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켜라

한때 동묘시장 브이로그가 인기 콘텐츠였을 정도로 구제 의류가 크게 유행했던 적이 있다. 동묘와 광장시장을 벗어나 서울 곳곳에 진출한 빈티지숍도 적지 않다. 이전에 비해 시들해졌지만 여전히 구제 옷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새 옷보다도 구제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렴한 가격, 개성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옷으로 인한 환경오염도 중요 원인이다. 비영리 환경 전문 연구기관인 세계자원연구소(WRI)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패션사업에서 연간 세계 온실가스의 10%, 폐수의 20%가 배출된다. 항공기의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더 많은 수치다. 오염을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옷을 소비해야 할까. 지난해 핀란드 라펜란타 기술대학교에서 의류 소비방식(△중고로 되팔기 △재활용하기 △빌려 입기 △오래 입기)에 따른 탄소 배출량 등 환경영향을 측정해본 결과, 중고로 되팔기가 오래 입는 것 다음으로 환경에 적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입지 않아도 누군가 그 옷의 수명을 연장해주기 때문이다. 옷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구제 의류를 구매할 수 있는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고 중고거래 플랫폼을 활용해봤다.
 

▲ 기자가 구매한 민소매와 셔츠
▲ 기자가 구매한 민소매와 셔츠

구제 의류의 중심, 동묘

세계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극찬한 동묘. 동묘답게 과감하고 개성 있는 패션들이 즐비했다. 입구에서 얼마 걷지 않아 “한 벌에 5천원!”을 외치는 상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리에는 구제 옷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매일 새롭게 생겨나는 동묘시장의 옷더미들을 보니 세상에 얼마나 많은 옷이 주인을 못 찾고 쌓여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옷더미를 뒤져 건진 옷은 저렴하지만 먼지가 묻어 있어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기자는 가게에 들어가 옷걸이에 깨끗하게 진열된 옷들을 둘러봤다.

서로 다른 세 개의 옷을 조합해 하나로 리폼한 칼하트 셔츠가 눈에 띄어 가격을 묻자 3만 5천원이라는 직원의 답이 돌아왔다. 독특하게 수선됐기 때문인지 다소 비싸 당황스러웠지만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곧바로 3만원은 어떤지 제안했고 수락이 떨어졌다. 흥정에 성공해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싸게 부를걸’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흥정을 제안하는 법은 다양하다. 여러 벌 샀으니 깎아달라고 할 수도 있고 멀리서 왔으니 차비만 빼달라고 하기도 한다. 흥정을 안 하는 사람이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상인이 흔쾌히 응하는 분위기였다.

구제를 판매하는 상인들은 버려진 옷을 잘 세탁해 판매할 뿐 아니라 본인 역시 구제 옷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의류로 인한 오염을 최소화하는 주역으로 볼 수 있다. 동묘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정현주 씨는 “구제를 전혀 모른 채 동생을 따라서 가게를 열었는데 생각보다 질 좋고 예쁜 옷이 많아 놀랐다”며 “직접 판매하다 보니 편견도 사라지고 환경에 좋은 일을 한다는 자긍심에 구제 의류를 즐겨 입게 됐다”고 밝혔다.

◀ 동묘에서 산 구제 옷을 입은 기자의 모습
▲ 동묘에서 산 구제 옷을 입은 기자의 모습

동네에서 보물찾기, 구제숍

구제상이 모여 있는 동묘나 광장시장에 방문하는 것 외에 근처 구제 옷가게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대학에서 대중교통으로 20~30분 거리에 위치한 ‘빈티지프롬어데이’와 ‘블루웨어’에 방문했다. 동묘와 달리 가격을 깎을 순 없지만 가게가 쾌적했고 세련된 디자인의 깔끔한 옷들이 많이 보였다.

빈티지프롬어데이의 대표 우효빈(28) 씨에게 창업 계기를 묻자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면서 패션산업이 만들어내는 섬유 쓰레기와 염색 폐수가 환경을 해치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이어 “팔리지 않은 채로 버려지는 많은 새 옷들을 보고 ‘이미 옷이 넘쳐나는데 나까지 새로운 옷을 만들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구제 옷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꾸준히 구제를 찾는 이유에 대해 우 씨는 가격을 꼽았다. 그는 “비싼 돈 주고 새 옷을 사도 금방 유행이 지나거나 변형돼 오래 입기 어렵지만 구제 의류는 가격부담이 적다”며 장점을 말했다. 그러면서 “고등학생 때부터 특이하고 질 좋은 옷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어 빈티지 옷가게에 갈 때마다 양손 가득 사 오곤 했다”고 회상했다. 블루웨어 매니저 이두희 씨는 희소성이라고 답했다. 
예전에 생산된 의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스파브랜드의 옷은 백화점, 마트 어딜 가도 쉽게 구할 수 있어 차별성이 없다”며 “구제 옷을 사는 행위는 지금은 구할 수 없는, 그 당시의 가치를 산다고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요즘은 과거와 현대의 옷을 믹스매치하는 것도 개성으로 여겨진다.

한편 구제 옷에 대한 부정적 소문도 존재한다. 사고 보니 주머니에 부적이 들어있더라, 죽은 사람의 옷이라더라…. 우 씨는 “그런 소문이 사실이라면 공포영화도 못 보는 저는 장사할 엄두도 못 냈을걸요”라며 일축했다. 그는 “구제 옷이라도 너무 오래됐거나 촌스럽다면 유통이 안 된다”며 “헌옷수거함의 옷도 도매업자들이 취급하지 않아 폐섬유공장에 가거나 해외로 수출된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블루웨어 대표 김승태 씨는 “옷을 가져오는 경로는 정말 다양하다”며 “직접 해외에서 도매로 떼오기도 하고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도 물건을 사와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답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구매해요, 당근마켓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나갈 필요 없이 당근마켓을 통해 집 근처에서도 구제 의류를 구매할 수 있다. 기자도 당근마켓을 자주 애용한다. 다양한 물건을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가 브랜드의 옷이나 신발도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올라온 물건들을 훑어보다 단돈 5천원에 올라온 귀여운 민소매를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구매하고 싶습니다!” 메시지를 보내 판매자와 약속장소, 시간을 정했다.

기자와 거래한 권예진(20) 씨는 “안 입는 옷을 집에 묵혀두기보다 싸게 팔아 누구라도 입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거래를 시작했다”며 “제가 판 옷을 구매자가 착용해 예쁘다고 보내주실 때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중고거래에서는 단순히 중고물품만 재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권 씨는 “안 쓰는 쇼핑백을 모아뒀다가 판매하는 물건을 넣어 드리는 용도로 쓰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당근마켓을 통해 의류뿐 아니라 종이나 비닐까지 재활용함으로써 환경을 두 번 지킬 수 있다. 

동묘, 광장시장, 구제숍, 당근마켓…. 구제 의류를 만날 수 있는 경로는 무궁무진하다. 이제는 새 옷보다 주인 잃은 옷들을 구매해 지구와 지갑, 멋 세 가지를 모두 챙기는 똑똑한 소비를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


글·사진_ 채효림 기자 chrim7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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