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보물찾기

▲ 종로 인사동에 위치한 카페 귀천 내부, 천상병 시인의 사진과 그림들이 걸려있다
▲ 종로 인사동에 위치한 카페 귀천 내부, 천상병 시인의 사진과 그림들이 걸려있다

인사동은 그 자체로 거대한 체험장이자 문화유산이다. 세월이 깃든 건물들을 보며 길거리를 걷다 보면 한식당 사이로 고즈넉한 카페 하나가 자리해있다. 카페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오래된 한지 메뉴판에서 전통 음료를 하나 주문한다. 카페 한쪽 커다란 나무판에 적힌 시가 눈에 들어왔다.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고등학교 시절 문학을 공부하며 한 번 즈음은 들어봤을 시이자 이 카페의 이름이기도 한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다. 인사동에 위치한 카페 귀천은 천상병 시인의 자취를 되새기는 장소로서 미래유산에 선정됐다.

1930년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난 천상병 시인은 19살이던 중학교 5학년, 동인지 『죽순』에 시 「공상」을 발표하며 처음 시인으로 활동했다. 1955년엔 재학 중이던 서울대 상과대학을 자퇴하고 여러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길을 이어갔다. 소풍 온 속세에서 하늘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대표작 「귀천」을 비롯해 「날개」, 「길」, 「넋」 등 그의 시들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그리고 우주의 만남을 서정적이고 순수하게 노래한다. 시인의 시에선 늘 행복과 희망, 낙천이 넘쳐난다.  

그러나 시인의 삶이 「귀천」에 적은 것처럼 ‘아름다운 소풍’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1967년, 오늘날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간첩들을 색출했다며 동베를린사건, 즉 동백림사건을 일으켰다. 윤이상·이응로 등 서독에서 유학하던 인사들이 무더기로 체포됐고 천상병 시인도 친구한테 밥을 얻어먹은 것을 빌미로 고문과 3개월의 교도소 생활을 해야 했다. 나중에야 동백림사건이 고문과 협박으로 이뤄진 간첩 조작 사건이었음이 드러났지만 시인이 입은 상처는 컸다. 고문 후유증으로 온전한 사고가 불가능해졌고 아이조차 가질 수 없게 됐다. 천상병 시인이 치료를 위해 몰래 정신병원에 입원하자 죽은 줄로 착각한 친구들이 그의 시를 모아 유고시집 『새』를 출간해버리기도 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시인은 대표작 「귀천」을 비롯해 여러 시를 발표하며 1993년 사망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부인인 목순옥 여사가 관훈동에서 운영하던 귀천 1호점은 지난 2010년 여사가 사망하며 폐점했지만 처조카인 목영선이 연 인사동의 2호점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카페 귀천에 들러 시인의 생전 사진과 작품을 보며 잠시 그 시 세계에 빠져보면 어떨까.


임호연 수습기자
202263001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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