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check - 소년이 온다

전두환 씨가 사망한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해로부터 만 41년이 흐른 뒤다. 광주의 유족들은 마흔 번이 넘는 제사를 치렀고 통곡의 5월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5·18기념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생존자 자살률은 약 11%에 육박한다.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 가장 극심한 후유증은 다름 아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뼈에 새겨진 총성이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9월, 익명의 생존자가 5·18구속부상자회로 보낸 편지에는 ‘꿈에 항상 군인들이 나타나 살 수가 없습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이 편지는 끝내 유서가 됐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무장한 군인에게 맞서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총을 가졌는데도 쏘지 못한다. 군인이 코앞에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다. 제4장 ‘쇠와 피’의 화자는 군인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이나 강렬한 무언가 때문에 압도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 때문에 끝내 총을 쏘지 못하는 것이다. 그 무언가는 바로 양심이다. 그에게 양심이란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이다. 

이것들은 곧 타인에게 내 것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 두려움을 이기는 직업정신, 앞장서 주는 이에 대한 고마움, 조국을 향한 사랑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을 법한 것들이다. 당시 정부와 군인들에게는 그 중 무엇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항복하기 위해 두 손을 들고 줄지어 내려오는 어린 학생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행동에서는 양심을 찾아볼 수 없다. 작가는 이러한 행태를 직접적으로 손가락질하기보다 화자의 얽히고설킨 내면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소년이 온다』는 양심처럼 보편적인 주제에 대한 고찰의 장을 제공하는가 하면 어디서도 본 적 없던 상황 설정과 묘사로 흥미를 끌기도 한다. 제2장 ‘검은 숨’은 동호가 찾던 정대의 영혼이 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죽은 자의 생전을 돌이켜보거나 사후세계가 있다면 이렇겠거니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광장에서 총에 맞아 죽은 ‘정대’는 자신의 시체가 보이는 곳에 혼으로 존재하며 죽은 자들과 대화가 아닌 정신을 통해 감정을 공유한다. 그리고 자신이 죽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누나와 동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느끼며 슬퍼하고 분노한다.

2장은 주로 정대 내면의 소리로 이뤄져 있어 ‘더이상 내가 열여섯살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나 ‘이상하고 격렬한 힘이 생겨나 있었는데, 그건 죽음 때문이 아니라 오직 멈추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생겨난 거였어’와 같이 분명하지 않은 표현들이 등장한다. 독자들로 하여금 어딘가 모호하다는 감상이 들게 하지만 그 속에서 정대의 한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하고 곱씹는 부분에서는 억울하다거나 분하다는 직접적인 말 없이도 정대의 들끓는 분노가 피부에 와닿는다. 이유 없는 죽음에서 이유를 찾는 것만큼 한이 서린 의문이 또 있을까.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의문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하며 5·18의 원통함을 전달한다.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생존자와 유족의 아픔도 빼놓을 수 없다. 3장부터는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동호 어머니가 동호를 그리워하는 내용의 6장을 제외하면 그들이 당했던 고문의 내용까지 상세하게 접할 수 있어 현실감이 느껴진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더라’하는 소문이 아닌 뼈가 드러나는 물리적인 고통을 직시하게 한다. 특히 4장에서는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인물 ‘김진수’를 통해 인간이 언제 진정으로 무너지는지 알 수 있다. 그는 구타는 물론 비녀 꽂기, 통닭구이, 물고문, 전기 고문 등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갖은 고문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러나 같은 방에 갇혔던 동생 ‘김영재’의 비보를 듣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소설은 작중 생존자 ‘선주’의 대사를 통해 또 다른 생존자들에게 “죽지 말아요”라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작가 또한 이 문장을 집필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썼다고 하니 『소년이 온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죽지 마”인 것이다. 여전히 광주에는 죽어서라도 끝내고 싶은 슬픔이 깔려있다. 작가는 집필기를 담은 에필로그에서 처음 5·18민주화운동 사진집을 봤던 기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저마다의 연한 부분이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깨져서 생긴 상처는 아물지 않고 흉터로 남아있을 것이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는 것처럼, 그 흉터도 우리 기억 속에 오래도록 존재하며 민주주의라는 꽃의 거름이 되길 소망한다.

중앙도서관 청구기호| 813.7 한392ㅅ


오유빈 기자 oyubin9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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