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수 사회부장
유은수 사회부장

“코로나19, 오미크론에 이은 신종 변이바이러스 등장”. 아침에 뜬 뉴스를 보고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라니. 주변에 오미크론에 감염된 사람이 없으면 친구가 없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 만큼 최근 오미크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상생활을 안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기자도 오미크론에 감염됐다. 단순 목감기일 뿐이라는 지인들의 말과 달리 무척이나 힘든 격리 기간을 보냈다. 백신을 3차까지 맞은 것이 무색할 정도로 목이 부어올랐고 코 내부와 목이 헐어 숨쉬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지금까지도 몸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시행된 첫 학번. 20학번인 기자는 대학생활 동안 ‘코로나’라는 수식어를 참 많이도 달고 살았다. 처음엔 억울한 마음이 컸다. 캠퍼스 로망이 크지 않던 기자조차 점차 무력감을 느꼈으니 활동적인 학우들은 억울한 마음이 더욱 컸을 것이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기자는 대면수업을 경험해봤다면 분명 비대면 수업을 선호했을 것이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지속할 필요도 없고, 통학 시간도 줄일 수 있고 이미 대학 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입학식조차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비대면 수업을 시행하는 것은 말이 달랐다. 교수님도, 동기도, 강의실도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소속감도 느끼지 못한 채 1년을 보냈다. 2학년 진학 후 입사한 서울시립대신문 역시 소속감을 갖고 싶어 들어온 이유가 컸다.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방역정책과 학사운영, 우리 생활에 있어 코로나가 빠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장갑, 방역복, 마스크로 인해 환경은 또 얼마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가. 이제 코로나는 모두에게 지겨운 존재가 돼버렸다. 

문득 ‘단계적 일상회복’과 ‘오미크론’에 대한 기사를 쓰며 마주했던 인터뷰이들이 떠올랐다. 취재를 통해 바라본 어른들의 삶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어른들의 삶에서 일상을 잃어버린다는 건 곧 생활에 어려움이 생길 것임을 암시했다. 단계적 일상회복을 통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지지 않겠냐며 웃음을 지어보이던 자영업자들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로서, 취업준비생으로서, 자영업자로서 코로나 종식을 바라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 한숨짓는 어른들만이 남았을 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마스크를 쓰고 비대면으로 소통해야 하는 것일까. 이 글을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없다. 다만 계속해서 스스로와의 싸움을 견뎌내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더 이상 조금 더 힘을 내자는 희망적인 메시지는 의미가 없다. 기약 없는 응원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잘 버티고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그래도 나는 다시 일상을 꿈꾼다. 감염 걱정 없이 마스크를 벗고 편하게 거리를 누비는 그런 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본다. 


유은수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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