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시대 - 우리대학 옛 축제들

우리대학의 축제는 100년 전 경성공립농업학교(이하 경농)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가 필요한 농업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농의 특성상 학교 축제에도 일제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됐다. 일제가 중국, 미국과 전쟁을 벌이던 1940년부터 1945년까진 새해 첫날 조선 최고의 신사인 조선신궁에 신이 먹을 신찬미를 올리는 봉납제가 있었다. 이때 경농 학생들은 전국의 농업학교에서 바친 쌀을 정제한 후 남산의 조선신궁까지 운반해 봉납해야 했다.

▲ 6.25 기념 행군에서 행군 중인 학생들 | 출처: 『서울시립대 100년사』)
▲ 6.25 기념 행군에서 행군 중인 학생들 | 출처: 『서울시립대 100년사』)
▲ 1990년 대동제에서 고싸움을 벌이는 학생들
▲ 1990년 대동제에서 고싸움을 벌이는 학생들

군부독재 동안에도 우리대학의 축제는 정권의 눈치를 봐야 했다. 모든 교내외 모임은 허가제로 운영됐고 당구장, 클럽, 주점 등의 출입도 금지됐다. 1976년엔 학생회와 모든 교내외 모임이 국방부가 조직한 준군사단체인 학도호국단으로 통폐합됐다. 학도호국단은 1976년부터 1979년까지 매년 사격대회와 ‘6·25 기념 행군’을 실시했다. 교직원과 전교생 약 500명은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약 20km를 행군해야 했다. 행군 중엔 가상 적기 출현에 대비한 공습경보훈련과 적군 게릴라 출현에 대비한 소탕 작전 등도 진행됐다. 이외에도 총검술과 제식 훈련, 분열식, 시가행진 등이 이뤄졌다.

모든 축제가 정부 주도 하에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경농 시절인 1930년대엔 매년 체육대회를 진행했었다. 체육대회 종목으론 달리기, 씨름, 스모, 검도 등이 있었다. 당시 경농엔 수의축산과가 있었기 때문에 승마대회도 열렸다. 서울농업대학 시절엔 교내 체육대회와는 별개로 1962년부터 서울산업대학으로 개편되는 1974년까지 건국대, 전남대 등 전국의 농업대학과 함께 전국농대체육대회를 진행했었다. 대회의 종목은 닭싸움, 농구, 축구, 씨름, 줄다리기 등으로 지금의 전농체전과 큰 차이는 없었다.

1960~1970년대 군부독재 아래의 억압적인 학내 분위기 속에서 교내 축제인 전농축전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였다. 때문에 주점이나 남녀 간 댄스파티, 자동차 부수기 등 향락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교내주점의 난립과 학생들의 과음은 ‘전농주(酒)전’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전농축전은 1970년대 중반부터 대동제로 개명됐다. 우리 민족만의 정체성을 축제에서 찾아가자는 이유였다. 대동제란 이름은 농민들이 추수 후 다 같이 놀았다는 대동놀이에서 유래했다. 대동제에선 전농축전의 프로그램 외에도 고싸움, 줄다리기, 농기뺏기 등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민속놀이 종목이 진행됐다. 또한 학내 민주화 염원 달리기 대회, 5.18 사진전 등 작게는 학내평등, 크게는 민주화를 추구하는 프로그램과 전시회도 개최됐다.


임호연 수습기자 202263001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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