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어린이를 잘 키우는 데 있을 뿐입니다.     
어린이를 내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1923년 어린이 인권선언,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던 지난 5일, 어린이날이 100주년을 맞이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법정공휴일인 어린이날은 독립의 역사와 이어지기도 한다. 어린이날의 제정 배경과 아이들이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방정환을 포함한 일본 유학생 모임인 ‘색동회’는 3·1운동을 계기로 어린이의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자 1923년부터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했다. 그러나 노동기념일로 불렸던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이 겹쳐 일반인에게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억지 이유로 일제가 탄압을 시작했다. 어린이날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자 어린이날 행사가 민족의식을 높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방해를 피해 1928년에는 5월 첫째 주 일요일로 날짜가 변경됐다. 변경 이후에도 계속되는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개최되지 못하던 행사들은 광복 이후부터 다시 진행될 수 있었다. 1961년에 제정된 『아동복지법』에서는 변화하는 날짜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하고 1975년부터 공휴일로 지정했다. 

되찾은 생기, 싱그러운 어린이날

북적북적한 7호선 열차 안, 많은 사람이 어린이대공원으로 향했다. 방역수칙의 완화로 그동안 침체됐던 어린이날의 분위기가 되살아난 듯했다.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간간이 어린이를 찾는 방송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100주년을 맞아 어린이대공원은 물론 서울숲, 남산공원 등 다양한 곳에서 큰 행사가 이어졌다. 마스크를 벗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을 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몽글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입구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창 공연이 이뤄지고 있는 ‘열린무대’를 발견했다. 공연은 어린이문화운동단체인 ‘색동회’와의 협업을 통해 진행됐다. 인형극, 뮤지컬, 태권도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무대 옆쪽에서 여러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빠른 마감으로 인해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는 가족들도 있었다. 한쪽에는 동요에 맞춰 넘실거리는 음악분수가 많은 이들의 이목을 샀다. 옷이 젖어도 웃음 짓는 어린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가장 메인이 되는 행사는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행사 ‘패밀리런’이었다. 100가구 가족이 각각 미션을 완수하면 이미지 타일을 하나씩 주고 모든 가족이 한데 모여 100조각으로 이뤄진 대형 이미지를 완성했다. 방정환 동상 밑에서 어린이날 최초의 구호인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갑시다”라는 문구가 완성됐다. 
 

▲ 초록여우의 모습을 한 공기 인형탈
▲ 초록여우의 모습을 한 공기 인형탈
▲ 음악분수대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음악분수대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공연을 관람하는 부녀
▲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공연을 관람하는 부녀

어린이대공원 최예라 담당자는 “공원 바닥에 분필로 낙서해보는 ‘대공원 바닥 컬러링 이벤트’가 반응이 가장 좋았다”며 “길게 줄서서 참여할 만큼 인기 있었다”고 전했다. 덧붙여 “공기 인형탈을 쓴 대공원 캐릭터를 찾는 이벤트도 반응이 좋았는데 캐릭터가 초록색 여우고 동글동글한 체형이라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초록색 여우를 쫓아다니는 어린아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공기 인형탈 속에 있던 직원이 일과를 마치고 귀가할 때는 바람이 빠지자 한 관계자가 “어린이들의 눈을 가려주세요”, “동심을 지켜줘야 합니다”라고 말했던 것이 인상 깊게 남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이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어린이의 동심을 지켜주고자 노력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최 담당자는 “그동안 방역지침으로 행사를 개최하지 못했다”며 “방문객도 지난 2019년 대비 60~70% 수준이었던 데 반해 이번해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문화공연으로 방문객이 늘었다”고 전했다. 덧붙여 “방역수칙도 완화된 만큼 시민들이 행사를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기대를 밝혔다. 어린이대공원에서 만난 김서희(11) 양은 “오랜만에 놀러 나와서 너무 좋다”며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10번 타는 것보다 행사에 참여하는 게 훨씬 재밌었다”고 답했다.

한적한 곳에서 소풍을 즐기는 가족들도 있었다. 국적과 연령에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돗자리를 깔고 가족과 여유를 즐기던 이원형(40) 씨는 “사람이 많을 걸 예상해 올지 말지 고민하다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왔다”며 “사람이 많긴 하지만 막상 나오니 마음이 들뜬다”고 상기된 마음을 드러냈다. 어린이대공원 행사 봉사자로 참여한 조윤아(22) 씨는 “어릴 때는 내가 어린이날의 주인공이었는데 지금은 관찰자 입장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됐다”며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구나 싶어 뛰어노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잘 자라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담당자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 공간이 생겼는데 어린이대공원만큼은 어린이의 기억 속에 자연과 어우러지며 뛰어놀았던 푸른 모습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오늘도 역시, 등원하는 어린이들

한편 어린이날에 마음껏 놀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린이대공원에서의 취재를 마치고 귀가하면서 학원에 등원하는 초등학생들을 만나봤다. 김민아(10) 양은 “어린이날을 비롯한 공휴일에 학교는 쉬지만 학원은 쉬지 않는다”며 “놀고 싶어도 학원을 하루 쉬면 진도가 밀려 따라잡기 힘들다”고 전했다. 옆에 있던 이호윤(10) 군은 학원에 오는 이유에 대해 “부모님께 혼나고 싶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교육열로 인해 어린이날의 취지가 지켜지기 어려운 듯한 모습이었다.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조희연 서울특별시 교육감은 “아이들이 평균적으로 하루 6시간 40분을 공부한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며 “이는 아동 학대에 해당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그는 “이전과 비교해봤을 때 단지 아이들이 처한 상황과 문제의 형태만 달라졌을 뿐 아동의 인권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며 “어린이의 놀 권리, 쉴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놀이터와 기관을 많이 만들고 확충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그는 “우리가 어릴 때는 훨씬 더 자유로웠던 것 같은데 안타깝다”며 “하루라도 어린이를 존중하고 부모님과 놀 수 있도록 하는 문화가 생기길 바란다”고 전했다.

자라나는 꿈나무를 사랑하는 방법

자라나는 꿈나무를 위한 어른들의 사랑은 우리 생활 속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우리대학 근처에서 ‘착한초밥’을 운영하는 A(32) 씨는 결식아동과 청소년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선한 영향력’에 참여 중이다. A씨는 “학생 때부터 봉사활동을 하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정기적인 후원을 하게 됐다”며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기만족이 크다”고 전했다. 그는 “식사뿐 아니라 좀 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단체가 되고자 같이 활동하는 사장들끼리 정식협회를 준비 중”이라며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돼 살아갈 때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어디서든 당당하고 옳게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내가 후원하는 아이 중 한 명이라도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훗날 작게라도 남에게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염원했다.

취재를 통해 어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어린이날의 참된 의미를 다시금 깨달았다. 음악분수대와 무대 앞, 그리고 어린이대공원 곳곳에서 마주한 가족들과 부모의 등에 업힌 아이들, 웃음 짓는 아이들을 보며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유년 시절이 떠올라 뭉클하기도 했다. 이원형(40) 씨는 “동남아시아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잠깐 들어왔는데 그곳엔 아이들이 엄청 많다”며 “사람이 많은 게 불편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많아져서 우리나라도 ‘불편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표했다. 

저출생으로 인해 어린이가 줄어들고 교육열 등으로 어린이날의 취지가 제대로 지켜지기 어려운 지금,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어린이대공원에 울려퍼지던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 구절이 떠오른다. “모두 함께 만들어가요. 아름다운 세상”.


글·사진_ 유은수 기자 silveraqua@uos.ac.kr
취재_ 정시연 기자 jsy434438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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