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 약 260km 떨어진 빈니차에는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만 해도 벌써 10번째로 울리는 사이렌이다.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급하게 지하 벙커 문을 열어 몸을 숨긴다. 어떤 날은 지하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기도 한다. 그나마 본격적인 전투가 없는 우크라이나 중심부에 위치해 이 정도다. 크림반도 위에 있는 하르키우와 마리우폴 그리고 벨라루스 근처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죽고 빌딩이 파괴되고 있다.

양국이 친해질 수 없었던 이유

지난달 2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비나치화를 위해 특수 군사 작전 수행을 결정했다’는 내용의 TV 연설을 진행했다. 연설 직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가 극단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2014년은 강한 친러 성향을 띠던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로 인해 대통령직을 상실한 사건이 있던 해다. 우리대학 국제관계학과 안세현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러시아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었다고 말한다.

1991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안 교수는 “우크라이나 민족은 이전부터 존재해왔지만 그들만의 나라는 없었다”며 “구소련 붕괴 이후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푸틴 대통령은 ‘디바이드 앤 커터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친러 세력과 반러 세력 간 간극을 넓히는 전략이다.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과 동부 분쟁 지역에서 정부군에 맞서는 분리주의 반군 세력을 지원한 것도 전략 중 하나다.

우리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우크라이나 국적의 사샤 씨는 “지난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에 친러 성향보다 친EU 성향을 가진 사람이 더 많아졌다”며 “그렇기 때문에 EU와 NATO*에 가입하자고 주장하는 대통령이 선출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러시아가 계속해서 우크라이나에 관여했기 때문에 부정적 여론이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지속적으로 충돌해 왔던 두 국가의 사이가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는 없었다.
 

▲ 주한 러시아대사관 인근 교회 앞에서 전쟁반대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 주한 러시아대사관 인근 교회 앞에서 전쟁반대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아무도 예상 못한 전쟁

오랜 기간 앙숙이었던 양국의 전쟁을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었을까. 안세현 교수는 “구소련 붕괴를 예언한 사람이 없었듯 나를 비롯한 모든 전문가들이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사이버 전쟁 혹은 국지전으로 전개될 것을 예상했었지, 전면전으로 치달을 것이라 점친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예상치 못한 이유에 대해 그는 “양국 간 전쟁이 푸틴 대통령에게도 얻을 게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샤 씨 역시 “전쟁은 합리적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답했다.

안세현 교수는 “러시아가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푸틴 대통령의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승리하더라도 러시아에게 마냥 이득이 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가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특히 “러시아의 주 자원인 가스와 원유 수출에 대해 국제사회가 제재를 가하면 1980년대 구소련 경제체제의 붕괴가 재현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기든 지든 러시아는 어떤 형태로라도 손해를 보는 셈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전쟁을 선택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시도가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했다면서 이번 전쟁에 명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세현 교수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접경 국가에 해당하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이 NATO에 가입한 당시에는 침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의 결정이 인접국에 영향을 미쳐 러시아 접경국인 카자흐스탄과 조지아도 NATO 가입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러시아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전쟁의 주목적은 될 수는 없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의 주된 목적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푸티니즘’의 핵심인 구소련 영광의 재현을 침공 목적으로 보고 있다. 푸티니즘은 러시아 옛 영토 회복을 위한 극심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뜻한다. 안 교수는 “푸티니즘의 실현 첫 타깃이 우크라이나”라며 “전쟁을 통해 옛 위상을 되찾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의도”라고 강조했다. 사샤 씨 역시 “러시아의 이득보다는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자 전쟁을 일으킨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전쟁을 피해 인접국인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망명을 신청하고 있다. 그러나 남아 싸우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 의용군에 자원입대해 자신들의 나라를 지키려는 것이다. 이들은 전문 훈련을 받지 못해 전투에 본격적으로 투입되진 않지만 전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언제든 나설 준비가 돼 있다. 사샤 씨 가족 또한 의용군에 자원해 참전 대기 중이다. “상황이 많이 심해지면 아버지랑 형부도 총을 받아 싸울 거예요”. 말을 덧붙이는 사샤 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한편 볼로디미르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항전 의지를 내보였다. 사샤 씨는 “전쟁이 시작되면 도피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대통령은 키이우에 남아 우크라이나를 지키고 있다”며 “타국에 지원을 요청하고 러시아와 협상을 시도하는 등 계속해서 전쟁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 대신 평화를 바라는 목소리

국제사회에서는 전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주요 건물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뜻하는 파란색과 노란색 조명을 점등함으로써 응원의 목소리를 냈다. 우리나라는 남산 타워와 세빛섬을 비롯한 랜드마크에 평화의 빛을 밝히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긴급 의료품 40톤을 전달하는 등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는 중이다. 

시민들 역시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진행하거나 우크라이나 인도적 지원 특별 계좌에 성금을 보내고 있다. 전쟁을 반대하는 시민 단체들의 모임인 ‘우크라이나 평화행동’은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주한 러시아 대사관 인근에서 촛불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일에는 학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후원금을 입금한 후 인증하는 우리대학 학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대학과 고려대, 경희대 등 서울권 주요 대학의 학생회장으로 구성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대학생 연합’은 지난 5일 우크라이나와 연대하고 지지하겠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양국 간 전쟁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안세현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원자재 수급에 있어 두 나라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며 “전쟁으로 인해 원자재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유가나 LNG 가격 상승이 올 하반기 인플레이션과 맞물려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국가들이 러시아의 침공을 모방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위협으로 다가온다. 안 교수는 “특히 중국의 경우 대만이나 홍콩 등 인접 국가는 물론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욕심이 있어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를 통해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사샤 씨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국민이 원치 않는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관심 때문”이라며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몰라 지도자의 결정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며 “자국 대통령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물론 국제 정세도 잘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약자로 유럽과 북미 지역 30개 회원국 간 정치 및 군사 동맹을 뜻한다.


글_이주현 기자 xuhyxxn@uos.ac.kr
채효림 기자 chrim77@uos.ac.kr
사진제공_사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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