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31일에 태어난 아이는 현재 몇 살일까. 사람마다 0살, 1살 그리고 2살까지 다양한 답변이 나올 것이다. ‘만 나이’로는 0살, ‘연 나이’는 1살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는 나이’로 2살까지 세 개 모두 정답이다. 이처럼 모든 한국인은 세 개의 나이를 가지고 있다. 
 

태어난 지 하루 만에 2살...나이 혼란

‘만 나이 통일’ 논의는 이전부터 계속됐지만 지난 대선 기간 급물살을 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선거 기간 중 공식 유튜브 채널에 <사람마다 나이가 3개? 국제표준으로 통일합니다> 영상을 게시하며 만 나이 통일 공약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 당선 후 지난달 11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이용호 간사는 통의동 사무실 브리핑을 통해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 기준으로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들이 행정서비스를 받거나 각종 계약을 해석할 때 혼란이 지속돼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발생했다”며 “만 나이 통일이 생활의 혼란과 불편을 해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나이를 ‘Korean Age’라 부르며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부천대학교 태국인 유학생 사하 티라폴(21) 씨는 “태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면 자동으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며 “한국에서 나이에 따라 호칭도 엄격해 혼란스럽고 힘든 적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한편 경희대학교 졸업생 이승연(26) 씨는 “한국에 유학 온 외국 학생들이 한국에서는 태어나자마자 1살이라는 사실을 듣고서는 놀랐고 신기해했다”고 전했다.

60년째 계속되는 만 나이 통일 논의

통일되지 않은 나이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1961년 「조선일보」 ‘삼중연령시정방법 없나’라는 제목의 기사는 ‘가정과 직장에서 청년 노동과 초등학교 입학과 관련해 만 나이로 통일되지 않아 복잡한 생활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행정적 혼란을 언급했다. 

이어 ‘일본은 과거 『나이셈법에관한특별법』을 개정해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러지 못해 외국인과 자리할 때 그들이 얼굴에 비해 나이 들어보인다는 인상을 받기 마련이고 우리는 그들로부터 나이에 비해 젊고 앳되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한다’고 세계 기준에 어긋난 한국식 나이 체계를 비판했다. 당시 송요찬 내각 수반은 언론을 통해 “1962년 1월 1일부터 연령 계산을 만 나이로 전부 통일할 것”이라며 “국민들의 깊은 이해와 협조로 만 나이가 보편화되길 바란다”고 발표했다.

결국 1962년부터 법적인 나이는 만 나이로 고정됐다. 이후 『병역법』과 『청소년보호법』에서만 예외적으로 연 나이를 사용했고 세는 나이는 법적인 근거가 없는 비공식 나이가 됐다. 하지만 일상에서 사용하는 세는 나이와 법적 기준인 만 나이 사이의 불일치 문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수위도 『민법』과 『청소년보호법』에 만 나이 계산법을 명시하고 적극적인 캠페인을 통해 국민에게 만 나이 사용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를 가진다.

K-양육에서 시작된 K-나이 문화

한국의 엄격한 나이 문화는 비교적 최근인 근대에 형성됐다고 분석된다. 과거 한국 전통사회에서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말을 놓을 수 있는 친밀한 관계인 ’친구’의 범위를 대체로 2~3살 차이까지 허용했다고 전해진다. 특정 지역의 경우 8~10살 차이까지도 친구로 묶이곤 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친구’는 단 한 살의 차이도 허용하지 않는 매우 제한적인 경향을 보인다. 근대 이후 학교에서 나이에 따라 맺어지는 선후배 관계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현상은 맨 처음 가는 학교라 볼 수 있는 유치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강나영 연구원은 만 3~4세가 혼합된 유치원 교실을 직접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오늘은 봐 줬지만, 내일은 안 봐 줄 거야”: 만 3∼4세 어린이의 ‘형’과 ‘동생’ 역할의 사회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요지는 한국 사회는 아이들에게 나이라는 사회적 범주가 중요함을 어릴 때부터 알려주는데 이러한 교육이 아이들에게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를 형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부모는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더욱 공손하게 행동하도록 교육한다. 

유아교육기관을 경험하는 어린이의 사회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의 관계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즉 교사와의 비대칭적 말하기 방식 습득 및 또래 집단과 새로운 언어적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교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형은 동생을 돌봐줘야 하는 의무와 동생들에게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상기시키며 책임감을 부여한다. 이는 가정에서 부모들이 형제 관계에 대해 문화적 규칙이나 질서를 가르치는 방식과 유사한 형태다.

어른들의 나이에 따른 비대칭적 말하기 방식을 습득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세계에서도 나이 질서를 형성한다. 아이들은 상대적 나이 차이에 따라 그들을 아기, 동생, 친구, 형·언니·오빠·누나로 범주화한다. 연장자가 연소자를 2인칭 대명사 ‘너’와 이름으로 부르는 반면 연소자는 연상자에게 오직 ‘형’, ‘언니’ 등의 가족호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을 중요시 했다. 

이 규칙을 어길 시 강한 비난과 제재가 뒤따른다. 한국 언어문화는 대인관계를 서열 관계로 보고 언어 행동의 윤리 원칙을 강제한다. 결국 한국의 아이들은 말을 잘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나이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키우고 나이 차이를 인지할 수 있는 만 3~4세부터는 언어적 질서를 확립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 나이 통일보다 중요한 것

논문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교육기관에서 사회화되기 때문에 나이 차이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16년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에서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의뢰로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존의 나이를 유지해야 하냐는 질문에 30대는 35.9% 찬성했지만, 20대에서는 그 비율이 50.7%였고 이는 모든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20대가 위계질서를 엄격히 따지는 교육기관이나 군대를 가장 최근 겪은 세대라는 사실과 연관 지어 이해해 볼 수 있다.

결국 나이에 엄격한 사회풍토가 지속된다면 만 나이 통일은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승연 씨는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갔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외국 학생들이 나이를 먼저 물어보는 경우가 없었다”며 “나이 자체를 신경 쓰지 않아 서로 편하게 이름을 불렀다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외국 학생들은 한국에서 어른에게 공손하게 말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신기해했다”며 “몇 개월 차이에도 민감한 한국에서 만 나이 정착은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계속되고 있는 만 나이 통일 논의는 한국 사회에서 나이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시사한다. ‘세는 나이’든 ‘만 나이’든 나이 문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앞서야 여러 나이가 공존하는 혼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윤상 기자 uoschoi@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