공연 대본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삼국지평화』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인 『삼국지연의』의 원류로 여겨진다.

『삼국지연의』는 원명 교체기에 살았던 문인인 나관중이 『삼국지주』, 『삼국지평화』 그리고 여러 역사서와 민간설화를 종합해 쓴 75만 자에 이르는 역사소설이다. 나관중은 사실 사이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넣어 400명이 넘는 인물들에 개성 넘치는 특징을 부여했다. 무장에게는 고유 무기를 설정했는데 잘 알려진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포함해 여포의 방천화극과 장비의 장팔사모 역시 나관중의 창작으로 전해진다. 이 외에도 『삼국지연의』에서 황충은 백발의 노인이자 최고의 명궁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어떤 역사서에도 황충은 유능한 장군으로 묘사될 뿐 나이와 활쏘기 실력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소설가로서 나관중에 대해 임 소장은 “삼국지의 놀라운 설정을 만든 뛰어난 작가”라며 “특히 대중들이 좋아하는 인물을 선정하고 창조한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평가했다. 이어 “어떤 창작물이든 반드시 『삼국지연의』의 등장인물을 오마주한 인물이 등장한다”며 “그만큼 삼국지는 대중들이 원하는 인물상을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후 17세기 청나라 모종강은 『삼국지연의』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모종강 삼국연의』을 썼고 이는 현대 삼국지 콘텐츠의 바탕이 됐다.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삼국지 판본인 『이문열 삼국지』와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또한 『모종강 삼국연의』의 영향을 받았다. 

최고의 역사 콘텐츠 삼국지

소설에서 출발한 삼국지는 만화와 영상콘텐츠를 거쳐 게임까지 다양한 창작물로 변주됐고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최근 삼국지는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지난 2019년 영국의 게임사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토탈워: 삼국’을 발매했다. 일주일 만에 세계적으로 100만 장 이상을 판매하면서 삼국지의 인기가 동아시아권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교과서는 삼국시대를 중국의 짧은 분열기로 간단하게 소개한다. 그러나 삼국지는 세계 어떤 역사 시대보다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에 대해 임용한 소장은 삼국지의 거대한 세계관을 언급하며 “삼국지는 정치와 인간 그리고 전쟁 세 가지를 장대하게 다루고 있다”며 “대하소설 반지의 제왕도 수천 년 이상의 시대를 다루지만 삼국지의 밀도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삼국지에는 시대상이 투영돼 언제든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임 소장은 “송나라 이후 유학자들은 유학적 관점으로 황위를 위협한 조조보다는 도덕을 중시한 유비를 치켜세웠다”며 “이에 반해 산업화 시기의 한국이나 현재 중국에서는 이념보다 실리에 주목하게 돼 조조의 인기가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임 소장은 “어느 시대든지 실리와 도덕 그리고 입지론적 성공은 항상 매력적인 소재”라며 “결국 사람들은 이중 어느 하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소설은 소설로, 오히려 역사에 주목해야

‘삼국지를 세 번 읽어본 사람은 상대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삼국지를 여러 번 접한 사람은 권모술수를 배워 능히 쓸 것이니 그 사람을 피하라는 의미다. 삼국지를 경영학 또는 심리학과 연결 지어 전달하는 강연과 책이 흥행하는 모습을 볼 때 삼국지는 재미를 넘어 인생의 교훈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지의 교훈은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얻어낸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임용한 소장은 소설과 역사는 분명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삼국지연의』의 주요 교훈은 소설적 재구성에 기반한 경우가 많아 경계할 필요가 있다”며 “그렇지만 소설로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삼국지가 가진 매력”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국지』의 교훈에 오히려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임 소장은 “『삼국지』는 냉정하고 잔혹한 경쟁 시대의 이야기”라며 “그 속에서 인간과 사회의 진실을 찾아내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의지를 가지고 냉철하게 사고하는 것이 삼국지뿐 아니라 역사의 올바른 사용법”이라고 강조했다.


최윤상 기자 uoschoi@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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