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에 대한 리뷰 SI:REVIEW

문화재청은 창덕궁 건물의 환기를 위해 희정당, 낙선재, 그리고 궐내각사의 창호를 지난 3월 22일부터 이틀간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궁궐 내부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자는 소식을 접한 다음날 종로로 향했다. 대문인 돈화문에서 표를 끊고 금천교를 건너자 전각과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녹색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칭으로 지어진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은 주변 지형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도록 지어졌다. 때문에 질서정연함은 찾기 어렵지만 창덕궁 뒤쪽 후원을 비롯해 궁궐 전체가 자연과 어울려 편안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300년 넘게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과 가장 오랫동안 조선왕조의 궁궐로 사용된 점을 인정받아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 꽃과 문양이 그려진 권내각사 천장의 단청
▲ 꽃과 문양이 그려진 권내각사 천장의 단청

맨 처음 간 곳은 왕을 보좌하기 위해 궁궐 내에 설치된 관청인 궐내각사다. 이곳엔 어용 도서관이자 학문 자문, 자료 보관 역할을 했던 규장각, 봉모당, 대유재가 자리하고 있다. 관청들이 미로처럼 얽혀있어 평소엔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지만 창호를 개방한 덕에 관청 내부와 마루, 복도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을 사로잡은 것은 관청에 칠해진 단청이었다. 

『삼국사기』에도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단청은 궁궐과 관청, 사찰 외엔 칠하는 것이 금지됐을 정도로 귀중한 장식으로 여겨졌다. 궐내각사의 단청은 모로단청으로 기둥과 지붕틀 등 건물을 구성하는 부재 끝머리 부분에만 간단한 문양을 넣고 나머지는 단색으로 칠한 형태다. 왕실 장식치곤 단조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기둥머리에 새겨진 꽃들과 천장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들은 4~5가지 단색만으로 마치 작은 꽃밭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서양식 가구와 벽화가 보이는 희정당 내부
▲ 서양식 가구와 벽화가 보이는 희정당 내부

궐내각사에서 우측으로 가자 희정당이 나왔다. 본래 침실이었던 희정당은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시기 고종이 집무실과 응접실로 사용했다. 본래 뒤에 정원이 있던 평범한 건물이었지만 1917년 화재로 전소된 이후 1920년 서양식으로 재건축됐다. 운전을 좋아했던 고종을 위해 따로 현관을 만들어 자동차가 들어올 수 있게 했고 스테인드글라스, 소파, 옷장 등 서양식 가구가 설치된 것도 희정당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희정당을 둘러보던 중 응접실 벽에 걸려있는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단풍으로 물든 금강산의 봉우리와 바위, 그리고 산에 걸린 구름을 그린 이 벽화는 김규진 화백이 그린 ‘금강산총석정절경도’와 ‘금강산만물초승경도’다. 서양의 풍경화 기법을 통해 그려낸 금강산은 동서양의 요소가 공존하는 희정당을 압축해놓은 듯했다.

희정당 뒷문으로 나가자 헌종이 휴식처로 사용했던 낙선재가 보였다. 해방 후 영친왕과 덕혜옹주, 이방자 여사 등 조선 왕실이 1989년까지 이곳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낙선재는 단청이 칠해지지 않아  평범한 기와집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낙선재는 사용하는 신분과 용도에 따라 방마다 위계가 있어 이를 표시하기 위해 창호들이 각기 다른 모양을 갖고 있다. 특히 보름달 모양인 만월문을 통해 낙선재 후원에 핀 매화를 보니 마치 달에 꽃이 핀 것과 같았다. 낙선재 후원은 창덕궁 후원에 비하면 조그마한 곳이지만 매화와 봄꽃들을 보며 조용히 사색에 잠기고 싶다면 추천하는 장소다. 낙선재를 끝으로 창덕궁 내부 관람을 마무리했다. 

창덕궁 창호 개방은 3월에만 진행하지만 지난 21일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창덕궁 달빛기행’이 진행된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청사초롱을 들고 야간에 창덕궁을 탐방하는 행사다. 이 때 창덕궁 내 주요 전각들이 개방되는 만큼 전통건축과 미술,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참여해보자. 


글·사진_ 임호연 수습기자 
202263001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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