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고전이라 한다. 예술을 학문으로 보는 관점에서 고전은 기본서와 같은 것이기에 순수 예술에 큰 영향을 줬거나 일반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경우가 많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자체로도 사랑받았지만 수많은 로맨스 이야기로 재탄생 했다. 소설 『작은 아씨들』 또한 거의 모든 자매 서사의 토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미디어 콘텐츠에서 바이블이 됐다.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 중에서도 문학·연극·영화계에서는 고전이 매우 중요하게 취급된다. 고전이 생겨나고 중요해지기까지의 배경은 어떻게 행성됐을까.
 

▲ 영화 [달 세계 여행]의 한 장면. 얼굴이 합성된 달에 대포가 박혀있다.
▲ 영화 [달 세계 여행]의 한 장면. 얼굴이 합성된 달에 대포가 박혀있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

고전 예술 작품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화 콘텐츠로 재매개화되는 현상은 계속해서 존재했다. 재매개란 새로운 미디어가 기존 미디어들을 개조하면서 스스로 의미를 획득해 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고전이 새로운 콘텐츠로 태어나는 것을 두고 단순히 서사 반복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마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을 가진 여러 예술 분야 중에서도 문학은 문화계의 영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개 역사적으로 작품이 가진 힘이 커 시간이 지나도 후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글을 고전문학이라 한다. 이 고전문학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글이 탄생하기도 하고, 미디어 콘텐츠 창작을 위한 참고서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성결대 파이데이아학부 권도경 조교수의 논문 「현대재매개화콘텐츠의 고전문학사적 위치 규정을 통한 고전문학의 통시적 전변론」에 따르면 고전문학과 문화 콘텐츠 사이에는 서사적 상관성이 존재한다. 이는 서로 닮은 점도 다른 점도 있다는 뜻으로, 닮은 점이라면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형적인 서사 구조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시대가 바뀜에 따라 서사 구조에 새로운 요소들이 첨부돼 가변적인 영역이 됐을 땐 고전문학과 문화 콘텐츠 사이에서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야기 구조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관점에서는 고전문학의 서사는 대중들에게 일반적인 상식으로 자리 잡아 불변의 영역이 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전문학의 서사를 바탕으로 재탄생한 드라마나 영화 중에서도 상당 부분 각색된 작품들이 있다. 이러한 경우를 두고 고전문학이 가변적 영역이 됐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 탄생한 문화 콘텐츠는 고전 서사의 원형에 시대상과 생활 양식이 반영돼 현대적으로 재생산한 예술체다.

그렇다면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바탕이 되는 고전문학의 특징은 무엇일까. 단테 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햄릿」 등을 예로 들 수 있는 세계고전문학은 전 인류가 공유하는 ‘문화재’가 된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고전으로 간주하는 문학들은 글이 쓰인 시대의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작가의 개성이 뚜렷해 그 자체로 작품성을 갖춘 동시에 보편성을 띠고 있어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명저가 되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조건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편성이란 독자들로 하여금 서사를 납득하게 하는 개연성이자 인물들의 감정에 동화되도록 하는 공감대 형성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끝없이 태어나는 셰익스피어

희곡은 연기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문학의 한 종류다. 연기는 배우들이 배역을 표현하는 일련의 행위를 뜻하지만 희곡은 그중에서도 무대 공연을 위한 대본을 가리킨다. 따라서 희곡은 곧 문학이자 연극이고 둘 사이를 잇는 매개체로써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작품 전후를 두고 각각 고전극과 근대극이라 칭하지만 이는 학문적 근거에 따른 구분이 아니다. 유럽 희곡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왔고 헨리크 입센 작품의 경우 그중 한 시기에 해당하는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고전극이란 그리스·로마의 고대 연극을 가리키고, 이를 계승해 쓰인 희곡까지 아우른다.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연극이 이에 해당하는데 정작 대작으로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이 기준으로 따지면 고전극에 속하지 않는다. 그리스·로마 방식의 고전극을 모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작품일지라도 고전주의 이론에 해당한다면 고전극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쓰인 시기를 기준 삼지 않고 예술의 기본서를 고전이라 하는 관점에서 보면 고전 희곡을 대표하는 작가는 셰익스피어다. 작품성이나 대중성의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재매개화 콘텐츠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16세기에 활동한 극작가지만 그의 희곡은 20세기 이후 학문적·비평적 연구에서 큰 성과를 거둔다. 또한 당시 문학계와 공연계에서는 셰익스피어를 16세기 인물이 아닌 동시대에 사는 작가로 보는 경향이 일어났다. 이러한 현상은 작품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여러 언어로 번역돼 세계 각국에 퍼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현재까지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다양한 이야기로 재생산되고 있다.

대표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작 그대로 영화화돼 많은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거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재매개화를 거듭했다.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은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세레나데를 불렀던 장소 ‘줄리엣의 발코니’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레터스 투 줄리엣]은 비극이었던 희곡과 달리 해피엔딩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또 다른 영화 [웜 바디스]는 좀비물이라는 장르에 로맨스 서사가 더해진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어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로미오’의 ‘R’이고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줄리엣’의 ‘줄리’라는 점과 영화 속 비극적인 부분들이 희곡을 닮아있다는 점을 통해 [웜 바디스]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부터 시작된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로부터 출발한 영화 [레이디 맥베스]나 「리어왕」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킹 리어] 등 다양한 재매개화 콘텐츠가 존재한다.
 
최초는 곧 고전, 영화에서의 고전작품들

영화사에 기록된 최초의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의 다큐멘터리 [열차의 도착]이다. 처음으로 영화관 시스템을 도입해 기획, 제작, 상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이 흔히 생각하는 영화들에는 창작 서사를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초기 창작 영화는 무대가 아닌 스크린을 통해 연극을 보는 것에 가까웠다. 대본이라는 점에서 희곡과 결을 같이 하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연극을 카메라에 담아 상영했다. 무대 공연이 영상의 차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실현할 수 없는 편집을 통해 합성이나 시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연출법을 사용했다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 편집기법이 가미돼 창작 영화로서 발돋움한 고전 영화는 1902년 제작된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 세계 여행]이다. 현대 영화처럼 컴퓨터 그래픽이나 화려한 미술은 없지만 창작 시나리오, 컷 편집, 합성, 컬러 등 최초로 사용된 기술들이 [달 세계 여행]을 고전으로서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고전 영화는 역사에 한 획을 그어 영화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모든 영화를 일컫는다. [시민 케인]은 최초로 시간순이 아닌 복잡한 전개로 주목받아 고전이 됐다. 최고의 영화로 알려진 [대부]는 [달 세계 여행]이 제작된 지 70년 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고전으로 대우받는다. 기술 때문이 아닌 누아르 장르의 최초로서 이후 제작된 모든 마피아나 범죄 영화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기 때문인데, 이를 통해 고전은 다양한 계기로 대중에게 각인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를 비롯해 앞서 언급된 모든 고전 작품들은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제목을 갖고 있다. 이 친숙함을 계기로 어렵게만 느껴지던 고전예술에 한 발짝 가까워져 보는 것은 어떨까.


오유빈 기자 
oyubin9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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