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비폭력 운동을 전개하며 인종차별에 맞섰다. 석가모니는 약 2600년 전 모든 인간은 동등함을 주장하며 카스트제도에 대항했다. 두 종교인은 모두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힘썼다는 점에서 본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누구보다 약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권리를 지키고자 함께 노력해야 하는 종교공동체가 오히려 차별에 앞장서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목도할 수 있다. 평등을 위한 개혁에 앞장섰던 종교인들의 일화는 그저 위인전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옛이야기로 전락해버린 것일까.

어느 종교의 성전에서든, 여성이 남성보다 하등한 존재임을 암시하는 문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수적 성향의 개신교인들은 오늘날에도 여성이 목사가 되는 것을 철저히 반대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구시대적인 성경 구절이다. 가톨릭교도 마찬가지다. 무려 1500년이 넘도록 주교 다음으로 높은 위치인 사제 자리에는 오직 남성만이 설 수 있었다. 탈권위적이고 평등사상을 강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마저도 지난 1월 “여성은 사제가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불교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는 사문화된 비구니 팔경계는 ‘비구니가 비구의 잘못을 꾸짖거나 비방하지 말 것’을 명시하고 있다.

여성은 신도를 유혹하는 신앙생활의 장애물로 그려지기도 한다. 어린아이 때부터 사서삼경을 익혔던 황진이도 불교에서는 그저 10년 동안 도를 닦던 지족선사를 꾀어내 파계승으로 전락시킨 방해자로 통할 뿐이다. 종교계에서 드러나는 위계와 그릇된 인식은 자칫 더 큰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지난 2018년 우리사회를 분노케 했던 미투운동은 종교계도 비껴갈 수 없었다. 공고한 남성 기득권 체계와 여성에 대한 잘못된 성인식은 성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은 전능하고 지선한 신을 필요로 해 종교를 찾는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쓰였다는 한계 때문일까. 신의 말씀을 전하는 경전은 기득권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데에 악용되고 있다. 졸지에 하나님과 부처님은 기득권에게 차별의 칼자루를 쥐어준 셈이 돼 버렸다. 그들의 행동이 진실로 신의 뜻에 따른 것인지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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